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 '차량 홀짝제' 현장 가보니

지난 15일부터 장·차관급 전용차량, 일반업무용 승용차량, 공무원 자가 승용차를 대상으로 한 '차량 홀짝제(2부제)'가 전격 실시됐다. 연일 이어지는 고유가와 에너지 절약 실천을 위해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홀짝제가 실시되자 도청을 비롯한 일선 시·군청, 경찰서 등 도내 전 관공서와 기관 주차장은 평소에 비해 한산한 모습을 보여 민원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홀짝제로 인해 승용차 운행에 제한을 받은 공무원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한 일부 시·군 공무원과 외근이 많은 경찰들은 "홀짝제로 인해 오히려 업무의 효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의 반발이 계속 이어지면서, 공무원들은 저마다 홀짝제를 피해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나섰다.

■ 관공서 주변 골목은 주차와의 전쟁

홀짝제가 시행된 이후 도내 주요 관공서 주변 이면도로와 골목은 주차전쟁으로 혼잡이 빚어졌다.

기존 요일제와 달리 이번에는 관공서 정문 앞에서 홀짝제 위반 여부를 철저히 단속하는 바람에 홀짝제에 걸린 공무원들이 대거 인근 골목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또한 인근 이면도로에까지 차량이 줄지어 불법주차를 하면서 교통 불편까지 초래됐다.


실제로 홀짝제 시행 첫날인 지난 15일 경기도교육청 정문앞 2차선 진입로 양쪽 갓길에 10여대의 차량이 불법주차하는 바람에 통행차량이 불편을 겪는 상황이 잇따라 연출됐다.

또한 경기도청 인근 골목에는 불법 주차를 시도하는 공무원과 주민들간의 마찰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도청 인근 고등동 주택가 골목에는 도청 공무원의 차량임을 짐작하게 하는 스티커가 붙은 수십대의 차량들이 곳곳에 불법 주차돼 있자 동네주민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물론 승용차 운행을 못하게 되면 불편하다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범국가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에 솔선수범해야 할 공무원들이 이를 외면하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찰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원 A경찰서 주변에는 불법주차된 차량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차량 대부분이 홀짝제 위반 차량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은 "경찰서 관용 차량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인차량을 이용해 외근을 하는 형사들이 많은데, 어떻게 홀짝제를 지킬 수 있냐"면서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지만 한계를 느껴 어쩔 수 없이 인근에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번호판 바꾸기 급증

안산에 사는 공무원 C씨는 최근 홀수인 자신의 차량번호 끝자리를 짝수로 변경했다. 부인의 차량이 있지만 끝자리 번호가 모두 홀수라 자신의 차량번호를 짝수로 변경해 매일 차를 바꿔 타고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C씨는 "처음에는 마을버스를 타고 또다시 일반버스로 갈아타 출근해봤지만, 비용면에서 별차이가 없고 출근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번호판을 바꿔 달았다"고 말했다.

화성에서 수원으로 출퇴근하는 D경위도 최근 자신의 차량번호판을 바꿨다. 평소 홀짝제에 걸리는 날에는 부인 차를 얻어타고 출근했지만, 맞벌이하는 부인에게 미안해 아예 번호를 바꿔 번갈아 타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E차량등록사업소에는 평소 1일 평균 5건미만이었던 차량번호 변경 건수가 홀짝제 시행 이후 점차 늘어 최근에는 10배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인근의 F차량등록사업소 또한 평소 차량번호 변경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하루에 20~30건까지 늘고 있다.

E차량등록사업소 관계자는 "현행 자동차 등록법상 1가구 2차량의 번호 끝자리가 같거나 번호판 분실 또는 도난 등의 경우에 차량번호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무원의 번호변경 신청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카풀·자전거 족(族) 열풍

홀짝제를 피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각종 '꼼수' 속에서도 시행 취지와 의미를 살리기 위한 공무원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모두 "교통여건 열악과 잦은 출장 등으로 불편하지만, '나랏밥을 먹는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홀짝제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수원시 장안구 화서동에 사는 경찰 K씨는 최근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평소 내근으로 운동할 기회가 많지 않아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는데, 마침 홀짝제가 시행돼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K씨는 "자전거를 이용해 권선구에 위치한 경찰서까지 약 40분정도 걸리는데, 에너지도 절약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게 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며 "주위에서 자전거를 사는 경찰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카풀을 이용하는 알뜰족도 늘고 있다.

용인에서 안양으로 출퇴근 하는 P(여)씨는 지난주부터 수원 영통에 사는 직장 선배 H씨와 함께 아침·저녁을 함께 지낸다. 홀짝제 시행 이후 하루걸러 버스를 이용하던 중 둘다 집이 같은 방향인 것을 알게 된 이후 번갈아 가며 서로의 차로 함께 출퇴근을 하는 것이다.

P씨는 "처음에는 둘다 미혼이라 직장 내에서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 조금 부담이 됐다"면서도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는데, 국가 시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