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에 밀집해 있는 불법 성매매 업소의 한 업주가 평소에 단속 무마 등을 조건으로 뇌물을 건넨 경찰관들의 리스트를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뇌물수수 의혹 경찰관 메모'를 공개하면서 단속강행 여부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장안동 업주들에게 뇌물을 받은 경찰관이 수백여명에 이른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데다 정부가 '강경단속만이 해결책은 아니다'는 식의 입장을 표명, 일단 주춤해진 단속이 언제쯤, 어떤 식으로 재개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전체 성매매 단속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동대문서 관계자는 "일부 업주들이 단속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에 대한 압박 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것 같다"며 "업소 단속은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업주가 지목한 경찰관중 일부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상납 의혹 경찰 명단이 일부 공개되면서 동대문경찰서 주위에서는 업주들이 갖고 있는 리스트에 고위 경찰관을 비롯해 총 700여명의 경찰관이 포함됐다는 등 확인할 수 없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경찰은 '잘못한 사람은 처벌하면 된다'고 강경 대응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상납 의혹이 일고 있는 일부 경찰관의 경력이나 평판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경찰관 700여명중 경찰청을 비롯 동대문경찰서를 거쳐 전국 각 지방청 등지로 자리를 옮긴 고위직 경찰관들이 대거 포함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돌면서, 경찰 내부적으로는 누구, 누구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실제로 얼마를 받았다고 하더라'며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또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이 갑자기 휴가를 내거나, 연월차를 낼 경우 검찰 또는 경찰청의 조사를 받는 것은 아닌지 휴가 사유를 세세하게 묻는 등 경찰 조직 전체적으로 불신풍조까지 만연되는 분위기다.

이에 맞서 업주들은 '상납 리스트' 대신 경찰관들에게서 얻은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연락망과 근무 일정표 등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연락망에는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소속 부서와 휴대전화번호가 나와 있다고 한다. 또 근무 일정표에는 경찰서내 주요 부서의 당직 근무 일정 등이 나와 있어 평상 시에 단속이 이뤄질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업주 C씨는 "이중구 서장이 부임한 뒤에도 업주들에게서 돈을 받고 경찰 연락망과 근무 일정표를 건네준 경찰관들이 있다"며 "이 연락망과 일정표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업주들이 상납 리스트 대신 연락망과 근무 일정표 등을 공개할 경우에도 누가, 어떤 경위로, 얼마를 받고 넘겨주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식으로든 경찰에 막대한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성매매 업주들의 비리경찰 명단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 서울 용산역 주변 성매매 업주가 '과잉수사 중단'을 요구하며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살생부'를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얼마 뒤 업주들은 입장을 바꿔 자신들이 공개한 실명리스트의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조무래기' 경찰들만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업계에서는 과거의 사례를 들어 장안동 업주들 역시 명단 공개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이같이 유흥업소에서 관할 경찰 지구대나 소방서 등을 관리하는 것을 이른바 '관작업'이라고 한다. 관작업은 대부분 업주가 직접 나서기보다 이를 담당하는 실무자를 통해 이뤄진다. 보통 업소에서 '실장',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이들이 관작업을 담당한다. 이들이 관리하는 곳은 단속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관할 경찰 지구대와 소방서, 구청 등이다.

주목할 것은 업소 실무자 가운데 전직 경찰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비리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옷을 벗은 전직 경찰 가운데 상당수가 유흥업소 실장급으로 스카우트된다. 유흥업소에 흡수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바로 관작업.

이들이 경찰과 공무원을 관리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단순히 회식비나 용돈을 상납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 함께 포커나 화투 등을 즐기며 일부러 돈을 잃어 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기도 한다. 때에 따라 성 상납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업소가 나서는 것은 아니다.

실장들이 모든 담당 공무원을 1대1로 상대하는 일도 드물다. 소속 공무원 중 일부와 두터운 친분을 쌓은 뒤 목돈을 건네면 이를 받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동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식이다.

이와 함께 동대문경찰의 대대적인 단속폭탄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소들은 특급보안을 유지한 채 비밀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장안동에 위치한 약 40개 업소 가운데 15곳 정도가 이중 출입문, 밀실 등을 이용해 은밀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장안동과 강남 등 서울시내 성매매업소에서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자 여종업원들이 인근 경기 지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있다. 성매매 단속의 풍선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 장안동 불법 성매매 업소에 대한 단속이 경기도를 비롯 대한민국 전체 성매매 업소에 대한 변화와 판도를 결정짓게 되는 시금석이 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