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휴가차량들과 뒤엉켜 마산봉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였다. 수원에서 4시간여를 달려온 것이다.
지난주에 이미 답사를 왔었던 김흥선(56) 등반대장이 "진부령 스키장의 내부 공사관계로 예전의 길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서 우회하는 길로 가야합니다"고 안내를 해준다.
현재 예전의 진부령 스키장은 단성사에서 인수하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고 신임 고성군수도 마산봉 일대를 관광자원화한다고 발표해 이 지역이 어떻게 변모할지는 알 수 없지만 천혜의 자연경관이 훼손될까 우려된다.
할 수 없이 변경된 코스인 흘리마을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오른편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마산봉으로 가는 산행기점. 길은 점차 좁아지지만 완만하게 마산봉까지 이어진다.
산행 시작 1시간 10여분만에 도착한 마산봉에는 가스(짙은안개)가 가득차 주변 풍광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날도 어김없이 백두대간 남쪽 구간의 마지막인 마산봉에서 감격을 맞이하는 이들이 일행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맑은 날씨에 이곳에 서면 가까이는 흘리마을이, 멀리는 향로봉(1천296m)과 칠절산(1천172m)의 향로봉산맥이 백두대간의 북쪽 방향으로 안내해준다. 정상표지석도 없는 마산봉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만나게 되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리조트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이므로 직진하는 방향으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대간령까지의 길 또한 어렵지 않다. 느긋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걸어도 되는 길이어서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등산로 주변으로 곳곳에 멧돼지가 파헤쳐 놓아 드러난 나무뿌리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주변으로 갈림길도 없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암봉(890m)에서는 자리가 좁아 많은 인원이 함께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망은 일품인 지역으로 동해바다와 포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설악산의 신선봉이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는 곳이다. 암봉을 내려오면서 너덜지대를 만나게 되는데 발을 디딜때 바위가 흔들거리는 것을 확인하고 내려오도록 한다. 오후나절에 도착한 대간령은 고성과 인제를 잇는 옛길의 고갯마루이다. 대간령에서 왼편은 고성으로 가는길이고 오른편이 인제로 향하는 길이다.
#주민들의 생활장터이면서 소상인들의 휴식처였던 마장터
대간령에서 인제 방향으로 50여분을 내려오면서 만나게 되는 너른 지대가 마장터이다. 한국전쟁 전까지 진부령이나 미시령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곳이기도 하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을 가장 빨리 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다.
"장사하던 사람들의 뒤를 이어 들어온 화전민과 약초꾼들로 30여가구를 이루던 곳이었지만 70년대초부터 독가촌 정리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내보내고 나무를 심어 지금의 낙엽송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사람이 살던 곳이었고 밭이었던 곳입니다"라고 김흥선 등반대장이 설명해준다.
주막과 마방들이 있었다는 곳들이 지금은 나무군락지와 무성한 수풀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많은 사람들이 살았음에도 그 흔적을 찾기 힘든 이유를 "우리 조상들의 가옥들은 자연으로부터 얻어지고 구한 것으로 흙벽은 흙으로 기둥을 이루던 나무는 썩고 지붕의 나무껍질도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는 환경친화적 소재여서 그렇다"라고 말해주는 신현익(52) 회원의 말에 모두 수긍하는 듯하다.
현재 마장터에는 신식구조물인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는 가옥 한 채와 신선봉 상봉방향의 계곡옆으로 3채의 집이 있다. 이곳에 들어와 자리잡은지 31년이 되었다는 정준기(66) 노인은 마장(馬場)이란 이름이 원통장으로 다니던 마꾼들이 지나던 주막이 있던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샛령 정상 서낭당에서는 인제군수하고 양양군수가 서낭제를 소까지 잡아서 올렸지요." 노인의 말처럼 샛령에는 예전의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 흔적을 알고 지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마장터에서 인제 방향으로 10여분을 걸으면 소간령에 닿게 되고 이후 50여분 정도면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이 구간도 산책길처럼 편안한 구간이다. 마장터에서 취재팀은 인제 방향이 아닌 흘리 방향으로 가기위해 계곡을 건너 물길 옆으로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계곡을 따라 가야하기 때문에 신발도 옷도 모두 물에 젖어야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길을 이리저리로 건너면서 길을 찾다가 길을 잃기도 하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등반형태 중의 하나인 GPS 활용이 눈에 띄게 돋보이는 곳이다. 김흥선 등반대장이 답사하면서 체크해 놓은 방향으로 따라가니 정확하게 길을 찾아든다.
