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균형발전'을 주창했던 참여정부가 물러나고, '수도권 규제완화'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가 집권에 성공했지만 수도권 규제완화를 위한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누구보다 '수도권 규제완화'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도 출신 국회의원 51명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34명의 여당 의원은 정부의 '선지방발전, 후수도권 규제완화' 방침 발표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규제완화' 언행을 자제하고 있고, 17명의 야당 의원도 "여당이 먼저 나서야 할 것 아니냐"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 51명 의원의 '언(言)'이 불일치하는 것은 물론 '행(行)'도 엇갈리고 있다.

최근 열린 몇 차례의 규제완화 관련 세미나, 토론회 등에서 도 출신 의원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도정현안간담회, 지역 민원으로 퇴색=김문수 경기지사가 지난 1일 도 출신 국회의원 51명을 초청, 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공통분모를 마련하기 위해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주최한 도정현안간담회에는 불과 16명의 여야 의원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

이날 국회 개원일에 맞춰 같은 시각 현충원 참배에 나선 6명의 상임위원장을 차치하더라도 45명 중 16명만이 참석, 저조한 참석률을 보였다.

모임은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규제완화 추진을 뒤로 미루고 '선지방개발'로 방향을 튼 데 대한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져 경기도와 지역 국회의원들 간의 '의기투합의 장'이 예상됐으나 공감대 형성은커녕 서로간의 시각차만 확인, 다소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나마 참석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현안 문제를 챙기는 데 급급, 마치 도정현안을 다루는 자리가 도내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해결을 위한 자리로 전락했다.

한나라당 백성운(고양 일산동)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 포함돼 있는 킨텍스, 한류우드에 대한 지원을, 같은 당 이사철(부천 원미을) 의원은 7호선 연장사업에 대한 예산지원을, 김학용(안성) 의원은 분당~천안 간 국도 조기완공을, 신상진(성남 중원) 의원은 고도제한 완화 문제를 김 지사에게 요청했다. 모두 지역구 민원성 부탁이었다.

민주당 백재현(광명갑) 의원은 지역구의 교통체증 해결을 김 지사에게 요청하면서 "김 지사께서 역할을 해주지 않으시면 섭섭하죠. 정말 섭섭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자 한나라당 박보환(화성을) 의원이 "수도권규제완화 문제와 정기국회 예산심사를 앞두고 도에서 도정현안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자리가 변질된 것 같다"며 분위기를 돌렸다. 그는 "법령을 보니 경기도는 대통령령으로 수도권에 포함돼 있는데 양평, 가평이 지방과 뭐가 다르냐"면서 "대통령령과 시행령을 개정해 수도권의 범위를 좁혀 하나씩 풀어나가자"고 규제완화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같은 당 이화수(안산 상록갑) 의원도 "이런 자리에 한 번도 안 나오면서 지역구 챙기기에만 급급한 의원들의 민원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 도내 의원들의 단합을 간접적으로 호소했다.

도내 정책통인 정장선(평택을) 의원은 수도권규제완화의 당위성에 공감하면서 "그러나 이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수도권을 다 풀어 줄 듯해 지방을 자극한 게 문제였다"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여권의 조율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나라당 내부부터 입장을 정리하고, 그렇지 못할 땐 같이 행동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 여당 주최 행사에도 참석않는 여당 의원들=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원유철)이 지난달 26일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가진 '최상철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초청 간담회'에는 34명의 도 출신 의원 중 13명만 참석했다. 이 자리는 현 정부의 수도권 정책에 대해 들끓는 도민들의 정서를 전하고 정부의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이날 오후 의정부시청 앞 광장에서 잇따라 열린 '군사규제완화및지원촉구결의대회'에도 원유철(평택갑)·김성수(양주 동두천) 의원 등 극히 일부 현역 의원만 참석하고 대다수 의원이 개인일정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22일 광주에서 열린 '팔당규제철폐범도민대회'에도 정병국(양평 가평)·정진섭(광주)·이범관(여주 이천) 의원 등 일부만 참석, 성난 도민들을 더욱 실망케 했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지난 7월 21일 경기도당이 주관해 수원 호텔캐슬에서 열린 도정현안 간담회에는 34명 중 8명만 불참, 4·9 총선 이후 가장 높은 참석률을 보였지만 주최 측은 의원들의 불참률이 높아 행사를 준비하기조차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참석률이 저조하다 보니 도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규제완화나 도정 관련 간담회 등에 절반도 참석하지 않아 행사 자체가 멋쩍은 경우가 많다"면서 "참석하는 의원들만 참석하다 보니 모임이 항상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