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의 거대한 시장, 그리고 지난달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사상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해 명실공히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경인일보의 관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인일보가 일찌감치 아시아의 공룡을 넘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중국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언론사가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협력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경인일보가 중국에서 현재 주목을 받고 있고, 국내에서 '중국통(中國通)' 언론사로 정평이 나있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각종 문화교류에서부터 경제협력, 유학생 교류, 각종 상품박람회 등을 통해 그동안 막후에서 중국과의 건전한 유대관계를 가져온 결과, 한·중 양국간의 우의증진에도 일종의 역할을 했던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수십차례의 각종 상품박람회 및 교역상담 등을 통해 경기·인천지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여왔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나 국가기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을 추진한 결과, 국내는 물론 중국내에서도 경인일보의 위상은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인일보가 중국에 대한 꿈을 갖고 교류협력을 준비한 것은 이미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 때였다. 당시 송광석 편집국장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들이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창춘 옌타이 등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막후교섭을 벌여왔다. 신문사가 중국 정부와 중국의 각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협력을 맺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실패와 좌절이 뒤따르기도 했고,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의 한 가운데서도 차곡차곡 노하우를 쌓아갔고, 착실하게 터득해 나갔다.
첫 번째 대(對)중국사업의 성공을 계기로 경인일보사는 이듬해 5월6일 북경경인문화교류유한공사라는 중국 현지법인을 설립하게 된다. 때마침 중국에서는 한류열풍이 대대적으로 불고 있었고, 무역교류와 더불어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시기였다. 중국 현지법인 설립은 중국과의 교류협력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으며 한국 청소년들의 단기어학연수 및 문화체험프로그램은 지난 8월 15일로 6차례나 성공리에 마쳤다. 특히 6기 단기연수는 베이징올림픽 기간중에 열려 참가학생들이 올림픽 한국경기를 응원하는 소중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특히 베이징올림픽기간중 한국 청소년들의 연수단에게 중국 당국이 비자를 발급해 허가한 것은 북경경인문화교류유한공사의 이 프로그램이 유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중국에서의 경인일보 위상을 확인시킬 수 있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조차 올림픽 기간중 한국의 단기연수단이 입국허가된 사실에 놀라기도 했던 것이다.
경인일보의 대(對)중국관련 사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마가편(走馬加鞭)'격으로 치닫는다. 2004년 7월8~12일까지 5일간 중국 창춘에서 '한중 포럼 및 2004 대한민국 중소기업 상품박람회'를 연다. 창간 44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인민일보 해외판과 공동으로 첫 상품박람회를 개최한 것이다. 경기·인천지역 80여개 중소기업과 중국 현지업체 등 700여개의 한중 업체들이 참가한 매머드 박람회로 단순한 상품전시를 떠나 실질적인 교역을 성사시키는 발판이 됐다.
연평균 10%의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는 중국. 세계화에 발맞춰 넓은 영토와 많은 자원 그리고 값싼 노동력과 인구 14억이 넘는 광대한 시장규모를 가지고 세계 경제대국을 꿈꾸며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중국. 지난해 국내총생산이 1조 위안(한화 약 150조원)으로 세계 4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중심에는 경인일보가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가 지난달 올림픽이 끝나는 동시에 한국을 방문한 것도 최대의 투자대상국인 우리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교역증진을 위함임을 볼때 경인일보의 30여차례에 걸친 중국현지박람회는 한중교역 활성화의 단초를 제공한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