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노동위원회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사측의 협상 조정 시한을 연장한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2008 산별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에서 보건의료노조원들이 의료민영화정책폐기, 고용안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미리가 본 서민들의 생활


2018년 9월의 어느 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2018년의 대한민국은 10년전과 다르게, 공기업이 전부 사기업으로 팔려버린 '민영화' 대한민국이 되었다. 전국을 누비는 영업맨 생활을 하고 있는 수원의 홍길동씨는 오늘도 지방으로 출장을 가기 위해 민영화된 철도를 이용한다. 강원도의 한 도시로 출장을 가야하는 홍길동씨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예전에는 이곳으로 직행하는 기차가 있었는데…." 철도가 민영화 된 이후 수요가 많지 않은 지선들은 모두 폐쇄가 되었다.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금은 엄청나게 올라버렸다. '돈벌이'를 위해서다. 덕분에 지방의 소도시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고속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던 중 홍길동씨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다. "쾅" 갑자기 엄청난 충격과 함께 굉음이 들렸다. 오른팔의 통증에 정신이 든 홍길동씨. 오른팔이 골절된 것 같다. 열차가 탈선을 해 버린 것이다. 철도 민영화 이후 철도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차량 및 설비를 유지 보수하거나 수리하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민영화 이후에는 '돈벌이'를 위해 이러한 '소모적인' 일을 최소화하고 있다. 오른팔에 큰 상처를 입은 홍길동씨는 팔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른 걱정에 휩싸여 있다. "제길, 보험에 가입했어야 되는데…." 의료 민영화 이후 국가의 건강보험은 있으나마나한 것이 되었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질병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신 비싼 돈을 내고 가입해야하는 민간보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온 것이다. 민간보험사들의 목표는 '돈벌이'이기 때문에 가입비는 '많이' 받고 보장은 '조금' 해주려 한다. 그래서 보험사들과 가입자들 사이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영업맨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홍길동씨는 가입비가 싼 보험상품을 이용하는데, 그 상품은 골절상은 보장해주지 않는다.

엄청난 치료비를 걱정하며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홍길동씨.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기 위해 병원 화장실에 왔다. 그런데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손에서 동전을 꺼내더니 수도꼭지에 연결되어 있는 기계에 동전을 집어넣는다. 동전을 받아먹은 기계는 이내 30초를 세기 시작한다. 홍길동씨는 빠른 손놀림으로 30초 안에 세수를 마친다. 30초가 지나자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자동으로 끊긴다. 수도 민영화 이후 엄청나게 올라버린 물 값 때문에 대부분의 수도꼭지에는 잠금장치가 달려있는 상황이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물 값을 아끼기 위해 빗물을 받아서 쓰는 황당한 일도 일어나고 있다.

홍길동씨의 이야기가 터무니없고 과장됐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온 사례들은 실제 해당 분야의 민영화를 실행했던 외국의 사례들을 옮겨적었을 뿐이다.

영국에서는 1993년에 철도 민영화를 위한 입법이 이루어지고, 1995년부터 철도산업을 조각내서 팔기 시작해서 1997년 4월에 민영화를 완료하였다. 민영화의 폐해는 심각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차량 및 설비의 유지 보수를 등한시 한 민간기업들의 행태로 열차사고가 끊이지 않다가, 1999년 10월에는 런던 패팅턴역에서 31명이 사망하는 치명적 사고가 발생한다. 요금을 물가인상 수준 이하로 억제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공수표였다. 영국 정부 통계에 의하면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물가상승률은 11% 였지만 철도요금은 14%가 올랐다. 철도산업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로 일자리를 잃거나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반면에 철도를 소유한 사기업들은 요금을 올리고 비용을 줄인 결과,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도를 소유한 1% 자본가만의 행복일 뿐이다. 결국 영국정부는 철도 민영화 실패를 선언하고 철도를 정부 관리의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했다.

