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63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60여년전 우리 선조들은 연해주·하얼빈 등 국내외에서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국립 한경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들이 선조들의 희생정신과 나라사랑을 배우러 중국의 단둥·지안·하얼빈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벨로고르스크 등을 탐방하는 역사 여행을 떠났다. 올해로 3번째를 맞이하는 대장정에서 대장정단은 중국 및 러시아 지역의 백두산, 고구려 유적지 등 선조들의 얼이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는 10박11일간의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경인일보에서는 한경대 학생들이 중국·러시아에 남겨진 선조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대장정에 동행해 창간기념으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 지난 6월30일 오전 7시30분께. 압록강 변을 유람하기 전. 대장정단을 비롯 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압록강 철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적어놓은 비석. 한국전쟁의 애잔함이 비석에서 전해졌다.

# 대장정의 첫발 / 6월29일

조상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단둥(丹東)·지안(集安)·하얼빈(哈爾濱)·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찾아 역사 의식 고취를 위해 지난 6월 28일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했다.

파도를 가르며 여객선은 한경대학생 및 교직원(단장·장경만) 등 146명의 꿈을 싣고 힘차게 항해를 시작해 27시간의 긴 여정끝에 다음날 중국 잉커우(營口)항에 도착했다. 길었던 입국 수속을 끝내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버스 4대가 대장정단을 맞았다. 잉커우항은 심한 대륙성 기후로 여름 평균기온이 28도라지만 대장정단이 도착한 날은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잉커우항의 더운 날씨도 대장정에 나서는 학생들의 거침없는 질주에는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학생들은 바쁜 일정으로 도착하자마자 휴식없이 기념 사진 몇 장만을 찍은채 '단둥행' 버스에 올라탔다.

이동거리 300㎞, 5시간여만에 단둥에 도착한 뒤 한 식당에서 배고픔을 달래고 지친 몸을 단둥호텔에 풀었다.

대장정단은 호텔에 짐을 내리고 중국에서의 첫 밤을 맞이했다. 앞으로 펼쳐질 낯선 세계의 흥분과 설렘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 지난 1911년 미국의 폭격으로 인해 끊겨진 압록강 철교 대신 재건한 철교가 왼편에 설치돼 있다. 통행증만 있으면 오전 9시부터 오후4시30분까지 중국과 북한내 교역활동이 가능하다.


# 압록강변을 거닐다 / 6월30일

오전 7시40분. 압록강 철교. 한국전쟁때 미국의 폭격으로 끊어진, 단둥과 신의주를 이어주는 다리앞에 도착하니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대장정단은 배에 오른뒤 북한 신의주 쪽으로 다가갔다. 주욱 늘어서 있던 화물선 공장에서 일을 하던 북한 노동자들은 대장정단을 보며 반가운듯 손을 흔들었다. 중국 국경인근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확실히 '개방의 물결'에 익숙해져 그런지 남한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표시했다. 학생들을 포함한 대장정단도 반가움의 인사를 건네며 우리가 하나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단둥은 특히, 한국인들에게 여러가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평양과 베이징을 달리는 국경 열차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현대식 건물이 도시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등 하루가 다르게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통행증만 있으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북한내에서 중국인들과의 교역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

담당가이드는 "현재 신의주에 살고있는 동포들은 중국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보다는 잘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잉커우항에는 컨테이너가 넓고 높이 쌓여있었다.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차량도 매우 많았고 중국문화의 특색인 삼륜자전거와 삼륜오토바이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끊겨진 다리는 중국 문화유산으로 지정, 파괴됐던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6·25전쟁 당시의 치열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끊어진 다리 옆으로 새로 건설된 다리가 현재 단둥과 신의주의 각종 교류를 펼치는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모두들 끊어진 다리에 마음 아파하는 순간 가이드의 말은 또다시 이어졌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신의주에 공장이 많았던 만큼 지금도 산업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현재 신의주에 사는 사람들은 개방에 긍정적이고 북한내에서 비교적 잘사는 북한의 중산층으로 봐도 무방하다"며 "중국과의 교역도 활발하고 공산품들을 생산하는 만큼 교역의 도시, 공급의 도시로서 신의주는 북한 무역에 매우 중요한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이드가 최근 신의주 산업단지 얘기들을 줄줄 늘어놓고 있지만 대장정단 마음 한 편에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는 애잔함이 더욱 커져만 갔다.

생명공학과 강동훈(24)군은 "식량난에 힘들어하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이곳으로 목숨을 걸고 탈북을 강행하다 숨지는 동포들이 수없이 많다는 말에 북한 주민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전세계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압록강 철교변 탐사를 마친 뒤 바쁜 일정으로 부랴부랴 버스에 올랐다. 나름대로 버스에 익숙해졌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 떨어지는 이도 속출했지만 채 잠들기 전, 평안북도에 있는 위화도(威化島)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모두가 알고있듯 고려말인 1388년 요동정벌때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가 이곳에서 회군을 해 역사적으로 조선을 건국할 수 있게된 시발점으로, 역사책에서만 보던 곳을 눈으로 직접 보니 신기할 뿐이었다. 게다가 가이드의 말대로 30여동의 높지 않은 아파트가 강변을 따라 지어진 것을 보고 있자니 그 신기함은 더하기만 했다.

정보제어학과 김상훈 교수는 압록강 철교를 돌아본 뒤 "민족 교류가 이뤄질 수 없는 현실에 분단의 서글픔을 느꼈다"며 "이번 탐방으로 우리 민족의 현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 이른 아침 몇몇 북한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던 모습이 대장정단에 의해 포착됐다. 북한 동포에게는 일상이었지만 '분단'이라는 현실이 아쉬움으로 남아 가슴을 뭉클케 했다.

 
 
▲ '大韓國人' 安重根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