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반쪽짜리 산모양으로 동강 굽어보는 백운산하늘도 보이지않는 나무그늘 헤집고 1시간여.정상서면 시원한 바람보다 이웃한 고고산·왼편으로 빨려들 듯 흐르는 강물보며 한걸음 한걸음… 하산 맛 '일품'

#정선아라리 굽이쳐 흐르는 동강을 굽어보는 백운산. 점재나루에서 배로 건너던 마을

정선과 평창의 깊은 산골을 지나온 오대천, 골지천, 임계천, 송천 등이 정선읍으로 모여들어 조양강을 이루고 강은 흐르고 흘러 정선읍 가수리에서 동남천을 만나면서 비로소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영월을 기점으로 동쪽에서 흘러오는 동강과 서쪽에서 흘러오는 서강이 영월에서 만나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꾸고 충북 단양, 충주를 지나 양평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쳐져서 '한강'이 되는데 예전의 동강은 사람들도 접근하기 어려워 정선사람들에 의해 '골안'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었다.


이러한 동강은 1950년대 후반까지 뗏목이 떴던 곳이다. 정선과 평창에서 벌채한 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물길을 열었던 곳으로 동강을 거쳐 정선에서 모아진 뗏목들을 크게 엮어 남한강을 따라 서울까지 운송하던 통로였었다. 지금은 보트를 저으며 물길을 따르는 래프팅 열기가 뜨겁지만, 그 옛날에는 뗏목을 몬다고 해서 혹은 돈을 떼로 번다해서 붙여진 이름인 '떼꾼'들 조차도 통과하려면 목숨을 걸어야했던 곳이 '골안'이다. 그 까닭에 떼가 닿을만한 곳이면 떼꾼들이 쉬어가는 객주집이 성시를 이뤘다. 그것이 1957년 철로가 개통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나앉게 되었고, 서방을 떼꾼으로 보낸 후 마음 졸이던 아내들이 부르던 정선아라리도 함께 잊혀져 갔다. '골안'의 힘겨운 물살을 헤치고 된꼬까리 여울을 지나면서 마음을 놓으며 유순한 물길을 따르던 떼꾼들이 목청껏 부르던 정선아라리도 이젠 옛 추억이 되었을 뿐이다.

물길을 따르고 객주(客主)의 성격만 바뀌었을 뿐 동강은 여전히 사람들을 모으고 부르고 있다. 떼꾼들의 뒤를 이어 레프팅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강으로 몰려왔고 그리고 강가에 반쪽짜리 산 모양을 하고 강물을 굽어보는 백운산이 동강과 함께 정선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그 백운산자락 아래에 있는 예전의 점재나루터는 마을 주민들이 동강을 건너려 이용했던 배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나루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잠수교가 놓여져 있고 두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이 강 건너 시멘트 도로와 맞닿아 있다.

"아저씨 배 좀 띄워 주세요~." "그러들 말고 줄 잡아 댕겨서 배 끌어다가 타고 건너와." 돈 없는 학생들로 보였는지 사공은 돈 안내고 강을 건너오는 방법을 일러줬었다. 10여년 전까지 백운산으로 가기 위해 불러대던 그 아저씨, 그 사공을 기억 저 멀리로 접어 두고 그동안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며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잠수교를 여유롭게 걸으며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면서 바라본 백운산의 뼝대(자연절벽이라는 뜻의 강원도 사투리)가 강 아래까지 뻗으면서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점재마을엔 등산객들을 위한 시설물로 화장실도 생기고 산행안내 표지판도 생겼다. 변한 것도 있지만 물결만은 변하지 않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올라서야 할 뼝대 조차도 의연하게 서 있다. 동강의 물길을 바라보려 점재마을 왼편의 밭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밭을 지나면서 산은 곧바로 가파르게 돌변한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나무 그늘 속을 헤집고 코가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오르는 것에 열중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빗물에 젖은 땅인지라 발걸음이 뒤로만 밀려난다. 그렇게 한시간여를 힘겹게 오르고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하지만 한여름 시원한 바람 보다 눈의 호사스러움이 앞서는 곳이 이곳 백운산이다.


