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바위는 자월리에 위치한 곳으로 썰물로 바닷물이 빠지면 건너 갈 수 있는 길이 드러나는 곳으로 섬안에 또 다른 섬이 자리 잡고 있다.

섬의 밤바다에 설레는 연인들이 휴대폰 카메라의 불꽃을 터뜨린다. 빛은 또다른 빛을 만나 새로운 빛을 만든다. 달빛은 포말에 부서지고, 부서진 빛의 조각들은 바다 위에 흐드러진다. 어느 불꽃놀이가 이보다 더 화려할까. 불꽃의 몸부림에 눈이 시릴 지경인데, 파도 소리 마저 빛의 여운을 머금었다. 연인들을 시샘하는지… 자월의 파도는 어느덧 육지를 향해 진한 입맞춤을 시도한다.

'자월'(紫月)이란 이름의 유래는 달빛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시대 자월도로 귀양살이를 하러 온 어떤 이가 첫날 밤 신세 한탄을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침 보름달이 떠 달빛이 유난히 밝은데 갑자기 달이 붉어지더니 바람이 일어나고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는 하늘도 자기의 억울함을 알아 주는가 싶어 그때 이곳의 이름을 자월도라 지었다고 한다.

당시 귀양온 이가 바라보는 달과 피서철 섬을 찾은 연인들이 바라보는 달은 분명 같을진대 그 느낌은 전혀 다른 듯하다.

'옛 정취 그윽한 메밀꽃 마을'.

인천 앞바다의 섬을 소개하는 '섬·섬·섬' 시리즈가 경인일보에 연재되던 20년 전, 당시 자월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낮은 야산이 많고 물이 부족해 당시 자월도에선 가뭄을 덜 타는 메밀이나 보리가 농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마당에 깔아놓은 메밀을 도리깨로 두드리는 모습은 자월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밀 타작' 풍경이었다.

그럼 지금은….

자월도는 인천과 32㎞ 떨어진 군도(郡島) 중 하나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1시간 30분 가량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면적이 7.1㎢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해 있는 승봉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등 4개의 유인도와 동백도 등 9개의 무인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이들 섬 중 규모가 가장 큰 만큼, 주민수도 가장 많아 자월면 전체 525 가구(1천86명, 6월 말 기준) 가운데 절반 이상인 275가구가 자월도에 둥지를 틀고 있다.

20년이 지난 후에 둘러 본 자월도에서 메밀의 흔적은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대신 그 자리를 고추나 수수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소득이 높은 농작물을 선호하다 보니 80년대부터 고추 등 대체작물이 자월도에서 메밀을 밀어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지금 자월도에서는 고추와 수수, 조 등 5가지 곡물을 건강웰빙식품으로 재배해 '자월도 오곡'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 한겨울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 낚시객들로 붐비는 자월도는 곳곳에서 갯바위 낚시를 즐길수 있다.

양잠과 양봉도 마찬가지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양잠과 양봉은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자월도의 명품 소득원이었고 주민들은 이를 통해 상당한 소득을 올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자월3리의 경우, 34가구 중 절반인 17가구 가량이 양잠농가였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메밀과 마찬가지로 섬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단지 강태원씨 농가 한 곳만이 가업 형태로 양잠과 양봉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산의 저가 물량공세에 따른 파장은 섬마을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메밀과 보리, 양잠, 양봉이 주요 농업 소득원이었다면 어업 소득원은 굴과 바지락, 김 양식이 주를 이뤘었다.

▲ 주민들이 해변가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다.
이중 그래도 지금까지 비교적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굴이다. 자월도 주변에는 야생굴이 많아 솜씨가 좋은 사람이면 하루에 4~5근은 너끈히 땄었다.

자월면사무소에 따르면 지금도 150여가구가 굴을 채취, 인천을 비롯 수도권에 공급하고 있으며 연간 평균 1천500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김양식은 섬의 노령화와 맞물려 사라지고 말았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육지로 떠나면서 섬에 남은 노인들이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김양식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의 가격이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도 주민들이 김양식에서 손을 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바지락 또한 서해의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변화와 맞물려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바닷가에서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바지락 캐기가 성행했던 예전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자월도의 바지락은 이제 주민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재미삼아 바지락을 캐는 관광객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장골해변 인근에서 만난 박길난(73·여)씨는 "물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에 몇시간씩 굴을 캐는데 한달을 캐도 세금도 못낸다"고 말했다.

굴을 제외하고는 섬의 전통적인 어업소득원이 자취를 감추거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섬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해진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자월도는 섬 자체가 거대한 민박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펜션과 민박집이 섬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들이 찾아 상권이 형성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펜션과 민박집이 들어서면서 비록 소규모지만 새로운 마을이 생겨나기도 한다.

자월도의 현재 생업 분포는 펜션·민박 등 관광업이 40% 정도로 가장 많고 농업과 어업이 각각 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펜션·민박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피서철 특수도 특수지만 자월도에서의 낚시가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서로 길게 형성된 자월도의 남쪽엔 장골해변, 큰말해변 등 해수욕장이 발달해 있고 북쪽에는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갯바위가 많이 분포해 있다.

마바위, 진부리, 하니포, 떡바위, 작은장불, 굴부리 등의 갯바위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물론 선상낚시를 즐기는 관광객들도 있으나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월도의 슈퍼마켓이나 매점 등에서는 대부분 대나무로 만든 1회용 낚시대와 미끼, 낚시도구들을 판다.

낚시의 명소로서 자월도가 널리 알려지면서 섬 관광의 기존 틀도 크게 바뀌었다. 여름에 반짝 사람들이 찾는 섬이 아니라 겨울을 제외하고 1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3계절 관광지로 변한 것이다.

현남식 자월면장(현 관광문화과장)은 "지난해의 경우, 낚시 성수기인 9월부터 10월말까지 주말에 평균 1천500여명(자월면 전체로는 5천여명)의 관광객이 자월도를 찾았다"며 "이로 인해 숙박업소들이 여름 피서철보다 낚시 성수기인 가을에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는 소득의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섬에 안겨 주고 있다. 외지인들이 많은 돈을 들여 고급형 펜션을 짓고 관광객들이 이들 펜션에 몰리면서 기존 가옥을 민박집으로 운영하는 원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표면화되지는 않았으나 외지인과 원주민간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자월도 토박이인 한 주민은 "자월도의 그 많은 펜션과 식당 가운데 토박이가 운영하는 펜션은 4개, 식당은 1개에 불과하다"며 "외지인이 운영하는 펜션과 경쟁하느라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시설을 개선하다 어려움에 처한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섬이 도시화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월도 깊은 곳에는 이처럼 자본의 논리가 침투한 흔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어쨌거나 단순히 관광객 입장에서 볼 때 자월도는 가족과 함께 다녀오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해수욕, 낚시 등 섬에서 할 수 있는 놀이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바지락, 낙지, 소라 등을 잡을 수 있어 해양체험 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피서철의 끝자락 자월도 해변에는 연인들보다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았다.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