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드높은 하늘과 노랗게 물들어가는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고, 붉게 물들어 가는 산자락을 보고 있노라면 가을이 완연함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은 산과 들, 하늘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입 속에도 가을이 온다. 이 즈음이면 서해안에는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찬다. 가을의 진미 대하와 전어 굽는 냄새다. 이번 주는 홍성 남당항~서천 마량포구로 가을 맛 드라이브를 떠나보자. 서해안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은 덤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남당항 대하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반이면 충남 홍성에 닿는다. 홍성 IC에서 남당포구는 지척. 천수만의 광활한 풍경을 즐기며 차를 몰다 보면 어느새 남당포구다. 남당포구는 천수만에서 가장 큰 항구. 크고 작은 어선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서해안 항구의 전형적인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남당항은 이름난 맛 포구다. 봄에는 주꾸미, 여름엔 활어, 가을엔 대하, 겨울엔 새조개가 나온다.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가운데 가을 대하가 가장 유명하다. 9월 초부터 잡히기 시작해 11월까지 계속 난다. 이 일대에서 대하잡이에 나서는 어선만도 100여 척. 하루 3t에서 5t을 건져 올린다. 대하는 9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나는 것이 가장 먹음직스러운데 10월 대하는 평균 길이가 22㎝, 큰 것은 27㎝나 된다. '본초강목'에 '새우는 양기를 왕성하게 하는 식품으로 일급에 속한다. 신장을 좋게 하며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고 기력을 충실하게 한다'라고 쓰여 있다. 붉은빛을 띠는 껍질 역시 비타민A가 풍부해 통째로 먹어도 좋다.
남당항 바닷가에는 횟집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다. 횟집이 40여개, 바닷가 쪽의 무허가 포장마차가 100여개 된다. 해안도로 양쪽으로 무려 1㎞ 넘게 줄지어 있다. 모든 곳에서 대하를 맛볼 수 있다. 인파를 헤치며 이 길을 걷다보면 새우 굽는 냄새에 침이 절로 고인다.
남당항이 자연산 대하의 대표적인 집산지이기는 하지만, 횟집에 나온 대하가 모두 자연산은 아니다. 대하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잡히는 순간 바로 죽기 때문에 육지에선 살아있는 자연산을 거의 볼 수 없다.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대하는 거의 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얼음을 깔아놓은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있는 대하는 자연산이 많다. 자연산은 대체적으로 흰빛이 돌면서 약간 불그레한 자갈색을 띤다. 반면 양식새우는 검은빛이 많다. 크기도 차이가 있다. 자연산은 20㎝를 훌쩍 넘지만 양식 대하는 15㎝를 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대하를 먹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소금구이다. 너른 냄비 위에 굵은 소금을 깔아놓고 그 위에 살아 꿈틀대는 대하를 쏟아 붓고 뚜껑을 덮는다. 시간이 지나면 대하가 빨갛게 익어가는데 간이 저절로 스며들며 대하 특유의 구수한 맛이 살아난다. 두툼한 새우 속살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고소한 맛이 일품, 마량포구 전어
서천 홍원항과 마량포구는 가을의 또 다른 별미인 전어를 맛볼 수 있는 곳. 남당항에서 40번 국도를 따라가면 서천까지 넉넉잡아 1시간 거리. 21번 국도와 607번 지방도를 이용해도 되고 서해안 고속도로 춘장대 IC를 이용해도 된다.
가을이면 홍원항과 마량포구 일대는 전어 굽는 냄새로 가득 찬다. 홍원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전어 집산지. 일대 30여 척의 전어잡이 배가 거두어 올린 전어는 항상 수요가 딸리는데 항구에는 전어 굽는 냄새를 좇아 온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전어맛이 가장 좋을 때는 10월 말까지. '가을전어 대가리에 참깨가 서말'이란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전어는 역시 가을에 먹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전어는 몸통은 날씬하고 푸른 빛을 띠며 등에는 갈색 반점이 있다. 보통 15~25㎝ 정도. 전어는 열량도 많지 않아 다이어트에 좋다고 한다. 전어회는 숙취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전어를 먹는 방법은 회, 무침, 구이 등 다양하다. 회는 비늘과 내장만을 제거한 뒤 뼈째로 썰어 고추나 마늘을 얹어 쌈장과 함께 상추에 싸먹는다. 깻잎, 양배추, 미나리, 배, 당근, 오이 등을 잘게 썰고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내놓는 전어무침은 매콤달콤한 맛이 일품. 하지만 전어 요리의 최고봉은 역시 구이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노릿하게 구워낸 구이는 맨 손으로 잡고 뜯어먹어야 제 맛이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 게 없다.
가슴 따뜻한 일몰은 덤
서해의 일몰은 가을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준다. 서천 마량포구는 일출과 일몰을 함께 맞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다란 방파제 끝에 붉은 등대가 서 있고 포구에는 어선들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린다. 마량포구 옆 춘장대 해수욕장은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홍성 남당항에서는 간월암이 가깝다. 간월암은 천수만변에 자리잡은 높이 5m, 폭 15m 규모의 바위언덕. 썰물 때는 육지가 되지만 밀물 때는 섬으로 변한다.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하루에 2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곳에 간월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대웅전과 산신전, 기도각 등 3~4개의 건물이 고작인 자그마한 암자다. 태조를 도와 서울을 수도로 점지했다는 무학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달을 보고 도를 깨달아 '간월암'(看月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이 가득 차면 한 송이의 연꽃이 떠 있는 듯하다고 해서 연화대, 한 척의 배가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원통대라 불리기도 한다. 멀리 길게 누운 안면도 너머로 지는 석양은 남당 포구의 최고 절경이다.
두 곳 모두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지는 햇덩이가 장관이다. 요즘처럼 대기가 맑은 가을이면 하늘도 한층 붉다. 서늘한 바람과 파도를 가르며 어선이 드나든다. 크고 작은 섬들이 에워싸고 있는 바다는 마냥 아늑하고 평화롭게만 느껴진다. 남당항과 서천. 맛있는, 멋있는 가을 여행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 잠자리=숙박시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서천 읍내에서 춘장대 방향의 길목에 있는 산호텔(041-952-8012)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남당항 씨월드모텔(041-634-9222)은 밤바다를 감상하기에 좋은 곳. 홍성군에서 직접 관리하는 용봉산 자연휴양림이 좋다. 통나무집은 4인실 7개, 6인실 1개, 10인실 5개가 있다. 10월에는 주중, 11월에는 주말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041)630-1785, www.yongbong.or.kr
■ 먹을거리=홍원항 입구의 현화네횟집(041-952-3553), 마량항 돌고래횟집(041-952-2388) 등이 잘한다. 대하는 별다른 요리법이 없기 때문에 어느 집을 들어가나 맛에는 별 차이가 없다. 주말에 간다면 교통 정체를 단단히 각오하고 가야 한다. 좁은 2차선 도로 좌우로 횟집과 포장마차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남당항 서해안횟집(041-633-2607)의 대하가 맛있다.
글·사진/최갑수 여행작가 ssuch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