#마음 놓고 걷기 힘든 반쪽짜리 능선

백운산 정상에는 조그만 돌탑 하나가 서 있다. 주변 조망을 위해 나무를 베어낸 흔적도 있고 밋밋한 정상에서 동강을 바라보기 위해 한껏 목을 빼어 보지만 그다지 좋은 장면은 보이질 않아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어 가며 구경에 나선다. 차라리 오르기 전 능선 길에서의 풍경이 더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백운산 고스락의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에는 닭이봉(1천28m), 곰봉(1천15m), 고고산(854m), 완택산(916m)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북서쪽으로는 푯대봉(916m)이 백운산과 이웃하며 지키고 서 있다. 발아래 가까스로 보이는 소동마을의 가옥들이 손에 잡힐 듯 닿아 있고 그 뒤로 고구려에서 쌓은 것으로 알려진 고성산성(425m)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양한 볼거리에 이렇게 눈이 즐거운 이곳도 한동안 댐 건설 계획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는데, '영월댐 백지화 3개군 투쟁위원회' 소속 영월, 정선, 평창 군민들의 반대운동과 수 많은 환경운동 단체와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서서 동강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물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댐건설 논란이 극성이던 시절에 우연히 들른 동강에서는 유실수 심기가 한창이었다. 보상을 받기 위해 이런 저런 나무들을 심었던 것인데, 지금은 그 흔적들을 찾기가 어렵게 된 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백운산 정상에서 칠족령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왼편에 낭떠러지를 두고 걷는 길이어서 다소 위험하다. 특히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상황에서는 더욱 안전을 염두에 두고 걸어야 한다.

발아래를 가만히 내려다 보노라면 동강의 물속으로 그대로 빨려들 것 같아 발바닥이 간지럽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절벽쪽으로 붙지 않도록 한다.

옛날 제장마을에서 옻을 끓일 때 이진사댁의 개가 발에 옻을 묻힌 채 고갯마루에 올라 발자국을 남겼다고 해서 지어진 칠족령(柒足嶺) 능선에는 젊은 시절 이곳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게 된 여자의 추모비가 있다. 70년대 호사스러움을 구가하던 어느 부잣집 담벼락에 솟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는 능선을 따라 여전히 왼편에 동강을 두고두고 굽어보며 하산하는 맛이 일품이다. 능선이 낮아지면서 동강이 점점 더 가까이 와 닿으려 한다.

칠족령에 이르면 우측으로 나 있는 길은 문희마을로 향하게 되고 아래로 나있는 길을 따르면 제장마을에 이르게 된다. 취재팀은 제장마을로 하산하였는데 날머리 끝에는 주민이 거주하던 가옥을 개조해서 민박도 받고 등산객들에게 이런 저런 술과 음료를 팔고 있었다.

동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튀겨서 내놓는 메뉴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인지라 눈요기로만 만족을 하고 부지런히 주차장으로 향한다. 제장잠수교를 건너면서 올려다 본 백운산으로 안개가 피어 오르고 궁궁을을(弓弓乙乙) 흐르는 동강에 서서 맘껏 푸르른 나무들과 산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기원해본다.


산행안내

 
 
■ 교통


영동고속도로 남원주IC~중앙고속도로~신림IC~황둔~주천~소나기재~장릉~영월~정선 신동읍 예미리~고성리재~예미초등학교 고성분교(고성분교에서 정선방향으로 시멘트 포장길로 5분 정도 달리면 좌측으로 점재나루터가 나온다).

※고성리재를 넘으면 마을 어귀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다. 성인 1천500원, 소인 1천원

■ 등산로

1. 점재잠수교~백운산 정상~칠족령 능선~추모비~제장잠수교 (4시간 10분)

2. 점재잠수교~용가능선 안부~백운산 정상~칠족령~제장마을 (5시간)

3. 점재잠수교~용가능선 안부 ~전망대~백운대 정상~점재잠수교 (3시간)

■ 산행 TIP <등산화> ▲치수는 양말을 신고 발을 앞으로 밀었을 때 뒤꿈치에 손가락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 정도로 선택하되 자신의 발 너비도 염두에 두어 구매한다.

▲가급적 발목이 있는 제품을 선택하여 발목을 감싸도록 한다(이물질 유입차단, 해충방지, 발목보호).

▲국내에서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고어텍스 제품은 사치이다. 겨울용은 별도로 구매하여 사용하도록 한다.

▲등산화를 고를 때 바닥창이 뒤틀리는 정도로 구분하여 선택하도록 한다.

▲산을 오를 때에는 끈을 느슨하게 하여 발과 발목의 혈액순환을 돕는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는 반드시 끈을 발목까지 조여서 발이 신발 안에서 돌지 않도록 하며 발목을 보호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