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
■ 원고측 "음란물 아니다"
이 물품이 주로 여성의 자위행위시 사용되기는 하나, 여성의 자위행위 자체를 선량한 풍속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정상적인 부부사이에서도 성행위시 보조기구로 사용해 원만한 성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장애인부부의 성문제 해결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물품은 관세법 제234조 제1호가 규정한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당연히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

■ 피고측 "음란물이다"
이 물품은 그 용도가 여성의 자위기구이고,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을 사용해 사람의 피부와 같은 느낌을 주며, 그 모양도 발기한 남성의 성기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이러한 물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욕을 자극하고 성적인 흥분을 야기한다.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음란물이다. 따라서 관세법 제234조 제1호의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므로 그 수입통관을 보류한 처분은 적법하다.

통관번호:0511××, 우편물번호:EA9285400××CN, 발송국:중화인민공화국, 수취인:대한민국 000.
2007년 8월16일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에 우편물이 도착했다. 국제우편세관 직원들은 우편물 포장을 뜯었다. 안을 들여다 본 모두가 깜짝 놀랐다. 난데없이 '남자 성기'가 나온 것이다. 길이 21.5㎝, 실리콘 재질로 돼 있는 발기한 남성의 성기 모양의 물건이었다. 전지투입구 길이를 빼면 19㎝였다. 색상은 밝은 살구색. 개수는 10개. 여성용 자위기구였다.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 측은 수입통관을 보류했다.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이 남자 성기 모양의 물품은 결국 법정에 섰다. 수취인이 수입통관 보류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인천지방법원에 소송을 낸 것이다. 1심 판결 선고는 9개월 여가 지난 2008년 5월에야 나왔다.

■ 법원의 판단
사건을 맡은 인천지법 제1행정부(재판장·신수길)는 2008년 5월15일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 물품 자체가 성욕을 자극, 흥분 또는 만족시키게 하는 물품으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출입금지물품으로서 '풍속을 해치는 물품 내지 음란물'에 해당하는 지의 여부는 당해 물품의 용도나 기능만으로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고, 우리 사회일반의 건전한 통념과 가치질서,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개인의 기본권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개별적·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남성 성기 모양의 이 사건 물품과 같은 성인용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점차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사회는 예로부터 남성 성기에 대해 남근숭배 민간신앙 등의 풍습이 있었던 점 등에 비춰 (이 물품이) 음란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형사상 그 판매 등이 금지되는 '음란한 물건'의 정의를 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참조했다. '음란한 물건이란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케 하는 물품으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의미하며, 어떤 물건이 음란한 물건에 해당하는 지 여부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나 반포, 전시 등이 행하여진 상황에 관계없이 그 물건 자체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음란한 물건'에 대한 이런 정의 아래 법원은 몇 가지 점을 들어 수입통관이 보류된 이 여성자위용 남성 성기 모양의 도구가 음란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첫째, 그 형상이 남성의 발기한 성기를 묘사하고 있기는 하나, 색상이 밝은 살구색의 단일색상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고, 그 형상도 남성 성기의 모양을 개괄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한 점.

둘째, 이 물품과 같은 성인용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점차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

셋째, 우리사회는 예로부터 남성 성기에 대하여는 남근 숭배 민간신앙 등으로 인하여 남성성기 모양의 거석물을 마을에 설치하는 등의 민간풍습이 있기도 하였던 점 등이다.

▲ 우리사회는 예로부터 남근숭배 민간신앙이 있었다(사진은 충북 제천 작성산 자락에 있는 남근석).
특히 법원은 성기구 사용 여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적 자유에 속하는 문제로 봤다. 또 그 용도 및 기능이 여성용 자위기구라는 이유만으로 수입통관을 보류하는 것은 그 물품의 잠재적 소비자인 국민 개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이 물품이 음란물에 해당한다거나 우리 사회의 건전한 가치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볼 뚜렷한 사정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 물품의 용도 및 기능이 여성용 자위기구라는 이유만으로 그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 물품의 수입통관을 보류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결론내렸다.

다만 법원은 이 물품 사용 등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보건위생상의 문제나 청소년에 대한 노출문제에 관해서는 별도의 입법조치나 기존법령의 엄정한 집행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