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살림살이가 한자에 치우쳐 있어서 옷(한복)과 집(한옥)-꽃담과 지붕무늬, 한복의 무늬, 그릇의 무늬들 중에서-에 쓴 전통무늬로서의 한글이 드물다. 문자들 사이의 형태 유사성이 있어서, 다시 말해서 문자들의 기본 획들이 일으키는 교감이 있어서 한자와 서양의 문자들이 모두 한글 꼴의 느낌과 비슷한 특성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물건에 한글을 새기는 일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다른 한편 한글을 옷과 집, 여러 가지 물건에 무늬로 새긴 일이 옛 살림에도 있었으나 매우 적었기에, 주시경님이 북촌에 움막을 짓고 조선어 강습소를 여신 뒤, 한글이라는 낱말을 동지들과 깃발에 새겨 쓰던 때(한글날을 만들던 때)를 꼭지로 한 현대 한글에 와서야 붓통에, 옷에, 봇짐에 한글을 새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이 기 만 평론가
한글옷은 또는 한글무늬옷의 숫자가 적었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글 현판, 한글 현수막, 한글무늬를 새긴 학용품, 생활용품들(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에도 나왔던 물건들)과 함께 시장을 겨냥한 생산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의 뜨거운 민주화운동과 함께 한글옷이 더 많아졌다. 1990년대에는 움직이는말글문화와 같은 단체에서 만든 한글옷들이 꾸준히 나왔지만, 영자와 일본 글자를 새긴 옷들이 싼 값에 빠르게 퍼졌고, 영어 광풍에 밀려 한글옷의 쓰임새가 행사용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몇몇 기업, 한글제품공장들이 산업 방법의 한 가지로서, 한글단체들(한글문화연대, 움직이는말글문화 등)이 한글운동의 한 가지로서 한글옷 만들기에 힘썼다. 이렇게 볼 때, 한글옷은 삶의 물결에 따라 일어서는 한 갈래의 한글 역사이고 한글운동사이다.

지금까지 한글옷들은 글자의 생김새, 배치, 빛깔, 글귀의 내용에 무게를 두고 만들었다. 디자인에서 한글이 차지하는 좁은 자리를 생각하면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글옷의 갈 길이 멀고 어렵다. 현대성에 맞추어 대중의 취향을 살핀 옷들이 있어야 하고, 전통무늬를 발굴해야하며, 뿌리 깊은 전통의 현대화로서 생산성을 높여야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 한글옷이 적다는 것은 새롭게 나올 한글옷이 많다는 뜻이다. 옷을 만드는 사람들과 옷에 새길 한글무늬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은 겉멋과 좁은 멋에 흔들린다. 한글의 디자인 가치가 작다는 목소리들이 어지럽던 때보다 좋은 시절이지만, 한글로 살림을 꾸린 역사를 가늠할 때, 그 마루의 높이가 아득하다.

한글옷은 옷 살림의 흐름, 그림과 글자의 어울림, 계절을 살핀 옷 쓰임새, 견주어 돋보일 생김새와 무늬, 옷과 무늬의 이음새, 한글의 역사와 생산 원리 등등을 새긴 것들이 여러 갈래로 나와서 즐겁게 뒹굴어야 한다. 아울러 만든 이들, 입는 이들에 따라 새로운 가치가 끊임없이 생겨야 한다. 행사용을 벗어난 한글옷으로 서야 하며, 한글로 '생선님'(선생님의 잘못)을 옷에 새겨 입고 모임에 나온 외국인들보다 우리부터 멋을 내는 데에 참 좋은 한글옷을 생각하고, 즐겨 입고 모임에 나가는 살림으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