계곡은 깨끗하고 투명하다. 오염원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더라도 선 채로 손으로 받아 먹는다. 인적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서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계곡이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다. "많은 계곡들을 다녀 봤지만 이 계곡은 특별한 존재감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이러한 아름다움이 언제까지 보존될지 모르겠지만 남에게조차 소개해주기 아까운 계곡"이라는 김영애(52)씨의 말 끝에 계곡을 바라보니 해거름에 젖은 물빛과 옥색의 물빛이 순백의 암반에 비치면서 계곡 전체가 황홀한 비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장터에서 계곡길을 따라 40여분을 따라 내려가면 물굽이계곡과 흘리방향의 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이 나온다.
청정 물길 상류개발로 '흙탕'
#관광산업의 최대피해자 물구비 계곡
계곡은 청정한 물빛으로 내리 치닫는다. 가슴을 넘고 목까지 차오르는 깊이로 흐르는 물 옆으로 몽돌과 곡선이 예쁜바위들이 물길을 트고 있다. 물밑으로 부지런히 오가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김흥선 등반대장이 "열목어가 하류까지 고루 분포하고 있는 청정지역"이라고 말한다. 조용관(39) 회원이 물고기를 잡아보려 연방 손을 놀려대는데 "저러다 진빠지면 물고기가 사람을 잡는다"는 송대순(46) 회원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두 계곡이 모이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서 보니 주변의 상황이 말이 아니게 피폐해 있다. 군사용 참호 주변으로 산에서 보기 힘든 쓰레기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군사훈련하러 나왔다가 버리고 간 것들로 보인다"는 유광수(48) 회원의 말처럼 군용침낭과 군용으로 보이는 천조각들이 보인다. 이곳의 좋지않은 광경을 피해 흘리방향으로 계곡을 따르려고 보니 물빛이 이상하다. 맑은 물을 자랑하던 계곡이 우윳빛으로 변해서 도무지 믿기 힘든 색깔로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합수지점에서 흘리까지는 약 40여분의 오름길이다. 이곳도 어렵지 않은 오르막이어서 계곡을 따라 가는 것에는 무리가 없고 중간에 나타나는 두 개의 폭포가 장관으로 멋진 계곡이었던 곳이다.
하지만 필자가 찾은 10일의 계곡은 이미 죽음의 계곡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물이 흘러 내린천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탁도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계곡을 지나면서 보게 된 광경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차량용 타이어가 굴러다니고 각종 건설자재들이 나뭇가지에 얹혀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 흘리의 포장길에 올라서서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진부령스키장 리모델링 공사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알았던 청정계곡의 모습을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안타까워도 희망은 놓지 말고 지켜 보자"는 유진수(50) 회원의 말처럼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무거운 마음이 한구석에서 떠나질 않은 채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네온등이 온통 번져서 보인다. 빗물 때문인가 보다. 아무도 모르게 내리는 마음의 빗물 때문에….
산행안내
양평~6번국도~홍천~44번국도~인제~한계리민예관광단지~진부령스키장
■ 등산로
▲중흘리~마산봉~암봉~대간령~마장터~창암 (5시간)
▲중흘리~마산봉~암봉~대간령~마장터~흘리(6시간 30분)
▲중흘리 초입: 흘리삼거리(스키장 앞)에서 좌측으로 2.2㎞ 지점에서 우측 시멘트포장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