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용 방안
참으로 다행인 점은 29개 임진강변 나루터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원형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모양새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민통선 지역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았고 한강 하류처럼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을 마구 쌓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고랑포와 두지나루 외에도 임진강 나루 등이 관광지의 형태로 남아있다. 또 임진강변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둔전 나루' '아미나루'등 마을마다 그 명칭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전문가들은 "고랑포와 두지나루를 중심으로 한 임진강 중류 지역의 나루들은 인근 역사 유적지와 함께 활용가치가 매우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고랑포 인근에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과 고려시대 왕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이 있고 연천지역 고구려 3성(城)인 '호로고루성(자미성)' '당포성' '은대리성'이 모여 있다.
연천군 선사문화관리사업소 윤미숙 연구사는 "또 임진강과 한탄강 전 지역에 걸쳐 구석기 시대의 생활터 및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면서 "특히 백제시대 초기 무덤 형태인 '적석총'도 6곳이나 발견돼 백제 초기 문화 및 국가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적석총 가운데 학곡리 적석총과 삼곶리 적석총은 현재 도 지정문화재로 연구·보호하고 있다.
특히 임진강 하류 지역은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DMZ 평화생태공원'의 강력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 박은진 책임연구원은 지난 2월 열린 'DMZ 평화생태공원 심포지엄'에서 "세계적인 보호 희귀종과 멸종 위기종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는 곳"이라며 "주변에 임진각·판문점·도라산역 등 안보관광자원도 풍부해 생태공원 후보지로 적합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연구원은 "DMZ는 한반도 접경지역으로서의 특수성과 역사를 담고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관광자원"이라며 "평화·안보·생태·역사를 키워드로 한 세계적인 관광목적지로 육성함으로써 경기북부지역으로 관광객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생태관광의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랑포(연천군 장남편 고랑포리)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임진강 중류 즈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시대를 건너 한국전쟁 이전까지 임진강 최고의 나루였던 '고랑포'가 절벽 사이에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한강 하류에서 각종 수산물을 강원도 철원과 포천·연천 등의 내륙지역까지 옮기려면 역시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했다. 바로 이 고랑포가 임진강 하류에서 바닷배들이 물길을 거슬러 올라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고랑포보다 더 상류로 올라가려면 바닷배보다 몸집이 작은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다.
고랑포 상류 지역으로는 수심이 점점 얕아지기때문에 몸집이 큰 바닷배는 더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랑포는 임진강 유역의 바닷배와 나룻배가 모두 모여드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또 '개성'과 '서울'을 잇는 가장 빠른 육로길이 바로 이곳을 향하고 있었기에 고랑포는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큰 상권이 형성됐다. 실제로 1930년대에는 고랑포 인근의 인구가 5천742명에 달했다.
또 화려하고 세련된 실내 디자인으로 '사치의 상징'이었던 '화신 백화점'이 있었고 '장흥관'이라는 중국집과 병원 등 큰 상권이 형성돼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 노동조합으로 추정되는 '고랑포 노동조합'과 고랑포 인근 적성·배학·진동면 주민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금융조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은 고랑포 물길 뿐만 아니라 수대에 걸쳐 전래돼 오던 우리의 미풍양속 또란 단절시켰다.
바로 고랑포에서 행해졌던 도당굿(혹은 고창굿)이 바로 그것이다. '윗고랑포'와 '아랫고랑포'가 3년에 한번 음력 2월 길일(吉日)을 택해 지내는 항례제(恒例祭)인데 준비는 정월 10일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7일씩 보름동안 위·아래 고랑포가 경쟁하듯 치렀는데 '개성·평양 기생'들부터 시작해 인근 지역의 양반들까지 모두 모여드는 바람에 일제시대 삼엄했던 경찰력으로도 통제가 안될 정도였다고 한다.
연천군 선사문화관리사업소 윤미숙 연구사는 "3 이상 장대에 형형색색의 깃발을 매달고 팔 선녀와 다섯 동자들이 농악에 맞춰 춤을 췄다고 하는데 이는 마을 어른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할 수만 있을 뿐 현재는 문헌으로 남아있지 않아 재연하기 힘들다"면서 "소중한 우리 무형문화 유산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도당굿의 원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연천군이 나루터 진입로를 새로 깔고 나루터도 콘크리트로 재정비해 인근 지역 어민 4~5명이 고랑포에서 배를 띄울 뿐이다.
한 어민은 "황복과 참게를 비롯해 각종 잡어들이 많이 잡힌다"면서 "특히 황복철인 5월에는 밀려드는 전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한국전쟁 이후 민통선 지역으로 분류되면서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됐지만 최근 국방부가 고랑포 및 경순왕릉 등 일부 민통선 지역에 한해 출입을 허가하면서 자유롭게 고랑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두지나루(파주시 적성면 두지리)
고랑포에서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고 이 절벽이 끝나는 지점에 나루터가 자리잡고 있다.
나루터 땅 모양이 '뒤주'를 닮았다 해서 '두지나루'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고려 태조인 왕건은 임진강과 어우러진 장단석벽(長湍石壁·절벽)을 감상하기 위해 문무 신하들과 함께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아 백성들과 어울려 허물없는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현재는 연천 장남면과 파주 적성면을 잇는 '장남교'가 나루터 옆에 놓여지면서 나루로서의 의미는 퇴색됐다.
다만 인근 절벽의 절경을 감상하기 위한 유람용 황포 돛배가 운영되고 있으며 하루 평균 20명 안팎, 주말과 휴일에는 50여명이 황포 돛배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해마다 익사자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물길이 깊고 빠른 곳이기도 하다. 고려 충선왕때에도 인근 감악산 산제를 올리기 위해 이곳을 건너다가 익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실제로 인근 수심은 최대 15m를 웃돌고 있고 강원도 철원이나 연천지역에 비가 내리면 강물이 순식간에 불어난다.
또 임진강 상류와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지역이기 때문에 물 빛깔도 다른 지역에 비해 탁하기 때문에 익사 위험이 더욱 높다. 이에 연천군은 두지나루에 8월 한달동안 해상구조 안전대원 4~5명을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사진/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