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간간이 내리던 지난 26일 오전 6시30분 안양 만안초등학교 후문 인근 A슈퍼 앞 도로. 왜소한 체구의 한 할머니가 종이 상자 몇 개를 손수레에 싣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주름진 얼굴엔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올해 나이가 78살"이라고 밝힌 이 할머니는 "1시간 전에 집을 나와 동네를 돌고 있지만 종이 상자 보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하루 두세 번씩 동네를 돌며 폐종이 상자와 헌옷, 고물 등을 줍지만 최근 들어 저소득층 노인들 사이에 '폐지수집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같은 일을 하는 노인들이 많이 생겨 나 생각만큼 '차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근의 또 다른 골목길에서 만난 김명수(가명·67) 할아버지도 "파지 등을 주워 전기요금에 보태고 있지만 '운수 좋은 날'이 많지 않아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워낙 경기가 안 좋으니 노인네들이 걸어다닐 힘만 있어도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것 같다"며 "이제 폐지가 '귀한 몸'이 돼 폐지줍기도 전쟁"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날 오전 8시30분께 안양6동 일명 '밧데리 골목' 주변에서 만난 김인국(가명·71)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폐지를 찾아다녔지만 종이 상자 두세 개와 헌 신문지 한 묶음만을 수집했다"며 "파지 줍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자원공사에 따르면 지난 6월 폐골판지는 1㎏에 171원으로, 지난해 동기 80원에 비해 2배 이상 올랐으며, 폐신문지도 같은 기간 ㎏당 107원에서 222원으로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사 이모(43)씨는 "최근 파지를 줍는 저소득층 노인들이 많이 늘어 경쟁이 치열하다"며 "어려운 경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