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결혼 정보회사에서 미혼남녀를 상대로 '바캉스를 함께 가고 싶은 이성'을 설문 조사한 결과, 김연아·박지성·이효리·유재석(왼쪽부터)이 각각 스포츠·연예인부문 남녀 1위를 차지했다.
바야흐로 여름의 절정이다.

누가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이글거리는 태양은 선남선녀를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다음주까지 전국의 휴양지, 혹은 해외에서 젊음과 열정이 눈부신 햇살 아래 마음껏 분출될 것이다. 하지만 '7080 세대'에게는 추억이었을지 모를 풋풋함과 낭만 같은 건 글쎄. 두려움도, 머뭇거림도 없다. 실패 뒤 찾아올 부끄러움과 자괴감 등은 이미 약발이 떨어진 지 오래다. 스치는 만남, 붙잡을 수 없는 인연에 대한 애틋함 역시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하룻밤의 사랑.


#인터넷은 짝짓기장

'8월초 럭셔리 여름휴가. 185/78. 날씬 매력녀 환영'. '해운대. 스포츠카. 30초 전문직. 2대 2. 예쁘면 공짜'.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접속하면 쉽게 볼 수 있는 대화방 제목(이하 방제)들이다. 사시사철 인터넷 채팅이 활황을 이루지 않을 때가 없지만 여름휴가 시즌인 요새는 정도가 더하다. 인터넷 채팅계 고수들에 따르면 대개 이런 부류들은 온갖 휘황찬란한 단어들로 방제를 치장한 뒤 낚시하는 강태공의 마음으로 하루 종일 대화창을 열어 놓는다. 아무리 안 들어와도 한 시간에 한 명 정도 입장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손가락 작업이 시작된다. 구라와 감언이설은 기본이지만 채팅만으로는 '품질'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이메일 등으로 사진파일이나 동영상을 교환하는 건 필수코스. 더러 외모에 자신있는 이들은 컴퓨터용 카메라를 설치한 사람만 입장하도록 방제에 명기하기도 한다.

요란한 방제로 대화방을 만들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은 비단 남성들만의 몫은 아니다. 간간이 여성이 만든 대화방들도 눈에 띈다. 남성이 만든 방과의 가장 큰 차이는 대부분 비밀번호를 설정해 쪽지로 비번을 물어본 뒤에야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 대화방을 만드는 여성들 중에는 은밀한 용돈벌이가 목적인 경우가 있지만 업소 매상을 위해 온라인까지 진출한 '전문직 아가씨'도 다수라는 게 고수들의 전언.

지난해에도 채팅으로 여름휴가 파트너를 만들어 즐겼다는 손모(31·학원강사)씨는 "현지 조달도 괜찮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술술 풀리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가는 동안 얘기를 많이 해서 긴장을 풀어주면 그만큼 더 쉬워지는 게 장점이다. 처음 보는 남자 따라 여름 바다 가는 여자들과의 마지막 코스야 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몇년 전부터는 애인대행사이트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해 장시간 손품을 팔지 않아도 돈 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임팩트있는 멘트 좀 달아놓으면 나름 쏠쏠하게 입질이 온다는 것이다. 회사원 김모(33·수원시 장안구)씨도 지난주 나름 물이 괜찮다는 R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들떠있다. 김씨는 "8월 중순 휴가를 앞두고 파트너를 만들기 위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가입했는데 묘령의 여인에게 연락이 오니까 오히려 놀랐다"며 "조금 더 연구하면 이번 여름에는 한 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욕망이 불타는 여름 해변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이모(34·서울시 광진구)씨는 지난 25일 친구 두 명과 함께 2박3일로 경포해수욕장에 놀러갔다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다. 요 몇년간 여름휴가 때마다 경포에서 헌팅으로 전승(?)을 기록,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터라 이틀밤 연속으로 경험한 실패는 실로 뼈아팠다고 한다. 6㎞에 이르는 경포해수욕장을 밤새도록 2번 왕복하며 일행이 2∼3명인 여성들에게 줄기차게 헌팅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엮지를 못했다. 급기야 자비를 털어 나이트클럽까지 진출했지만 역시 공회전의 연속. 이씨는 "친구들한테 뭔가 보여주기 위해 어려 보이고 날씬한 여자들한테 집중했던 게 패인이다. 올해 얼굴이 하도 팔려서 내년부터는 장소를 해운대 등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며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 그런지 요새 키 크고 싱싱한 젊은 애들에게 뒤처진다. 하룻밤 노는 거라 경험상 대부분의 여자들도 남자의 외모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을 돈으로 친다"고 자평했다.

전통적으로 여름 해변 헌팅은 남성의 몫. 하지만 근래에는 이런 전통이 무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남성에게 먼저 접근하는 적극적인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간혹 목격할 수 있다. 지난주말 해변에 다녀온 회사원 A(26·여)씨는 "여자들끼리 해변에 가면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은근히 괜찮은 남자들이 접근하기를 바라게 된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남자가 마음에 든다면 여자들이 먼저 대시하는 것도 상관없다.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젊은 여자애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는 여름 해변에서의 '원 나잇 스탠드'에 대한 경험자로서의 따뜻하고 치밀한 조언들이 차고 넘친다.

어느 해수욕장이 성공률이 높고, 어디에서는 어떤 식으로 상대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등등 오프라인에서 감히 접하기 힘든 정보들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인터넷의 자상한 안내와 일명 여름 해변 '하이에나'들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의 대세는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 서해안에서는 대천해수욕장 정도가 손꼽힌다.

