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이 도시를 떠나 어디로든 가라고 등을 떠민다면 평창으로 가겠다. 눈부신 초록으로 빛나는 숲이 있고, 바위를 넘어서는 계곡의 물소리와 골짜기에서 날아드는 새소리가 있는 곳,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천년고찰의 풍경소리도 있다.
글·사진 최갑수(여행 칼럼니스트)
# 속에서 성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평창 여행의 출발은 월정사라는 대가람이다. 월정사는 가람의 장엄함만으로도 감탄스러운 곳이지만 일주문에서 가람으로 이어지는 빽빽한 전나무숲길은 회색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 사는 도시인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성과 속의 경계는 월정사 일주문. 금박 글씨로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이 붙은 일주문에 들어서면 숲길이 시작된다.
숲길은 아름드리 거목 사이로 물처럼 흘러든다. 반듯하지 않고 이리저리 굽은 길,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티끌 같은 망상과 잡념은 깨끗이 사라져 버리는 듯하다. 숲길의 길이는 800m 정도. 마음먹고 걷자면 20분이면 충분히 가고도 남을 거리이지만 숲길에서 걸음은 한없이 느려진다. 전나무숲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길을 음미하며 감상하며 걷는다. 나무를 보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듣고 숲을 빠져나온 햇빛에 어깨를 내준다.
월정사 전나무는 아홉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령 500년의 전나무 아홉 그루의 씨가 퍼져나가 울창한 전나무 숲을 이뤘다고 한다. 숲길에선 여름의 강한 햇빛도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 공기는 싱싱하고 상쾌하다. 도토리를 손에 쥔 다람쥐와 청설모들이 여행자의 뒤를 따른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지어진 고찰. 자장율사가 창건했는데 보름달 빛이 유난히 밝아 월정사라고 했다. 한국 근대의 고승인 방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주석했던 사찰로도 유명하다. 방한암 스님은 조계종 초대종정을 지냈다. 탄허 스님은 청년 시절 3년 동안 한암 스님과 편지를 나누다 제자가 된 선승이다. 화엄경 120권을 번역, 출간한 것을 비롯해 화엄론 40권, 육조단경, 보조법어, 사교, 사집 등 많은 저서를 냈다.
월정사에서 눈길을 줄 만한 것은 8각9층석탑이다. 17동이나 되었다는 법당은 한국전쟁 때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근세에 새롭게 세워진 사찰은 고색창연한 맛은 덜하지만 당당함과 장엄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고려 초기에 세웠다는 9층석탑은 층층 모서리마다 쇠종을 달고 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작은 쇳소리가 산을 울린다. 바람이 내는 종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길다.
월정사는 오대산 산사 여행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월정사에서 출발해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돌아볼 수 있다. 상원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동종이 있다. 1천300년 전에 만들어졌다. 높이 1.68m, 구경 91㎝, 무게 1천980㎏(3천300근)에 달한다. 종에 새겨진 여러 문양이 우아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두 갈래, 세 갈래의 종소리가 울려퍼진다고 한다.
상원사에서 1.6㎞ 떨어진 적멸보궁은 오대산 산사 여행의 클라이맥스다. 겉치레를 하지 않은 자그마한 절에는 불상도 없다. 적멸보궁에는 부처의 몸이 있기에 불상을 따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멸보궁이 감싸 안은 풍광은 광활하다. 뒤로는 비로봉이 호위하고 앞으로는 오대산의 육중한 능선이 펼쳐진다. 한국의 풍수학자들은 오대산 적멸보궁이 대단한 터에 자리잡았으며 땅의 힘이 굉장하다고 평가한다. 그 말 덕택이 아니더라도 적멸보궁에 오르면 장쾌한 풍경에 속이 확 트인다. 이런 대단한 자리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승려들이 먹을 것 걱정 없이 수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 목장에서 만나는 이국적인 풍경
고원도시 평창의 면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여행지는 대관령삼양목장과 양떼목장이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인 대관령삼양목장은 사계절 내내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1천983만㎡라는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대관령 삼양목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다. 선자령과 매봉, 그리고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허리에 위치한 대관령삼양목장은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의 길이만 22㎞에 달한다. 자동차로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대관령삼양목장의 드넓은 목초지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무대이기도 했다. 이성재가 주연한 '바람의 전설'을 비롯해 장동건과 원빈이 주연한 '태극기 휘날리며', 한석규의 '이중간첩', 유오성의 '별', 드라마 '가을동화' 등 숱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 뒤편에 있는 양떼목장은 진영대씨 부부가 가꾸는 개인목장이다. 넓이는 20만4천910㎡. 이곳에 양 20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대관령 목장이 광활함을 자랑한다면 양떼목장은 아기자기하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 안에서는 양들이 20∼30마리씩 모여 노닌다. 20여분 천천히 오르면 언덕 정상에 닿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막힘이 없다. 멀리 평창 읍내가 손바닥만하게 보인다. 언덕에서 내려오면 소담스러운 통나무집과 만난다. 김희선과 신하균이 주연했던 영화 '화성에서 온 사나이'의 세트장이다. 이 건물은 이제 양떼목장의 상징 건물로 자리잡았다.
월정사 가기 전 한국자생식물원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된다면 꼭 들러보자. 오로지 토종 우리꽃과 나무만으로 꾸며놓은 식물원이다. 3만3천50㎡에 달하는 우리꽃 재배단지에서 철마다 대단위로 키워내는 꽃이 시원하게 눈길을 붙잡는다. 사람명칭식물원, 동물명칭식물원, 향식물원, 독성식물원, 희귀·멸종위기식물보존원, 신갈나무숲길(2㎞) 그리고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군락지(재배단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갈나무 숲길을 따라 도는 30분짜리 산책코스도 빠뜨릴 수 없다. /ssuchoi@hanmail.net
■ 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들어간다.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좌회전하면 월정사 가는 길. 국도 6호선과 이어진다. 4㎞쯤 달린 뒤 월정삼거리 456번 지방도를 타고 좌회전, 4㎞쯤 달리면 간평교가 나타난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446번 지방도를 타고 4㎞를 더 들어가면 월정사 앞이다. 월정사(033-0332-6651), 상원사(033-332-6666), 한국자생식물원(033-332-7069), 대관령삼양목장(033-336-0885), 양떼목장(033-335-1966)
■ 맛집=평창하면 산채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월정사 입구에 자리한 산채촌에서 풍성하고 흐뭇한 산채요리<사진> 를 맛볼 수 있다. 어느 집을 가나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상에 오르는 나물의 수만 35가지에 달한다. 가마솥식당(033-333-5355)이 유명하다. 무더운 여름, 달아난 입맛을 되돌리는 별미로 시원한 메밀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봉평다방 옆 현대식당(033-336-0314)은 35년 전통의 집이다. 조선간장과 메밀육수로 만든 국수가 고소하다. 황태요리도 유명하다. 송천회관(033-335-5942)의 황태요리가 이 일대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구이와 황태해장국, 황태찜 등을 잘한다.
■ 숙박=진부에 호텔 오대산(033-330-5000)과 아리랑장(033-335-0096) 등 숙박할 곳이 많다. 동산리 월정사 관광식당가 맞은편에 민박집이 40여곳 있다.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