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앞 화단에 개인이 심은 나무나 채소는 미관상 좋지 않고 주민들의 항의가 있을 수 있으니 자진해서 제거해 주시기 바라며 식목일을 앞두고 부녀회 기금으로 마련한 나무심기 행사를 하오니 주민들의 많은 협조와 참여를 바랍니다. 딩동댕동~."
모처럼의 낮잠을 망쳤다는 생각에 투덜거리며 듣고 있던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몇 년 전 외갓집 화단에서 옮겨 심은 분홍 진달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그루 한그루 심을 때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매년 탐스럽게 꽃이 활짝 필 때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활짝 웃고 계시는 것만 같아 오며가며 물을 주곤 해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것도 뽑아야 하나? 서운한 마음에 얼른 내려가 보았다.
경비아저씨, 부녀회 아주머니들, 몇몇 주민들께서 벌써 벚나무, 철쭉, 영산홍 등을 심으며 화단을 단장하고 계셨다. 하긴 아파트 입구에 이집 저집 이사가면서 시들시들 볼품없이 버려진 화분들이 줄지어 있으니 미관을 해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심은 진달래 만큼은…. 그분들 앞에 다가가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 진달래 저희 집에서 심은 건데요. 안 뽑으면 안 돼요? 외할아버지댁 마당에서 옮겨다 심은 것이라서요. 꽃 색깔도 분홍색이라 비슷하고 꽃도 탐스럽고 예쁘고…."
큰 잘못을 하고 변명하듯 더듬거리며 말하고 있는 내게 모두 웃음지으며 한마디씩 말씀하셨다.
"모르고 뽑았으면 큰일 날 뻔 했구나!"
"정말 탐스럽고 예쁜 걸?"
"우리도 철쭉과 같이 어우러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단다."
휴~마음 졸이며 괜한 걱정을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당장 외가댁에 전화드렸더니 외할머니께서도 내맘과 같이 기뻐해 주셨다.
꽃나무는 나에게 많은 행복을 준다. 아파트 진입로 양쪽에 활짝 핀 벚꽃은 바람에 날려 하굣길 눈꽃이 되어주고, 베란다 문을 열면 라일락 향기에 코끝이 황홀하니까. 며칠 전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아무도 몰래 분꽃씨를 심었다. 아차! 옆에서 보고 있던 진달래! 눈 찔끔 감아주겠지?
■ 산문/인천시장상(학부모) - 최찬숙 (갑룡초 이제엽·세희母) "담장 안의 작은 공원"
"나는 꽃나무보다 과일나무가 좋다"고 하시던 나의 아버지. 과일나무는 열매가 열려 익으면 먹을 것이 많다고 하시며 담장 안에 복숭아, 앵두, 사과, 살구, 딸기, 다른 집에는 없는 청 배나무로 가득 채우셨다. 담장안은 작은 공원이 되었다.
봄이면 작은 공원을 찾는 벌들은 꽃 친구가 되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초봄이 되면 아버지는 항상 가위를 들고 나오셨다. 나무에 가위질을 하시며 "너희들 이발 좀 하자"하시던 아버지. 어린 마음에 나무가 아플텐데 왜 자를까? 아버지는 그래야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 집은 언제나 과일 냄새로 가득차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여동생이 보고 싶다며 고모 집에 가신다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셨다. 그 후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몇년이 흘렀다. 허름한 옛 집을 부수고 새로 집을 짓기로 하였다.
집을 새로 짓느라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작은 공원이 사라지고 있었다. 담장 옆에 붙어있는 청배나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청배나무가 외로워 보였는지 새로운 친구들을 심어 주셨다. 대추나무와 감나무, 자두나무를 새롭게 심으셨다. 청배나무는 외롭지 않겠다. 그리고 몇년이 흐른뒤 청배나무는 봄이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꽃도 피지 않고 잎사귀만 무성하다 고목이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청배나무가 삼십년은 된 것 같은데 나무도 나이를 먹으니 늙는구나하시며 서운해 하시던 모습이 떠 오른다. 어느 해 봄 청배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며 담장안이 화사해졌다.