대개 해변에 노을이 내려앉으면 그들만의 잔치가 벌어지고, 잔치는 여명이 솟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술과 담배는 기본에 거친 욕설과 고성은 덤이다. 헌팅 과정에서 촉발된 남녀 일행 간의 말싸움이나 남자 일행들끼리의 살벌한 싸움 등도 여름 해변의 운치를 더한다. 덩달아 경찰에서 여름에만 설치하는 지구대도 바빠진다. 잔치가 끝난 해변에는 술에 취해 그대로 뻗어버린 젊음과 밤새도록 먹고 마신 술병과 쓰레기가 뒹굴게 마련이다.

해변에 낭만이라기보다 욕망에 가까운 것이 배어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행여나 아이들이 볼까 두려워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라고 한다. 백모(41·주부)씨는 "지난해 여름에는 해수욕장을 갔지만 올해는 계곡에 있는 펜션을 다녀올 계획이다. 몇년 전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 데리고 숙소 밖을 돌아다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고 진저리를 쳤다.

#유흥업소도 뜨겁다

해변에서의 즉석만남은 100% 술자리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해변에서 파도소리를 벗삼아 술잔을 비우다 곧 주변 횟집이나 조개구이집, 술집, 나이트클럽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해변에서 실패한 하이에나들 역시 다음 작업을 위해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으로 모여든다. 그네들은 속칭 '패자부활전'이라고 부른다. 친절하게도 해수욕장 주위에는 2차나 패자부활전을 위한 유흥업소들이 즐비하다. 유흥업소 뒤편으로는 모텔과 패자부활전에서까지 고배를 마신 진정한 패자들을 위한 마사지업소, 안마시술소 등이 포진하고 있다. 업소 숫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름 좀 있다하는 해수욕장 주변에 형성된 상권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여름철 특수를 노리는 나이트클럽 등 해변의 유흥업소들은 유난히 부킹에 관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바닥 전문가들은 올해 성공해야 내년에 또 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유명 해수욕장 주변의 유흥업소들과 달리 도심 유흥업소의 여름은 지독한 비수기다. 여름휴가를 떠나 손님 자체가 줄어들고 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또한 휴가를 가 매상이 오를 수가 없다. 그래도 한 번 입소문을 탄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 등은 오히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서 입소문이란 룸살롱의 경우 싼 술값에 파격적인 서비스, 나이트클럽은 원 나잇 스탠드다.

나이트클럽 마니아들에 따르면 최근의 경향은 룸 안에서 즉석으로 거사를 치르는 쪽으로 진화(?)하는 중이라고 한다. 룸에는 잠금장치가 없지만 각자의 파트너와 교대로 할 때 서로 망을 봐주거나 친절한 웨이터들이 그 시간 동안 룸앞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역사가 이뤄진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B나이트클럽과 고양시의 C나이트클럽 등이 이 방면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룸에서의 원 나잇 스탠드는 모텔을 가지 않아도 돼 모텔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모텔비를 절약할 수 있어 경제위기 시대의 고육지책이라는 측면도 있다.

물론 이면에는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최종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얼마전 수원시내 D나이트클럽 룸안에서 거사를 치른 박모(32·회사원)씨는 "클럽에서 만난 여자가 거절하지 않고 응하니까 거칠게 없었다"면서 "여름에는 여자들이 노출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나이트클럽을 찾는 횟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

벌써부터 휴가지에서의 '무용담'을 유치찬란하게 늘어놓는 이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마 여름휴가가 끝난 이달 말쯤에는 더 많은 주접들을 보고 듣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전하게 휴가를 보내고 온 건강한 청춘들이 오히려 무안해질 지경이다.

지난해 말 인터넷 남성포털사이트 맨홀은 성인남성 1천명을 대상으로 원 나잇 스탠드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온라인 리서치기관에 의뢰, 지난해 12월 8일부터 3일간 조사한 설문조사(신뢰도 95%·표준오차 ±1.93%)에서 절반에 가까운 492명이 나이트클럽이나 인터넷 채팅 등으로 만난 여성과 성관계를 가져봤다고 응답했다. 상대는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일반 여성들. 조사결과가 정확하다면 비슷한 숫자의 여성들 또한 원나잇 스탠드를 경험해봤다는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게 된다.

우리사회의 가치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감정의 교류는 생략되거나 중요치 않은 것으로 변해가는 분위기다.

육체의 충돌만을 지향하고, 더 많은 육체적인 경험이 '능력'으로 승화되는 세태. 이는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건사고를 다루는 기사들에서 이미 10대 소년소녀들은 주역을 꿰차고 앉았다. 그 중에서도 10대 성범죄의 증가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야동, 선정성으로 승부하는 케이블TV의 각종 오락프로그램 등에 일차적으로 화살을 돌린다.

모 케이블TV에서 애완용 남성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송한 뒤 인터넷에 비슷한 유의 사이트들이 득세하고, 청소년들이 몰려드는 것은 비근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쾌락만을 쫓고, 그게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이 돼가는 우리사회의 의식에 있다는 분석이다.

박태수 경기도 청소년과장은 "성인들은 자신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것을 아이들에게는 막무가내로 금지시키지만 이미 퍼질대로 퍼져버렸다"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