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거리는 그저 스쳐 지나는 일상의 공간이다. 새로울 것도 재미있을 것도 없는 매일 같은 공간. 그런데 그 곳이 예술로 인해 흥미롭게 변한다면?

안산에서는 5월에 정말로 거리가 그렇게 변한다. 오는 3~5일 '2008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이제 '거리에서 하는 공연들이 벌어지는 축제'만은 아니다. 국내외 좋은 거리극을 소개하고 키워내는 '거리극의 대표축제'로 준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행되는 것이 '거리극 학교'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부대행사로, 예술가들의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거리극에 관심있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창작방법을 제시하는 '거리극 학교'는 벌써 3회째를 맞이했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열리고 있는 이 행사는 올해에는 지난 4월 22일부터 시작돼 5월 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거리극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장르로 평가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는 거리극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거리예술가'를 양성하는 '거리극학교'의 의의는 충분해보인다. '거리극 학교'는 전문 및 아마추어 예술인을 대상으로 해외 거리 전문 예술가로부터 거리극의 연출과 제작에 관한 교육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안산을 찾은 때는 지난 25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전시동 강의실은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매우 분주해 보였다. 재봉틀에 앉아서 열심히 재봉일을 하는 남자, 인형머리를 물감으로 채색하는 여자, 그 너머에서 물끄러미 작품을 바라보는 벽안의 외국인들. 이들이 바로 국내 최초로 운영되고 있는 '안산국제거리극학교' 학생들과 강사진이다. 하지만 정작 강의실 문을 들어섰을 때 기자의 눈에 제일 먼저 뜨인 것은 이들이 아니라 '대형인형'이었다. 키만 해도 3에 이르고 체구도 일반인 서너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작중인 인형은 1930년 남녀 은행강도로 미국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주인공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를 소재로 만든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인공 보니와 클라이드. 이 작품은 축제주최측이 전략적으로 내세운 '거리 퍼레이드'에 등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대 인형들은 관객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유쾌한 웃음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에서 '대형인형 제작' 전문가가 초청됐다. 극단 레 제앙 뒤 쉬드(Les Geants du Sud)의 예술감독인 메피엘 스테판(Meppiel Stephane)과 단원 클라우드 모리스 베일레(Claude Maurice Baille), 소렌느 캅마스(Solenne Capmas)가 그들. 극단 이름부터가 '남쪽의 거인들'이라는 뜻이다. 거리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그들만의 독창적인 거대인형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들 덕분에 지난해 거리극학교가 연기수업만 했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대형인형 제작이 주요 수강내용으로 정해졌다. 학생들도 18명이나 수강신청을 해, 대형인형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강사들은 각각 3개조로 나뉘어서 학생들과 함께 머리와 몸통, 의상을 각각 제작한 후 함께 인형을 조립하고 인형 조작을 가르쳤다. 학생들이 이들을 대하는 믿음과 열의도 대단했다. 거리극학교에 참여한 박세일(서울예술대학 극작과)씨는 "전공과 다른 일이었기에 수업을 시작한 첫날, 뭘 해야 할지, 뭘 시킬지 많이 불안했었다"며 "하지만 프랑스 선생님은 영어와 불어를 잘 못 하는 내게 'easy'를 연달아 외치면서 힘을 주었다"고 웃었다. 또다른 수강생 김동화(한양대학교 현대무용전공)씨도 "대형 인형을 뼈대부터 만들어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고 자르고 붙이고 꿰매고 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해내면서 느꼈던 보람과 동료의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산을 내게 주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홍보팀 김아미씨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거리극에 대한 관심이 요즘 점차 증대되고 있는 추세"라며 "그에 맞게 다양한 거리극의 창작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거리극학교가 추진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또 "수강생들은 이론과 강연 위주가 아닌 대형인형을 실제로 제작하고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과정을 통해 전문가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며 "또 해외 전문가 그룹 및 국내 거리극 단체와의 네트워크 구축도 이번 거리극학교를 통해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안산 광덕로 ~ 별빛광장 일대 무료공연… 세계적 거리예술단 '화려한 꿈의 향연'"


2008 안산국제거리극 축제는 사흘간 안산 광덕로와 별빛광장 일대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해외 공식 초청작 13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개막 공연인 프랑스 코망도 페르퀴의 '불의 콘서트'. 전자 타악 연주와 불꽃이 어우러져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프랑스 극단 '시어터 앙 플람'이 선보일 연극 '오 마마 오'는 생후 6개월부터 4세 미만의 유아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0세 연극'이다. 욕조를 거쳐 바닷가로 탈출하는 작은 물고기의 꿈을 어항을 연상시키는 작은 천막 안에서 펼쳐낸다.