의료 민영화의 폐해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다룬 마이클 무어 감독의 걸작 다큐멘터리 '식코'에 잘 나와 있다. 국가 차원의 건강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미국에서 서민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일은 병에 걸리는 것이다. 무릎이 찢어졌는데도 보험 가입을 못해 집에서 손수 상처를 바느질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식코'는 의료 민영화가 어떤 사태를 불러일으킬 지를 미국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999년 남미의 볼리비아에서는 미국기업 벡텔이 코차밤바 지역의 상하수도 운영권을 단돈 2만달러에 매입하면서 수도 민영화가 된다. 물 값은 이전의 세 배나 오르게 되니 볼리비아 사람들은 수도꼭지에 자물쇠를 채우고 빗물을 받아서 쓰게 되었다. 미국기업 벡텔사와 연결된 볼리비아 정부는 벡텔사의 이익을 위해 강수량이 줄어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면서 빗물을 받아먹는 것을 금지하는 황당한 법안까지 추진한다. 이에 분노한 볼리비아 국민들이 봉기를 했다.

305개 단계적 착수… 저항 덜한 곳부터 '조이기'

지금 이명박 정부는 305개의 공기업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계획을 보니 국민들의 반대가 심할 것 같은 수도, 의료, 전기 등의 민영화는 뒤로 돌리고 구제금융이 투입됐거나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반발이 적은 부분부터 시작하는 듯하다.

그리고 민영화라는 단어는 슬그머니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다. 앞서 본 영국, 미국, 볼리비아의 '민영화'된 모습이 과연 '선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정부가 내놓은 공기업을 살 여력이 있는 세력은 소수의 국내 재벌과 외국의 거대기업들 뿐이다. 오직 이윤을 최대의 목표로 하는 이 조직들은 당연히 민영화된 서비스의 '요금'을 올리고 '비용'을 줄여서 이윤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이것이다.

요금이 올라가게 되면 서민들에게는 생활고로 다가오게 될 게 뻔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결국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돌리지 않을까 하는 것. 빈익빈 부익부를 더 악화시키는 이 놀라운 부의 '재분배'는 바로 민영화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투표자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 그러나 강부자 내각,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무리한 언론장악 시도, 부동산 투기 규제 완화, 종교 차별 등에 놀란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측되는 '민영화'에 대해 지금이라도 정부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김병권 연구센터장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까지 '민영화'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진화라는 용어는 지난 6월 촛불집회로 민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높아지자 이명박 대통령이 용어를 바꾼 것인데 민영화와 내용적 차이점은 없습니다. 지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대기업 규제완화와 감세, 공기업 민영화, 금융개방, 교육과 의료의 시장화, 그리고 경부대운하 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공기업 민영화는 참여정부가 큰 실적을 내지 못했다고 후보시절부터 비판하던 부분이고,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적인 경제정책으로 간주하는 듯합니다. 특히 공기업 민영화로 정부지출을 줄여 감세정책에 맞물리게 하는 한편, 공기업 매각대금을 재원으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규모가 큰 공기업을 시장영역으로 풀어야만 시장이 활성화되고 공기업도 효율성을 갖게 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민영화를 통해 얻는 이익과 손해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부는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정부 부담 축소, 적자경영해소, 방만·부실경영 해소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계획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효율화라는 애초의 목표보다는 실제로는 국민들의 서비스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민영화 과정에서 공기업을 인수하는 대기업이나 외국기업들의 덩치를 키워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의료보험 민영화나 수돗물 민영화에 대해 국민들이 반발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이들 민영화가 국민들의 비용부담을 크게 높일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정부가 매각할 대우조선해양을 두고 포스코, 한화, GS그룹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의 인수전이 치열한 상황이고 인수여하에 따라 재계순위가 바뀔 정도로 인수합병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보면 민영화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에서는 민영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흔히들 민영화하면 정부 산하의 부실 방만한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요. 그러나 실체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입장에서야 부실하고 적자만 보는 공기업을 팔아서 부담을 털어버리고 싶겠지만, 공기업을 인수하는 민간기업의 입장은 다릅니다. 알짜 공기업을 사서 수익을 내고 싶은 겁니다. 정부에서 골칫거리는 민간기업에서도 골칫거리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무엇 때문에 이런 기업을 인수하려 하겠습니까. 때문에 결과적으로 공기업 민영화는 알짜 우량기업들이 사적 기업들에게 매각되는 결과를 빚습니다. 과거 민영화된 포스코, KT, KT&G 모두 민영화 이전에도 흑자가 나던 알짜 공기업이었고, 지금 민영화계획에 올라와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도 매년 2천억원 이상 흑자가 나는 공기업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영화의 실체를 좀더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