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수많은 포구와 나루를 품었던 경기서해안.

강은 육지에서 굽이친 뒤 바다로 흘러든다. 강을 주름 잡은 나루지만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포구와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진다. 너른 갯벌과 풍부한 어족자원을 자랑했던 경기 서해안.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포구가 형성됐고, 그 속에는 진한 사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간척사업은 포구들이 설 땅을 빼앗았고, 시화방조제라는 '괴물'은 경기 서해안의 많은 포구를 무덤으로 안내했다.

■ 육지가 삼킨 포구들

지난 26일 안산시 단원구 호수동. 빽빽하게 들어찬 고층아파트단지 옆으로 안산천 물길을 따라 조성된 깔끔한 안산호수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소래포구, 마산포와 함께 경기 서해안의 3대 포구로 불렸던 사리포가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30대 이상이라면 어린 시절 어선들이 줄지어 늘어선 사리포 선창을 거닐었던 추억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과거의 영화는 남아있을까. 사리포의 흔적을 찾아 한참을 돌았지만 이제 사리포는 지도에서는 물론, 주민들의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사실 사리포는 오랜 역사를 가진 포구가 아니다. 원래 잡목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1953년 단원구 초지동 별망 앞에 제방을 쌓은 뒤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 별망 앞 제방은 안산천 하류의 빈정포(濱汀浦)와 성머리포, 반월천의 조구나루까지 드나들던 바닷물을 끊었고, 거점이 없어진 어선들은 새로운 포구를 찾아야 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당시까지 바닷물이 닿았던 사리포가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 전성기를 구가했던 1987년 사리포(왼쪽·안산시 제공)와 안산호수공원으로 변한 2008년의 사리포.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제방 하나가 조선시대부터 이름을 날린 포구와 나루를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대신 새로운 유망주, 사리포를 역사에 등장시키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사리포는 1970년대 반월산단 조성과 함께 어시장과 횟집 등이 들어서며 전성기로 접어든다. 1980년대에는 어선 140여척이 오가고, 수도권 일대에서 관광버스를 이용해 몰려들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새우가 많이 잡히는 가을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사리포를 자주 찾았다는 김모(45·안산시 상록구 사동)씨는 "수산물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그 중에서도 싱싱한 횟감이 유명했다"며 "대중교통이 거의 없었고, 대리운전도 시작되기 전이라 소주를 한 잔 마신 뒤 운전을 못 해서 발을 동동 굴렀던 게 생각난다"고 과거를 더듬었다.

짧은 시간에 타오른 사리포의 영광은 길지 않았다.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며 사리포에도 바닷물이 끊겼고, 약 40년간 반짝했던 사리포 역시 먼저 사라진 빈정포, 성머리포, 조구나루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앞서 반월산단 조성과 함께 고려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둔배미나루와 초지나루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떠났다. 둔배미나루와 초지나루는 현재 단원구 초지동 일대다.


■ 나루인가, 포구인가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연륙교가 놓이기 전 간조 시 갯벌을 가로지르는 것을 빼면 경기 서해안의 섬들을 오가는 수단은 배가 유일했다.

포구가 형성될 정도로 어선이 많이 드나들지는 않지만 육지와 섬, 또는 섬과 섬을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요지에는 자연스럽게 나루가 생겼다.

이날 찾은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의 흥성리나루도 그런 나루 중 하나다.

과거 대부도 외해 쪽에서는 해적들이 자주 출몰했다. 흥성리나루는 바로 마을 청년들이 해적에 대비하기 위해 망을 보던 자리라고 한다.

흥성리나루는 대부도와 인천시 옹진군 선재도를 잇는 선재대교 바로 아래에 남아 있었다. 선재대교가 선조들이 나루로 이용했던 최단거리를 그대로 꿰차고 앉은 것이다. 1990년 선재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하루에 20명 정도가 이용했지만 다리가 놓인 뒤 흥성리나루는 나루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현재는 어선 두서너 척과 레저보트 몇 척, 그리고 낚시꾼 몇 명만이 흥성리나루를 지키고 있다.

대부도와 인천항을 연결했던 대부도 남쪽의 말부흥나루도 흥성리나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대부도와 선감도를 잇는 방조제가 생기면서 인천을 오갔던 연락선이 사라졌고, 지금은 어선 몇 척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나루는 '강이나 내,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곳'이다.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라고 정의한다. 둘 모두 배가 다니는 곳이지만 포구의 배는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닌 어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흥성리나루와 말부흥나루는 이미 오래 전 나루 기능을 잃어버렸다. 어선도 거의 없는데 포구라고 하기도 어렵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지만 이제는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경기 서해안 포구와 나루의 현주소다.

▲ 선재대교 완공으로 나루 기능을 상실한 흥성리나루는 나루도 포구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 살아남은 포구들의 부활 날갯짓

"요트대회 전곡항 '마리나항' 발돋움… '해양관광지구 개발' 탄도항 급성장"

경기 서해안의 많은 포구와 나루가 사라지고 있는 반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포구들도 있다.

올해 경기국제보트쇼와 코리아매치컵세계요트대회가 열렸던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과 '선감 해양체험관광지구'의 중심이 될 안산시 단원구 탄도항 등이다.

전곡항은 1회 행사의 성공에 이어 내년에도 보트쇼와 요트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국제규모 대회에 걸맞게 진입도로가 널찍하게 뚫리는 등 기반시설이 정비됐고, 내년에는 요트계류시설까지 갖추게 돼 명실공히 경기 서해안을 대표하는 마리나항으로 발돋움할 태세다.

탄도항은 어선들이 조업 중 태풍을 만나면 대피하는 곳으로 이용돼 어민들 사이에서는 '고짓도'로 불리기도 했다.

대피소로 이용될 만큼 조그만 선착장에 불과했지만 지난 1988년 대선방조제가 건설되며 급격한 성장궤도에 올랐다.

특히 간조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누에섬이 바로 앞에 있고, 최근에는 어촌민속전시관과 수산물센터 등 관광시설도 갖추고 있다.

경기도와 안산시, 화성시는 오는 2010년까지 모두 1천800억원 이상을 투입해 탄도항과 전곡항, 불도, 제부도, 대부도 등과 일대 바다 1억2천970만㎡를 대규모 복합해양레저단지인 선감 해양체험관광지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탄도항은 이에 힘입어 서해안시대 교두보로 부상할 준비에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