호주 극단 '스너프 퍼핏'의 '갈매기떼', 프랑스 극단 '시어터 투핀'의 '거리의 버섯들', 네덜란드 '컴퍼니 위드 볼스'의 '함께해요 퍼레이드' 등 대형 인형 퍼레이드도 펼쳐질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이번 축제에서 초연될 극단 '황금 당나귀'의 '공작소365', 댄스씨어터 창의 '새', 온앤오프 무용단의 '다른 한편' 등 총 7편의 공연이 초청됐다. 댄스씨어터 창은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을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를, 온앤오프 무용단은 프랑스 VSRK와 공동 창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올해 행사에는 'ASA프린지' 프로그램, '거리진출 Now' 등 거리극을 발굴·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신설된 것도 특징이다. 국내외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ASA프린지'에는 해외 9개팀, 국내 6개팀 등 총 15개팀이 참가한다. 이 중 1등으로 뽑힌 우수작에는 1만달러, 2등에는 5천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며, 1등 수상작은 내년 공식초청작으로 축제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아마추어 공연자들의 등용문인 '거리진출 Now'에는 대학생 등 총 8개팀이 참가해 데뷔 무대를 갖는다.

이밖에 안산 시민들이 참여하는 '브라보 안산', 육교를 이용한 설치미술 '상상 브리지', 유채꽃밭과 조각이 어우러지는 '비밀의 화원', 어린이를 위한 예술체험프로그램 '예술놀이터', 예술가의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예술시장, 거리극의 미래를 탐색하는 국제 심포지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될 예정이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이영석 홍보팀장은 "관객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적극적인 입장에서 공연자와 어울리는 등 공연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031)481-4000


■ '佛 인형전문가' 메피엘 스테판 예술감독

"작품제작·학생교육 첫경험 말달라도 예술열정 통하죠"

'거리극 학교'에서 한국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방한한 메피엘 스테판(Meppiel Stephane)은 자타공인 프랑스 최고의 '거인 인형극' 전문가다. 세계를 돌며 장애인, 어린이, 건축 노동자들과 만나 공연을 진행해왔던 스테판은 그러나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라고. 그래서 그는 한국에 오기전 많이 두려웠었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교육하고 작품도 만들고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했기에 걱정을 많이 했죠. 게다가 이제껏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본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막상 같이 작업하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다보니 이같은 두려움이 많이 풀렸어요. 이제 최고의 경험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죠."

그가 '거대 인형제작'의 베테랑이 된 계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월드컵 주최측에서 축구장에서 관람을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축제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거인 인형극'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막상 작업하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다보니 거인인형 퍼레이드만큼 재미있는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2000년에는 아예 거대 인형극을 제작하는 'Les Grande Personnes(거대한 사람들)'사를 창설하기도 했죠. 그 후신이 바로 지금 제가 예술및 기술감독으로 있는 극단 'Les Geants du sud(남쪽의 거인들)'입니다." 그는 미리 만들어놓은 거인인형을 프랑스에서 가져와서 즐기는 쉬운 선택을 버리고, 한국에서 직접 제작하고 퍼레이드하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는 "그게 더 의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축제기간동안 300여회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53개 공연팀들이 자유롭게 한판 놀 수 있는 장이 한국에도 있다는 것이 아주 놀랍고 즐겁습니다. 그런만큼 한국의 학생들과도 같이 인형제작을 하며 호흡하고 싶었죠. 물론 언어가 달라서 힘들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술'이라는 공통언어로 쉽게 공감할 수 있었어요. 이곳에서 열정을 얻고 갑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