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대 역사중 가장 웅혼했던 고구려 역사. 하지만 현재 고구려 역사는 그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을까.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왜곡되고 있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과거의 이야기라며 관심을 가지지 않아 고구려의 역사는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그래서 구리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더욱 반갑다. 고구려 역사 복원 활동을 펴고있는 구리시가 광개토태왕 동상이 세워져 있는 구리시 교문동 미관광장에 광개토태왕비를 원형대로 복제 건립, 오는 23일 제막식을 갖고 일반인에 공개하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비 복제비는 구리시가 고구려 역사공원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007년 4월부터 5억원을 투입해 만들었고, 지난 9일 미관광장에 설치됐다. 광개토태왕 동상과 나란히 세워진 복제비는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있는 실제 광개토태왕비와 같은 높이(6.39m)로 만들어졌고,무게는 50여t에 이른다. 4개 면에 광개토태왕비와 같은 내용의 비문 1천775자가 새겨져 있다.

이번 광개토태왕비 건립은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과 찬란했던 문화를 계승하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고구려 문화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찬란했던 우리 조상들의 문화 역사를 통해 온 국민이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세계속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광개토태왕비 복제사업은=이 사업은 지난 2007년 6월 착공에 들어가 원석에 대한 조각을 거쳐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비석면에 글자를 새기는 전각 작업을 4개월 동안 진행한 끝에 완공돼 23일 제막식과 함께 일반인에 공개된다. 광개토태왕비는 현재 중국 지린성 지안현 태왕릉 가까운 곳에 실존하는 공덕비로 그 규모가 높이 6.39, 너비 1.5, 두께 1.5의 거대한 사면석비(四面石碑)이며 동양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시는 이미 국내 몇몇 장소에 세워진 광개토태왕비 모형이 고증이나 재질 등에서 원비와 차이가 난다는 사실 때문에 지난 2007년 7월26일 국내 최고의 관계전문가인 동국대 이기동 교수, 윤명철 교수, 홍익대 김태식 교수, 동북아역사재단 연민수 연구위원, (사)고구려역사보전회 이이화 이사장, 한국 전각학회 건창륜 회장, 경기대 박영진 교수, 단국대 박경식 교수 등이 참여한 자문위원회를 설치, 원석탁본에 대한 토의와 고증을 거쳤다.

광개토태왕비 복제사업에는 단국대 서영수 교수가 비석의 규격과 형태와 문자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담당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인 이재순 명장이 완벽하게 조각함으로써 광개토태왕비의 웅장한 외형을 갖추게 됐다. 태왕비에 새겨진 글자는 총 1천804자, 이중 판독이 가능한 1천775자를 새긴 한국 금석문 각자예술 연구원의 향석(香石) 전홍규(60) 원장이 맡았다. 이번 태왕비에 쓰인 돌은 전 원장이 청오석 채석장마다 태왕비의 실물 크기만한 돌을 찾아 헤맨 지 20여년 만에 지난 2006년초 보령의 한 채석장에서 100여의 청오석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구입한 돌로 제작됐다.

100여의 원석은 중요무형문화재 이재순 석장(石匠)이 다듬어 50여의 비신(碑身)을 완성했다. 중국 집안시에 있는 원 비석의 재질은 응회암으로 같은 화강암 계통이지만 밀도가 청오석보다 낮아 10여의 무게 차이가 난다. 한편 지금까지 100여개의 태왕비를 복원한 전 원장은 돌가루와 시멘트를 섞어 실물크기의 태왕비를 만들기도 했다.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마지막 회에 나온 태왕비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구리시와 고구려 문화=태왕비에 새겨진 글씨체는 전서·해서·예서·행서·초서 등 적게는 5체, 많게는 7개의 글씨체가 섞여 있다. 전 원장은 "금석학계에서 5개 이상의 글씨체가 복합된 비석은 태왕비가 유일하다"며 "태왕비의 글씨 크기는 사방 10~15㎝로 평균 13㎝인데 이 같은 오차는 종이에 칸을 치고 글씨를 써서 새긴 것이 아니라 돌 위에 직접 먹줄을 치고 글씨를 새겼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돌가루와 시멘트를 섞어서 만든 실물크기 모형에 글씨를 새길 때 두 사람이 먹줄을 튕겨보니 정말 똑같이 오차가 났다"고 했다.

이번 태왕비 복원에 사용한 탁본은 일본 강점기때 일본육군참모본부 소속 중위 사코 가케노부(酒勾景信) 등이 석회를 발라 위조한 선명한 탁본이 아니라, 그 이전에 중국에서 뜬 탁본을 구해 위조 이전의 모양을 완벽하게 복원했으며, 중국인들이 때운 비의 굴절부분도 원래대로 복원했다.

전 원장은 "복원할 태왕비는 글씨만 새기는 것이 아니라 풍화돼 마모된 부분까지 탁본대로 복원할 것이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일본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부분도 위조 이전의 모습을 찾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구리시는 고구려가 번성하던 4~5세기초 아차산 일대에 군사보루성을 쌓고 백제와 대치했던 곳으로 당시의 유물이 1천500여점 발굴되었으며 광개토태왕비의 비문에 광개토태왕이 아단성(아차산성)을 획득하고 아리수(한강)를 건넜다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구리시의 아차산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영순 구리시장 "고구려역사문화 복원 민족정체성교육 앞장"

민선 2기때 광개토태왕 동상을 세우고 4기 들어 태왕비를 복원하게 된 박영순 구리시장은 "재임 시에 호태왕의 동상과 비를 세우게 돼 영광"이라며 "이미 국민성금을 모아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고구려역사기념관과 고구려 테마공원까지 완성해 중국에 빼앗긴 고구려 역사를 되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구려가 망할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눌러 앉았다고 알려진 보장왕의 둘째 아들 약광(若光)의 60대손인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의 코마(高麗)신사의 궁주(宮主)를 비롯한 약광의 후손들이 태왕비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더욱 뜻 깊은 제막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 최근 중국의 동북아 공정에 맞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위해 아차산에 건립될 고구려 역사기념관은 현재 시민들의 성금이 20억원 모아졌다"며 " 시민들은 물론 미국 등 해외에서도 성금을 보내오고 있다 "고 밝혔다.

박 시장은 아차산 고구려 보루성 유적지와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세트장인 '고구려 대장간마을'은 고구려 역사기념관이 건립될 때까지 단순한 촬영장이 아니라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과 찬란했던 문화를 이어받아 배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