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면서 국가 도읍지였던 유일한 곳, 강화도.

강화도는 섬(島)이면서, 한 나라의 도읍지(都)였다. 강화도는 우리 민족 개국이래 가장 중요한 지점에 늘 서 있었다. 참성단과 고인돌,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시기를 잇는 수많은 유적들이 강화가 품고있는 가치를 말해 준다. 강화도는 틀림없는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다. 강화도가 갖는 매력은 그래서 더 특별한지 모른다.

유구한 역사를 몸소 지닌 강화엔 그만큼 깊고 다양한 문화도 간직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생태 보물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가치는 우리 사회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숨겨져 있었다.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청년들은 도회지로 떠났다. 인구가 줄고 문 닫는 학교가 늘어났다.

이런 강화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광복 6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이던 지난 8월 15일 오전 강화 초지대교 입구. 강화로 들어오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차량행렬은 점심때를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가족 단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강화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강화의 무엇이 이들의 발길을 끌었을까.

이날 오후 2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의 옛 초지분교 자리. 공부할 아이들이 없어 문을 닫은 이 학교 운동장에는 생동감이 여전했다. 학생도, 교사도, 정규 수업도 없었지만 이 곳은 이제 전혀 새로운 개념의 배움터로 탈바꿈했다. 생태·문화 체험학교 '초록마당'이 초지분교를 대신한 것이다. '초록마당'이 내건 슬로건은 '하늘·땅·사람, 뭇 생명에 사랑을 전하는 생태문화체험학교'다.

서울에서 막 도착해 짐을 풀었다는 최선미(43·관악구 봉천동)씨 가족이 마당에 나와 있었다. 막내 딸 우하은(7)양은 오빠·언니들과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최씨 가족은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몇몇 이웃과 함께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아이들 캠프 보낼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여기저기 찾다가 신문광고를 보고서 '초록마당'을 택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매력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가깝다는 점도 끌렸다. 하은이는 벌써부터 대안에너지를 만들어 보고, 천연 재료로 염색을 하고, 갯벌에 가보자고 엄마를 졸라댔다.

최씨 가족은 이날 밤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공연 하나를 더 볼 수 있다. 1980~90년대 '노동가수'로 잘 알려진 김애영(52)씨가 14일과 15일 이틀간 이 곳에서 콘서트를 갖는 것이다. 노래패 '꽃다지'의 초대 대표를 맡았던 김씨의 첫날 공연이 끝나고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문화예술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의 막걸리 잔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계속 돌아갔다. 4년전 강화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김씨의 이번 공연 타이틀은 '갯벌에서 보낸 하루'였다. 망둥이·조개·방게·갯지렁이 등 갯벌의 생명체에 바치는 김씨의 노래가 강화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강화지역의 여러 폐교는 대부분이 '초록마당'과 같은 대안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강화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총 16곳. 이중에 무려 10개가 '초록마당'과 비슷한 형태의 문화·생태 교육사업 공간이 됐다.

강화도는 한반도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으며, 9개의 유인도와 18개의 무인도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가는 곳마다 유적이 있고, 문화재가 있고, 생태계를 온 몸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강화도는 또 2천만 수도권 주민을 뒤에 두고 있다. 가까이에 사람이 많다는 것은 강화도의 활용가치가 넘쳐 난다는 얘기다.

강화의 역사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과 참성단·삼랑성 등 단군 유적에서 출발한다.

고려시대엔 수도로서 대몽 항쟁의 거점이었다. 고려궁지·강화산성·고려왕릉·팔만대장경 조판지로 알려진 선원사지 등은 찬란했던 고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남한의 유일한 지역이 바로 강화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도 왕실도서관(외규장각)을 세울 정도로 중시했다. 특히 강화는 고려 이후 수많은 외침을 몸으로 막아낸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섬 전역을 둘러싼 5진, 7보, 53돈대가 그것을 말해준다. 강화는 또 조선말기 새로운 시대철학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바로 강화학파다.

우리나라 근대화는 강화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등 우리나라에 진출하려는 새로운 종교가 강화에 발을 디뎠고, 근대적 개념의 교육기관도 강화에는 유난히 많았다. 일제치하에선 독립운동도 치열했다. 강화만의 독립운동 특징이 있을 정도였다.

역사학자들은 그래서 강화도를 일컬어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비출 수 있는 유일한 거울"이라고 한다.

한반도 간척사업의 역사도 강화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강화의 간척사업은 결국 세 곳의 섬으로 나뉘어 있던 강화 본섬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강화지역 들판에선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농작물을 만들어 낸다. 인삼·쌀·순무·포도·고구마·수박·약쑥 등은 강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징을 띤다.

이응식(51) 강화군청 문화관광과장은 강화 농작물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자신만의 분석을 내놓았다.

이 과장은 그동안 강화와 관련한 역사·문화·생태 등 여러 측면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강화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설명했다. "강화도는 38도선 부근에 위치해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농작물이 좋다는 것이고요. 강화는 또 일조시간이 한반도에서 가장 길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여기에 밤낮의 큰 일교차, 갯벌 매립지, 해양성 기후 등이 복합된 것이 강화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입니다."

그는 실제로 여름 서울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강화에서 난 농산물은 다른 지역 것에 비해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강화는 새로운 농작물 경작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강화는 최근 풀기 어려운 숙제도 안게 됐다.

휴일에 강화를 찾는 사람들은 교통 체증에 시달려야 한다. 차량이 조금만 많아도 좁디좁은 시골 길은 도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유와 휴식을 위해 온 사람들이 짜증을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강화도로엔 특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인도가 없다. 도심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도로 구조다.

'개발'과 '보전'이란 상충되는 가치 틈바구니에 낀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전해야 하고, 또 무엇을 얼마나 개발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강화 문제'는 강화 주민 스스로가 풀 수도 없고, 외지인의 시각에서 접근해서도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기적이고,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강화도가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그 매력을 꾸준히 발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