사설학원의 힘이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학원'으로 대표되는 사교육 권력이 공교육 질서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연간 20조원 규모의 '공룡산업'으로 자리잡은 학원권력은 급기야 이익 극대화를 위해 국가 교육정책을 쥐고 흔드는 형국이다.

학교 시험문제를 빼내 학원생들의 성적 올리기에 이용하고, 학원 교습시간 규제를 없애도록 법 개정 로비에까지 나서고 있다. 지난 해 '김포외고 파문'은 학원이 입시 문제를 빼낸 데서 비롯됐다. 지난 1월에도 홍익대 미대 실기시험 문제를 학원강사가 유출했고, 2006년 12월에는 수능시험 성적이 정부 공식발표보다 사설학원에서 먼저 공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 비대해진 '사설학원의 힘'

지난 3월8일 인천 계양구 작전동 계산중앙감리교회에서는 인천시학원연합회가 주최한 올해 정기연수회가 열렸다. 이날 연수회에는 나근형 인천시교육감과 문상주 (사)한국학원총연합회장, 학원장 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제18대 총선을 불과 한달여 앞둔 시점으로 지역구를 가리지 않고 여야 총선 예비후보자 20여명이 대거 참석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이용범 인천시학원연합회장은 "선거가 불과 한달 앞두고 있어 정치인들을 부르지 않았는데 굳이 찾아왔다"며 은근히 세를 과시했다.

사교육 시장은 단순한 산업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법 개정까지 추진하는 막강한 '로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는 작년 9월 통합민주당 유기홍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학원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은 학원·교습소와 대학생, 공익적 평생교육시설에 한해 과외교습을 허용하고, 개인과외 등 그 외 모든 형태의 과외교습은 금지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는 개인과외 금지법과 함께 현행 방과후학교에 외부강사를 늘리고 학원 등에 위탁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발표한 '학교자율화추진계획'(이하 자율화추진계획)에서 '즉시 폐지' 지침으로 선정, 법안 통과에 앞서 현실화시켰다.

교육 전문가들은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외부강사가 늘어나고 학원 등에 위탁운영이 많아질 경우 도시와 농촌 간 교육격차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울 강남 등 '부자 지역'은 초빙할 수 있는 강사도 많고 재정적인 여유도 있지만 농촌 학교의 경우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명학원 강사가 참여하면 방과후학교 수강료가 비싸지고, 외부 학원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운영을 맡길 경우 학교가 학원으로 변질돼 입시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

역대 정권과 비교해 새정부에 들어서면서 사설학원들의 입김이 더욱 드세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따른 영어 사교육 바람은 학원가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중·고교에선 자녀들이 도태될 것"이라고 부추기며 확대 재생산된 측면이 강하다. 2001년 3천330개이던 언어(영어) 학원은 5년만에 9천748개로 1천292% 늘어났다.

교과부의 '학교자율화추진계획'은 단위학교나 각 시·도별로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시·도교육간 교육격차 심화, 학교 서열화에 따른 입시위주 교육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 학부모와 교원단체들은 갑작스런 규제 철폐로 야기될 각종 혼란과 부작용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우열반 편성과 0교시 보충수업과 심야 자율학습, 사설 모의고사 시행 등은 언제라도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초등학교 어린이 신문 구독과 교복 공동구매 지침,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 등 비리근절 등을 위해 마련된 지침이 폐지되면 상당 부분 줄어들었던 각종 비리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위화감 조성 등 학교가 '부의 과시장'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학교자율화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의견이 많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번 발표 이후 사교육비가 더 들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수능을 치른 고3 학생이 학원 수강을 할 경우 지금까지는 출석 인정을 금지하도록 한 지침이 있었다. 하지만 교과부는 이번에 이 조항을 '즉시폐지' 시켰다. 입시를 끝낸 수험생들의 학원 등록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학원들로서는 반색할 내용이지만 학부모들로서는 그만큼 학원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