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희대 최준영교수 노숙자 자활 성공사례 'BIG ISSUE' 한국판 추진

빅이슈(Big Issue)라는 잡지를 아시는가.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돼 현재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나미비아 등 28개국에 100만 독자를 확보한 유력지다. 그런데 이 잡지의 독특함은 외형에 있지 않다. 거리의 노숙자들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했다는 게 특별하다. 노숙인들에게 판매를 맡겨 그들의 자활을 돕는, 노숙인 자활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이 의미있는 잡지가 국내에서도 발행될 전망이다.

빅이슈의 한국판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은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실천인문학센터 운영위원 최준영(42) 교수.

그는 지난 1월8~14일 빅이슈 컴퍼니 본사가 있는 런던을 방문해 한국판 발행에 관해 논의하고, 노숙인 벤더(판매원)들이 빅이슈를 직접 판매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왔다. "몇년전부터 빅이슈란 잡지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게 내 일이 될거란 생각은 못했죠. 주위에 빅이슈에 대해 알고 있느냐며 탐문을 좀 해봤더니 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더라고요. '신기하다' 정도의 인상평가만 하고요. 그래서 런던에 직접 가서 노숙인 스스로가 자기 생계에 책임을 지는 현장을 내 눈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가 '노숙인들의 자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는 최근까지 대한성공회가 설립한 노숙인 인문학 교육기관인 성프란시스대학에 몸담고 있었다. 지난 2005년 9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4년차. 그만큼 노숙인들과 스킨십을 많이 했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인문학은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 학문이에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것인가? 실존적 고민을 하게 만들죠. 이같은 상황을 '현실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40여명의 노숙인이 성 프란시스 대학을 졸업했지만, 수료후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일용직으로 일을 하더라고요. 신용불량 상태에다가 주민등록까지 말소되고 가족이 해체된 이들을 사회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을 보고 있던 찰나에 최 교수의 눈에 들어온 '빅이슈'. 어찌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빅이슈의 벤더들은 'Working, Not Begging(구걸이 아니라 일하는 중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ID카드를 목에 걸고 잡지를 판다. 잡지 제호 위에도 Street Trade, Not Street Aid라고 새겨져있다. 원조를 받는 게 아니라 당당히 상업행위를 하고 있다는 목소리인 셈이다.

최 교수는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종이매체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인터넷 문화속에서 새 잡지사업을 하는 게 옳은가라는 고민은 했죠. 좋은 의도가 깃든 사업이니만큼 캠페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연예인이나 정치인, 명망가와 노숙인이 2인 1조로 조를 짜서 판매에 나서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그는 이 잡지가 잘 팔리느냐 아니냐가 우리사회가 건강한지 알아보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 '5초에 한명씩,하루에 10만명씩 굶주려 죽는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오늘같은 풍요의 시대에 말도 안되는, 있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다. 최 교수는 이처럼 빈곤은 개인의 윤리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노숙인 역시 사회구조적 문제의 상징으로, 우리가 더 이상 관심을 닫아놓을 순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자기속에 갇혀 살잖아요. 관계도 건조하게 파편화되어 있고요. 빅이슈를 구매함으로써 가난은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을 일깨우는 담론이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가난해도 문전걸식으로 굶어죽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전통문화가 퇴색된 거죠. 담장 너머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니까요. 이웃문제에도 관심갖는 문화, 기부문화도 정착됐으면 합니다. 여기서 기부는 돈만이 아니라 좋은 글(기고), 체력(자원봉사), 소박하게는 빅이슈의 구매가 되겠죠. 나눔문화가 빅이슈를 통해 복원됐으면 좋겠어요."


■ 가시밭길 '3천원의 행복'

창간호 11월 목표 … 후원·법개정 절실…

한국판 '빅이슈'는 3천원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하지만 창간되기까지 과정은 험난하다.

일단 기초자료조사를 위해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4월말로 예정된 창간준비위원회를 꾸리기 위한 1차펀딩(funding)을 위해 최준영 교수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중이다. 법인설립을 6월말에 할 예정인데 등록비만 5천만원이다. 일단 8월말에 창간준비호를 낸 뒤, 빅이슈 1호를 오는 11월에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년정도는 수익을 내기 힘든 사정이라 재단화해서 기금형태로 운영할 예정. 그래서 더욱 후원이 절실하다.

법개정도 시급하다. 현재 거리판매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또 도시의 거리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만큼 행정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나약한 노숙인이 거리에서 돈을 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최 교수가 "노숙인이 있을 포스트를 지정해서, 경찰과 관청에서 어느 곳에 노숙인 벤더가 있다고 인지하고 지켜봐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