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국내 여러 지역마다 각종 영화제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이미 국내는 물론 아시아 권역에선 널리 알려진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가 연이어 만들어졌다. 또 지난 2005년 시작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그리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등 이제 웬만한 지역에는 영화제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까지 영화진흥위원회에 등록된 영화제는 현재 40여개 정도인데, 군소 기획영화제까지 감안할 경우 국내 영화제는 무려 100여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같은 영화제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키며 성공적인 본보기로 생각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영화제가 많이 생겨나는 만큼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가 쉽지않다는 반증이다. 국내 각종 영화제 중 성공적이라고 꼽히는 사례를 통해 도내 지자체 국제영화제들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본다.

■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 연대실현 등 국내 최고 '명성'"

영상문화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부산을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는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발전시키고자 기획된 영화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정착한 최고의 국제영화제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부터 실시되어 올해 13회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부산은 이 영화제를 통하여 세계적인 영상산업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13회째를 맞이한 영화제이지만 '관객이 와서 보지 않으면 안되는 영화제, 해외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은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제' 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짧은 기간에 상당한 인지도를 획득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서구에 억눌려 있던 아시아 영화인의 연대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 국제영화제의 행사 프로그램은 '아시아 영화의 창', '새로운 물결', '한국 영화 파노라마', '월드 시네마', '와이드 앵글', '오픈 시네마', '특별기획 프로그램' 등 7개로 짜여 있다. 기본적으로 비경쟁 영화제를 추구하지만 '새로운 물결' 부문만은 경쟁 프로그램이다.

시상 부문은 유일한 경쟁부문 상인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을 비롯해, 총 7개(선재상, 운파상, 공로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PSB 영화상)로 나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북한과의 영화 교류 모색, 오리엔탈리즘 극복, 아시아 영화의 발굴과 세계화 문제를 풀어 나간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전주국제영화제 "대안·디지털·독립영화 중심 차별화 자리매김"

부분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이다. 전주시가 조직·주최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전라북도·영화진흥위원회·한국영상자료원·한국영화인회의·외교통상부·지식경제부·한국관광공사 등이 후원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원하는 영화들의 지향점은 대안영화(Alternative Cinema), 독립영화 (Independence Film), 디지털영화(Digital Film)를 표방하고 있으며, 미래 지향적인 영화제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2000년에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7일간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영미권·유럽·러시아·호주·아시아 영화 등 140여편이 참여하였다. 시상부문은 전주시민상, 디지털의 모험상, 우석상, 온고을 단편영화상이다.

특히 '디지털삼인삼색' 프로젝트는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2007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및 극장 개봉. '디지털삼인삼색' 프로젝트는 연중 세계 각국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한국영화 해외 진출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올해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지난 1일 성대한 막을 올렸다. 오는 9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5일 오후까지 약 25만여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중간 집계됐다. 특히 올해 좌석 점유율은 89.14%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20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아 86.2%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를 보여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흥행 성공은 올해 중앙아시아, 베트남 특별전, 벨라 타르 회고전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영화를 소개할 뿐 아니라 루체비스타와 전주 매그넘 영화 사진전, 음악 공연, 낭독 이벤트 등 다양한 거리 행사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홍보대사인 배우 김성은.김재욱이 4일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 지프광장에서 핸드프린팅 행사를 가졌다.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다양한 음악영화 초청·상영 새로운 길 제시"

비경쟁 국제영화제로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음악영화제를 표방하며 지난 2005년 출범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원스', '카핑 베토벤', '비투스' 등 국내에 소개되기 힘든 음악영화를 초청·상영해 미지의 국내 음악영화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직까지 저변이 얕은 음악영화의 가능성을 국내 영화 관계자들에게 보여주며 국내 영화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독립음악영화 '원스'의 경우 지난해 국내에 개봉돼 3개월만에 관객 20만 돌파의 기적을 세웠으며 OST도 덩달아 흥행하는 등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제를 통해 제천시는 매년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수많은 영화들이 제천을 배경으로 제작되고 있다.

올해 4회째를 맞이하게 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오는 8월14~19일 6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에는 경쟁부문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World Music Film Today)'을 신설해 색다른 변화를 모색한다. 영화제측은 "참신한 작가들의 최신 세계 음악영화를 초청하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함으로써 다양한 음악영화를 적극적으로 국내 관객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음악영화 중심의 영화제로서의 국내외 위상을 더욱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경기·인천지역 지자체 국제영화제 "지자체, 단순 전시행사 접근 영화계 마찰도"

경기·인천지역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많은 영화제들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등 부침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3회째 개최될 예정이던 고양어린이국제영화제는 지자체와의 불협화음으로 결국 좌초되고 말았다. 또한 지난 2006년 의욕적으로 추진되며 쇼케이스까지 열고 지난해 정식으로 시작하려던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도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 영화 마니아들의 새로운 감성과 실험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는 영상축제'를 표방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순항을 계속해온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04년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사회는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을 근거없이 해촉해 영화계가 불참을 선언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이런 파행을 겪은 뒤 그 상처를 추스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아직까지 안정적인 영화제로 나름의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듯 단순히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없이 영화제가 지자체 홍보를 위한 전시행사가 될 경우 이렇게 단발성 해프닝으로 그치거나 영화제 자체의 존립이 흔들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흔히 지자체들은 확실하게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결과만을 보고 부러워한다. 국제영화제를 통한 지역 경제의 활성화는 물론 지역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지역의 문화적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큰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국제영화제로 지역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고,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도시 이미지 상승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에 상당히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산고를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듯하다. 그리고 또한 실패한 영화제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도 말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제를 하려는 지자체는 많지만, 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지자체는 아직 드물다"고 지적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고양어린이국제영화제,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 등이 지자체의 무리한 간섭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거나 폐지되는 사례 등을 볼때 더더욱 영화계의 이런 목소리에 지자체 관계자들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자체가 영화제를 한낱 이벤트로 여기는 한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어 이러한 파행은 반복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성공한 영화제를 위해 서로 인식의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영화제 한 관계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영화제가 많이 생겨났지만 인프라와 인력이 좋아져 충분히 많은 영화제를 가동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차별화다. 그리고 영화제가 많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객을 극장으로 오게 하면 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일러스트/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