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고향을 잃었어요. 집은 그 나라의 정서이며 고향인데 전국 어디를 가봐도 빌딩에 아파트단지에… 국적불명의 집들 뿐입니다. 이제는 고향에 가도 제대로된 전통가옥을 볼 수가 없어요. 5천년 역사의 울타리 문화가 단 몇십년만에 이렇게 되다니… 잘사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것을 터부시한 결과입니다. "

지인의 소개로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에서 옛 고향집을 완벽하게 재현해 민속가옥 문화 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이정범(55)씨를 지난8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 전통가옥인 초가·기와·너와·귀틀·돌담집 등을 미니어처(모형)로 제작, 전통의 맥을 잇는 민속가옥 전문가이다.

작업장은 허름한 천막하우스 2동. 흰강아지 두마리만이 이리저리 뛰며 손님을 반긴다. 안으로 들어서니 작업실겸 사무실, 또 다른 한동은 전시실이다. 사실 한국전통민속가옥의 맥을 잇는다기에 근사한 작업실을 기대했던 만큼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는 걸리버여행기의 소인국에 온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네 옛 고향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들꽃과 나무, 크고 작은 수십 채의 초가, 기와집 등에선 당장이라도 손님을 마중나올 것만 같았다. 한편엔 물레방아, 절구, 지게, 삼태기와 농기구 등 소품도 전시돼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실제 가옥을 건축한 숱한 경험과 지난 30년 동안 현장을 답사하고 고증 연구해 온 전통가옥의 구조, 소재, 건축법 등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의 이씨는 젊었을땐 꽤 미남 소릴 들었을 법한 용모였지만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히 묻어 나왔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소외감이 얼굴에 진하게 밴 탓이라 짐작했다. "좀 지저분하지요. 6년전 처음 올때만 해도 안그랬는데 요즘은 많이 힘드네요."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건네며 그가 말문을 열었다.


■ 전통가옥 제작 30년… 3대째 가업

"한 30여년 됐네요. 한옥 대목장이던 할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었으니 3대째인가요.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현재는 저와 막내동생이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짐작은 했지만 내공이 만만찮은 장인이었다. "그런데 전통가옥 제작은 독학이라 할 수 있죠. 어릴 때부터 줄곧 집 짓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구경했어요. 하지만 20대부터는 생활인이었기에 일반 건축일을 했습니다. 다만 너무나 미니어처 작업을 좋아한 나머지 취미로 병행했습니다."

이씨는 건축일을 할때도 일이 좋아 한번 작업을 하면 밤샘을 밥먹듯이 하곤해서 다행히 그 계통에서는 '천재'로 불렸단다. 그러다 1978년 한국전통민속가옥 연구소를 설립해 미니어처 작품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했고, 1999년 강원도 관광엑스포 참여를 계기로 '전통가옥 미니어처 전문가'로 알려지게 됐다. 이후 그는 2002년 세계관광엑스포 민속마을 재현, 2004~2006년 고양 국제꽃 전시회 민속가옥 작품 연출 등 다수의 전시회로 명성을 얻었고, 각종 신문보도, 무한지대 큐·모닝와이드 등 방송에도 출연했다.

"미니어처라 해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재료는 우리나라 들과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황토, 나무, 돌, 볏짚 등을 사용하지만 집 한채, 울타리 하나에도 혼을 불어넣고 오랜 연구와 고증을 거치기 때문에 실제 가옥을 짓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씨는 현장 답사는 기본이고 그곳 노인들의 자문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가옥 형태를 120개나 발굴했다.


■ 전통문화 살리기 관심과 지원을

그가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고양시에 터를 잡은 건 지난 2003년. "우리의 전통가옥을 좀 더 빨리 전파하려면 수도권이 나을 것 같아서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열과 성을 다해 작품활동에 전념했어요."

그러나 경제발전의 논리에 묻혀 수십년 사이 전통가옥 문화가 자취를 감춰 버린 데에 이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잘 살기 위해 앞만보고 달려온 사람들은 뒤늦게 고향을 찾고 우리 것을 찾고 있으나 대부분이 사라졌고 아이들은 물론, 가르칠 학교 선생님들조차 전통가옥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이 찾아와 '한국의 것'에 감탄을 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지, 자식에 전수를 하고는 있는지, 정부에서 지원은 없는지 물어볼땐 창피해서 말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또 중앙이나 지방정부 행사에 초청받아 출품을 하면 관심은 그때 뿐, 좋은 일 한다면서도 지원요청엔 관련규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게 관행이라며 개탄했다. 관심을 보이고 투자하겠다는 분들도 너무 상업적으로만 생각하고 찾아온다며 현 세태를 비판했다.

그는 덧붙여 "우리나라 전통가옥문화는 온통 기와집 얘기 뿐이다.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불과 몇십년 전 대부분의 서민들이 살았던 초가집은 관심조차 안 갖는다"며 "가옥박물관이 없는 곳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아쉬워 했다.

8명이었던 제자도 생계를 위해 다 떠나고 이젠 1명만 남았다. 그리고 이곳 천막하우스도 이달말이면 비워줘야 한다. 땅주인이 비워줄 것을 요구한지 꽤 됐다고 한다.

"전시회나 박람회를 통해 전통가옥문화를 전파하려 밤낮없이 일을 했지만 결과는 초라했습니다. 디자인과 마케팅이 결합된 다양한 관광상품화를 진행했으면 큰 성공도 거뒀을 텐데 장인은 장사꾼도 못되더라구요."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서 회한이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여생동안 꼭 해야할 일이 있어서다. 일터를 비워줘야 할 대책없는 상황에서도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할때는 눈빛이 번뜩였다.

"우선은 흥부전·심청전·토끼전 등 우리 전래동화 이야기 모두를 미니어처화 하는 작업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산교육을 시키고 싶어서지요. 두번째는 6·25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국가옥변천사'를 집대성한 미니어처 제작입니다. 셋째는 아콰리움을 구경하는 것처럼 개발에 수몰된 마을을 미니어처로 제작, 물속에 넣어 변화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방마다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가옥(전주한옥마을·양동민속마을 등)을 복원해 우리문화 알리기 순회전을 열고 그 작품을 중앙박물관에 전시하는 겁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하다.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전통의 복원을 외면하는 행정과 문화마인드에 대한 섭섭함이었다. "전통가옥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조상때부터 우리 삶의 터전이며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문화입니다. 부천에는 세계 미니어처 테마파크인 아인스월드가 있더군요. 우리도 전통 민속마을을 그에 못지않게 만들 수 있는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