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부터 전국의 초등학교에서는 가을 운동회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늘 파랗고 흰구름 뭉게뭉게 떠다니는 햇살 따가운 가을 어느날. 어느 작은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의 신나는 응원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린다면 틀림없이 그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가 한창일 것이다. '김밥과 사이다'로 대변되는 가을 운동회는 30~40대 성년들에게 유년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주 특별한 학교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각종 '징크스'와 '사연'들이 난무하던 70~80년대 유년 시절의 가을 운동회 속으로 돌아가봤다.

1. 달리기할 때 = "나 달리기 못해~." "발목이 좀 이상한 것 같아." 100m 달리기를 할 때 8명씩 줄지어 출발선 뒤 대기줄에 앉아 있노라면 꼭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달리기 전에 겸손 떠는 친구들. 하지만 거짓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꼭 1~2등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결승 지점에 도착하면 5~6학년 언니·오빠들이 1등부터 3등 어린이들에게만 손목에 파란색 도장을 찍어주곤 한다. 4등으로 들어오면 도장을 받을 수 없었다. 기를 쓰고 달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100m 달리기는 개인 능력에 좌우되지만 '장애물 달리기'는 그날 하루의 운이 순위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친구들은 '아빠와 함께 달리기' '선생님 모자 빼앗아 오기' 등 쉬운 쪽지가 나왔지만 유독 자신이 펼친 쪽지에는 '동생 업고 달리기' '할아버지·할머니와 달리기' 등 어려운 과제가 적혀져 나오곤 했다.

2. 응원할 때 = 운동회 시상식에서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응원상'. 줄다리기, 100m 달리기, 콩주머니 던지기, 기마전 등 가뜩이나 힘든 종목이 가득한 운동회에서 '응원상'은 왠지 귀찮은 종목(?)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자니 그렇고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자니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계륵(鷄肋)'같은 상이었다.

문제는 응원상 타려고 열심히 응원할때에는 교장 선생님 등 심사위원들이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응원을 멈추고 잠시 쉬고 있노라면 심사위원들이 뭔가를 열심히 노트에 적으면서 우리 반 앞을 지나간다는 점이다.

꼭 빠지지 않는 단골 응원가도 많았다. 운동회 뿐만아니라 각종 응원가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아파트', "넓고도 넓은 운동장에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우면은 보나마나 백(청)군이 이긴다…"로 시작하는 '운동회 응원가' 역시 국민 응원가가 됐다.

대중 가요를 개사해서 상대 팀을 '살살' 약올리는 응원가도 많이 사용됐다.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TV만화영화 주제가도 응원가로 많이 사용됐는데 그 중에서도 "메칸더~ 메칸더~ 메칸더 V! 랄랄라라 라라라라 공격개시!"로 시작되는 메칸더 브이 주제가는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첫 부분이 짧고 힘차게 시작되는데다 가사 내용도 결전에 나서는 선수들의 심정을 제대로 표현했기에 응원가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였다. 문제는 '공격개시!'라는 부분이 끝나고 나면 다음 가사가 과연 무엇인지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했기에 '용두사미' 응원가로 전락해 버리곤 했다는 점이다.

응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응원 도구. 빨강·파랑·노란색의 '응원 술'과 양 손바닥에 하나씩 끼고 박수를 치면 제법 큰 소리가 나는 '나무 짝짝이'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나무 짝짝이를 열심히 치고 나면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얼얼해 지곤 했다. 응원에 너무 심하게 몰입한 나머지 나무 짝짝이가 쪼개질 정도로 열심히 박수를 치는 애들도 있었다. 나무 짝짝이를 칠 때에는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짝짝이를 치다가 '삐끗' 잘못쳐 손바닥 살이 짝짝이 사이에 집히기라도 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3. 그밖의 풍경들 = 운동회때 빠지지 않는 코너가 바로 '부채춤'과 '꼬마 신랑' 공연이었다.

한 학년 전체 어린이들이 운동회 2~3주 전부터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한 결과물을 부모님과 할머니·할아버지께 선보이는 코너다. 연습할때 그렇게 잘 하던 친구들도 막상 본 공연때가 되면 긴장을 한 탓에 실수를 연발한다. 특히 1~2학년 저학년생들은 '꼬마 신랑' 공연을 하다가 중간에 실수라도 하게 되면 공연의 흐름을 잃은 채 관중석만 멀뚱 멀뚱 바라보다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각종 경기들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학교 밖에서는 솜사탕과 달고나 뽑기 등 노점상 아저씨들의 판매 경쟁이 치열했다. 한 반에 서너명 정도는 꼭 이런 군것질 거리들을 사먹는 소위 '있는 집 애들'이 있었다.

운동회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면 각종 시상식이 진행되는데 그 가운데 백미는 청군과 백군 가운데 어떤 팀이 이겼는지 우승팀을 발표하는 것. 보통 운동회 전에는 '리허설' 격으로 '모의 운동회'를 하곤 했는데 모의 운동회에서 이긴 팀은 본 운동회에서 지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