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한우가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사실 우리 전통의 한우는 현재의 적황색 털을 가진 한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흑우와 칡소는 우리 순수 재래 한우의 한 품종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시인 정지용이 지은 시 '향수'에 나오는'얼룩배기 황소'는 흔히들 젖소로 알고 있다. 30년대 만들어져 동요로도 잘 알려진 박목월 시인의 '엄마소도 얼룩소'의 '얼룩소'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젖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젖소는 60년대 이후 일반화한 수입소인 홀스타인종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된 얼룩배기 황소와 얼룩소는 우리 전통 한우인 칡소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전통 한우들이 어느 순간 그 자취를 감췄다. 최근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이 현재 남아있는 재래 한우인 흑우와 칡소를 수정란 이식기술로 개체수를 늘려 순수 혈통을 회복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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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우 |
예부터 우리 한우의 우수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기록을 보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이 수탈해간 한우는 무려 150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한우는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로 반출된 사실이 당시 기록에도 남아있다.
1910년대에는 연간 2만3천마리였던 한우 수탈이 1920년대에는 5만마리, 1930년대에는 5만3천마리, 일본 패망 직전인 1940년대 초반에는 연간 10만마리로 늘어났다.
당시 일본은 소의 고유 품종을 성립시키는 과정 중에 있었으며, 유전자원으로서 활용하기 위해 한우 반출을 합법화하는 정책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의 다양한 유전자원이 소실됐다.
일제의 한우에 대한 핍박은 수탈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지금과 같은 적황색 털을 지닌 황우가 전체 소의 87% 정도를 차지했다. 또 털 색깔이 까만 흑우가 8%, '얼룩빼기 황소'인 칡소가 3% 정도 비율로 사육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8년 한우 심사표준에서 '한우의 모색을 적색으로 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털색을 통일시키면서 흑우와 칡소는 거의 사라졌고, 60년대 정부의 선택적 한우개량사업 등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지금은 그나마 흑우와 칡소가 전국적으로 300~400마리 정도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왜 하필 한우인가
당시의 일본인들은 '재래 한우는 왜소한 일본 재래종에 비해 골격이 크고 온순하며 영리해 일소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고, 일제의 수탈 대상 품목으로 삼았다.
제주흑우로 대표되는 흑우는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 처음으로 사육 기록이 있으며, 조선 세종실록에는 '제주흑우 고기가 고려시대부터 임금에 대한 정규 진상품으로 공출됐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예부터 한우를 대표하는 가축이었다.
칡소는 언뜻 보기에 호랑이 같은 외모를 지녔다. 때문에 호반우(tiger cattle)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우 고유의 황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꼭 칡덩굴을 감아놓은 것 같다고 해서 칡소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특징을 지닌 한우는 일본으로 반출,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 재래종인 화우보다도 많이 사육됐고, 한우의 유전적인 소질을 간파한 육종 학자에 의해 일본의 품종으로 개발됐다.
지금까지도 일본의 시코국 지방 코치현의 '토사갈모화우'라는 품종은 우리의 순수한 한우 혈통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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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칡소 |
흑우와 칡소는 뛰어난 맛때문에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임금에 진상될 정도였다.
국내에 흑우·칡소가 비교적 많이 사육되고 있는 지역은 충북·강원·경북 정도로, 울릉도의 경우 칡소·흑우를 이용한 쇠고기 브랜드사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충북과 울릉도는 사육농가가 협의회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강원과 경북에서 사육중인 농가도 이와 같은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는 등 최근 흑우·칡소를 보호하려는 농가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부 육가공업체에서 흑우와 칡소를 수집, 서울 등지의 백화점에 출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소비자 가격은 일반 한우에 비해 약 30% 정도 비싼 가격으로 유통되고 있다.
■ 흑우과 칡소를 복원하라
덩치 큰 교잡우에 밀려 한때 멸종 위기까지 몰렸던 흑우와 칡소는 최근 한·미 FTA 타결로 품질 경쟁력이 강조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져간 흑우와 칡소는 최근 농진청 축산과학원에 의해 다시 복원되고 있다. 혈통 보존과 대량 증식을 위한 연구 보급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농진청에서는 국내에 사육되고 있는 희소 가치가 높은 가축을 찾아내 보존하는 가축유전자원 발굴보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하고, 첫 대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사라져간 흑우와 칡소 등 재래 한우를 발굴, 증식 보존할 계획이다.
농진청 가축유전자원시험장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재래 한우인 흑소와 칡소를 수집, 먼저 정액 등을 채취 보존하고, 순수한 혈통을 회복시키기 위해 자체 개발한 첨단기술인 수정란 이식 기술을 이용, 증식시켜 최종적으로 유전자 분석을 거쳐 순수한 계통을 유지할 예정이다. 농진청 가축유전자원시험장 손동수 장장은 "우리나라 한우의 모계는 25종 이상으로 분류되며 칡소의 모계는 12종, 흑우는 9종, 제주흑우는 5종 이상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특히 제주흑우는 내륙에 있는 한우·흑우·칡소에서 볼 수 없는 모계도 2종 존재하며 유전자원으로서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