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하 명장이 자신의 근무지인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C동의 냉·난방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C동 지하층 기계실. 냉온수 환수관, 냉온수 환수헤더, 냉각수 순환펌프 등 육중한 몸집의 각종 냉·난방 설비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는 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기계음이 실내에 감돌았다. 이곳이 보일러 직종의 명장 김종하(61)씨의 일터다. "동북아 허브공항의 시설을 관리한다는 데 대해 항상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회색빛 작업복이 잘 어울리는 김 명장은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C동의 냉·난방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자다.

"타분야의 명장들과 달리 보일러 분야 명장들의 경우,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환경 문제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명장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김 명장은 보일러 직종 명장의 특징을 이같이 설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보일러 인생 이력을 풀어나갔다.

1947년 5월5일 경북 청도군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군에 입대할 때까지만 해도 보일러와 평생 인연을 맺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도 청도에서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하사관(단기 하사)으로 자원입대하면서부터.

13주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성적이 우수해 기능요원으로 발탁된 그는 2년여 동안 구축함에서 함상생활을 하면서 보일러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아갔다.

이어 1960년대 말 군 제대후에는 군 경력을 인정받아 한일합섬에 취직했고 마침 캐시밀론 생산설비와 자동제어 시스템 등 선진화된 유틸리티 기술이 도입되면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하게 된다.

"오퍼레이터로 일하면서 기능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대한민국 어디에 가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쌓겠다고 항상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했지요."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보일러 분야에서 차근차근 입지를 넓혀가던 김 명장은 1977년 부산에서 마산으로 이전한 경남모직에 새로 둥지를 틀면서 기능인으로서 또한번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대기환경 방지시설을 개선하고 염색공정 폐열수를 회수해 재사용하는 프로세스를 구상, 실현시키는 한편 회사의 에너지 절약 5개년 계획 수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김 명장이 작성한 에너지 관리 체계도는 에너지관리공단에서 발행하는 에너지 관련 전문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하며 개선점을 찾고, 문제점을 보완, 새로운 시스템을 창출시키던 그는 보일러 연소효율 향상기술로 대기환경개선에 기여한 점 등을 인정받아 1992년 노동부로부터 기능인 최고의 영예인 '명장' 칭호를 부여받았다. 동시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수십년동안 마산에서 생활하는 동안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회사가 공업진흥청으로부터 품질대상을 수상하는 등 기쁜일도 많았는데 상을 수상하기까지 에너지 담당자로서 퇴근을 하지 못한 날도 부지기수였지요."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2001년부터 화물터미널 일터에서 기능인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김 명장은 지금도 "연소는 기능인의 손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은 전적으로 사람의 능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를 입증하듯 그는 마지막 직장이 될지도 모르는 화물터미널에서 펌프를 사용하지 않고 시수와 중수를 직수관을 통해 사용처에 공급함으로써 동력비를 절감하는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등 에너지 공정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황혼기를 맞은 나이에도 불구, 경남 마산에 가족들을 남겨둔 채 주말부부를 감수하면서 자신의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그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날로 약화되고 있는 기능인의 위상과 관련해서는 가슴에 맺힌 게 많은 듯했다.

김 명장의 직장에서조차 그가 '명장'인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독일에서 '마이스터'라 하면 박사에 준하는 대우를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능인으로서의 동기를 부여하고, 기능인들이 자신의 일에 정진하며 보람된 삶을 살수 있도록 기능인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보일러에 뛰어들지 않았어도 아마 평생 비슷한 기능인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김 명장은 "할 수 있는 데까지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며 후진 양성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