가족들은 모두가 신기해하며 청배나무에 피어나는 꽃을 보며 기뻐하였다. 가을이 되어 탐스런 청배를 수확해 맛을 보았다. 아이들은 "엄마 배 색깔이 초록색이네"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맛을 보았다. 먹어본 아이들은 맛있다며 또 먹겠다고 했다. 색도 다르고 맛도 다른 청배.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작은 공원에서 수확한 청배. 아버지의 추억이 담겨있어 더 맛있게 먹은 것 같다. 코끝이 찡해 온다.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아버지의 생각을 알 것 같다. 작은 공원에 과일나무를 심으면 봄에 꽃이 피니 꽃구경은 항상 하는 것을 알았다. 친정 식구들은 인천시로 이사를 했다. 빈집에 아버지처럼 늠름하게 집을 지켜주는 나무들.
주말이면 친정 식구들이 모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 팔을 벌려 어서 오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담장 안의 푸른 추억을 느끼며, 삼심년후에 내 아이들에게도 기억에 남을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주고 싶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매를 들 때가 있다.
"엄만 나만 미워해"하며 우는 아이를 볼때면 마음은 짠하지만 바르게 키우고 싶고 잘 되라고 매를 든다. 나무들도 그런 것 같다. 가위가 필요없는 나무들도 있겠지만, 가위가 필요한 나무들은 가위질을 하는 것이 그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이사를 가면 잔디도 심고 나무를 많이 심어 작은 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름표를 붙여준다고 하며 언제 이사를 가냐고 기대하고 있다. 담장 안의 작은 공원 계획을 세워 나의 어린시절 같이 푸른나무도 많이 심고, 흙을 밟으며 살게 해주어야겠다.
아이들만의 작은 공원을 꼭 만들자.
■ 시 / 인천시장상 - 이지원 (한길초 4년) "제비꽃"
친해진 어느 날
학교가는 길에서 만난
작은 친구 제비꽃
보도블록 사이에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네
눈이 덮여있던 그 길에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꼭꼭 숨어 있다가
마술처럼 짜잔하고 피어났네
봄은
커다란 거인 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제비꽃에서 오네
그 작은 몸으로
커다란 봄편지를 들고
학교로 향하는
내 발길을 잡고있네
■ 심사평 / 김병욱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푸른동심에 꽃핀 자연사랑 돋보여"
눈이 덮여 있던 그 길에/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꼭꼭 숨어 있다가/ 마술처럼 짜잔하고 피어났네// 봄은/ 커다란 거인 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고 여린 제비꽃에서 오네/ 그 작은 몸으로/ 커다란 봄편지를 들고/ 학교로 향하는/ 내 발길을 잡고 있네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한길초등학교 4학년 2반 이지원야의 시 '제비꽃'의 마지막 두 연이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제비꽃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감각이 싱그럽다. 특히 '마술처럼 짜잔하고 피어났네'라는 표현은 어린이다운 봄에 대한 반가움과 환희를 아주 잘 드러냈다.
아울러 이 작품은 봄이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어떤 거인이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자연의 발견'을 노래한다. 비록 제비꽃은 작지만 봄을 전하는 '봄편지'는 커다랗다. 제비꽃으로부터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그 마음도 따뜻하다.
산문으로 대상을 받은 승학초등학교 6학년 3반 김희진의 '소중한 진달래'에는 외갓집에서 얻어와 아파트 화단에 심은 진달래를 아끼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풀 한 포기, 꽃 나무 한 그루를 아끼는 마음으로부터 자연에 대한 사랑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아끼고 살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사는 환경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도 이 대회가 성황을 이루어 푸른 인천, 아름다운 인천을 가꾸는 데 이바지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