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동안이나 퍼부어대던 미군 비행기의 폭격 연습, 그를 지척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 그리고 대책위원회 사람들, 바다와 섬까지도.
폭격 연습을 하기 위해 비행기가 날아오면 울렁거리기 시작해서 폭파 소리가 들릴 때면 굉음이 고막을 찢는 듯하고 이어서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주저앉게 되었다.
지난 2001년인가 아직 폭격이 한창이던 때 전만규(53) 대책위원장을 만났었다.
깡마르고 검은 얼굴에 눈만 살아서 독기로 반짝였는데 흡사 몇 달 굶은 살쾡이의 모습이 저러지 않을까 싶었다.
# 따사로운 마을에 비행기 사격장이 들어서다
매향리(梅香里), 고온리(古溫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 이름인가? 바닷가 마을에 갯내음이 아닌 매화 향기가 가득하고 예로부터 따사로운 마을이 아니던가. 썰물 때 펼쳐지는 드넓은 갯벌은 한 번에 다 바라보기도 어렵고, 바지락이며 굴이며 지천으로 깔렸던 마을 앞 바다였다. 그야말로 '문전옥답'이었다. 그러나 파도를 막아주어서 더욱 좋았던 인근의 농섬과 웃섬 일대가 1951년 미군의 비행기 사격장이 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B-52라는 시커멓고 산만한 놈이 웅웅거리며 날아와서 폭탄을 떨어뜨리면 몇 시간 동안이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비행기 소리와 폭격소리에 환청이 생겨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극도로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어서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싸우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몰려온 피란민들도 서로 어울려 따뜻하게 지냈던 마을 고온리(KO-ON-NI)는 이내 미군의 쿠니(KOON-NI)사격장이 되었다. 글자는 같지만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생긴 무지였고 점령군으로서의 강제가 거센소리로 끼어들기도 했다.
# 매향(梅香)인가 매향(埋香)인가
1920년 간행된 지도를 보면 매향리 위쪽 가로지(可老地)에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사구(砂丘·모래언덕)가 높고 길게 펼쳐졌었다. 언덕 위엔 울창한 숲인듯 방풍림이 표기되었고 사구 안쪽으로는 석호처럼 호수가 표시되었다. 아마도 바닷물이 드나들다가 자연스레 생긴 사구와 호수였을 것이다. 물론 이곳은 나중에 염전으로 쓰다가 논으로도 썼고 지금은 공장 터가 되었다.
주민들은 방풍림과 주변의 여러 나무, 꽃에서도 향기가 나서 매향리로 불렀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바닷가 마을이고 갯벌이 넓으며 자연 석호까지 갖춘 곳으로 봐서 향나무를 묻는 매향(埋香)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어본다. 바닷가 갯벌에 매향을 해서 300~400년이 지나면 침향(沈香)이 되어 저절로 떠오른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이를 미륵불이 나타난 것으로 보는데 미래의 이상향을 뜻하지 않는가? 매향의 한 증거로 매향비를 새기기도 하는데, 매향리 주변에서 매향비 얘기를 아직 듣지는 못했다.
# 다시 평화마을로 돌아오다
과거 '매향리 미공군 폭격소음 공해 대책 추진위원회'는 이제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 미공군, 폭격, 소음, 공해 등 대부분의 단어가 부정적인 뜻이었던데 비해 얼마나 평화스런 이름인가? 추진위 사무실 앞에는 사격장에서 수거해 온 폭탄과 그 잔해들을 사들여 전시하고 있다. 총알 자국이 무성한 폭탄과 그 파편들은 전쟁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설치미술 전체는 대규모의 전쟁놀이를 보는 듯하다. '이제 전쟁을 그만 했으면…' 하는 기원을 담은 것이다. 이곳이 진정한 전쟁종식 기념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농섬과 웃섬은 그 크기가 삼분의 일로 줄어들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해서 농(濃)섬이라고 불렀던 곳이 이곳저곳 잘려나가 몰골만 남은 탓이다. 그러나 농섬과 웃섬을 잇는 사구가 다시 생기는 중이다. 아직은 썰물 때만 드러나지만 섬이 되살아나는 희망이 아닐까?
미군부대 막사는 녹슨 채 문을 굳게 닫아걸었고 인근의 기아자동차 공장에서는 근로자들이 땀을 흘리는 가운데 어민은 어민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봄맞이가 한창이다. 이런 평화 아닌 일상도 50여년 동안 남의 일이었던 곳, 이제 막 찾아온 평화가 무한히 지속되길 빌어본다.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하여 더 빨리 더 아름다운 평화가 찾아들기를….
■ 싸지노프 소령을 찾습니다
50년이 넘도록 모든 지휘관들은 점령군으로 군림하였지 싸지노프 같은 지휘관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비행기 소리와 폭격 소리 등 힘든 고통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위로를 안겨주었던 싸지노프 소령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까? 아마도 그만은 오늘의 매향리를 축하할 것이다.
/염상균·역사탐방연구회 연구위원 sbans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