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김은환 인천본사 편집제작국장
■ 재단 설립자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어린 시절이래의 꿈이었던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을 때의 설렘과 벅찬 감동이 어제 같습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내 젊은 시절의 열정이 오늘의 길병원에 고스란히 스며있습니다. 가천길재단은 올해까지 사회공헌활동에 300억원을 투입했습니다. 그동안의 사회공헌활동으로 10만명이 넘는 분들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국내외 무료진료 사업과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 전통문화보전과 확산사업 등 사회공헌활동에 더욱 매진할 계획입니다."
■ 재단을 일구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언제입니까.
"일은 늘 시련 속에 진행되는 거지요. 나 역시 병원을 키우고 거대조직을 운영하면서 아찔했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지금의 인천 구월동 길병원을 건립할 때 병원을 짓던 업체가 부도가 나 몇 달간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구월동 길병원을 짓고 난 뒤에는 자금난 때문에 직원 봉급을 걱정할 때도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는 가천의대 설립허가를 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기억도 나네요. 일을 하다가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내가 열망하는 만큼 길은 열린다고 봅니다."
■ 지금의 가천길재단을 이끈 노하우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발 앞서가는 발상의 전환이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산부인과 시절 '보증금 없는 병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환자를 받았습니다. 그때 다들 이길여산부인과는 망한다고 했지만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봉사정신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니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70년대 처음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80년대초 전국에서 몇개 안되는 종합병원을 신축할 때도 그랬고, 천억원대의 자금을 투자해 뇌과학연구소와 암·당뇨연구원을 설립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기초의학 양성을 위해 거액을 투자하고 있지요.
"지난 몇 년 동안 1천700억원 가까운 거액을 들여 뇌과학연구소와 암·당뇨연구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두 연구기관은 무엇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닙니다.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곳이지요. 수 많은 돈이 들어가기만 할 뿐 나오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연구 성과만이 나올 뿐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이제 여생을 편하게 보낼만도 한데, 젊은 시절 죽도록 일만 하며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왜 아직도 그렇게 자꾸 일을 벌이느냐는 말입니다. 남들은 미쳤다고 말하지만 나를 믿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석학과 천재들도 어찌보면 다 미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미쳐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자기 일에 미친 사람만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고, 미친 우리 때문에 언젠가 사람들은 질병과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 회장님은 스스로를 '멈추기를 거부한 바람개비'라고 표현했습니다. 도전은 어디까지 입니까.
"많은 분들이 저를 성공한 여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습니다. 인천의 작은 산부인과에 불과했던 병원을 숱한 난관을 극복하며 굴지의 대학병원으로 바꾸고, 교육·문화·봉사·언론분야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추구해온 저의 삶을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도전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과 성취를 통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 이길여 회장은
1932년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메리이머큘리트병원(Mary Immaculate Hospital)과 퀸스종합병원(Queen's Hospital Center)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일본 니혼대학교(日本大學校)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 후 1958년 '이길여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료진료를 하고, 병원 보증금을 없애는 등의 노력으로 병원 문턱을 낮추었다. 1978년에는 여의사로서 처음으로 전 재산을 털어 의료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환자 중심의 병원 전문화를 위해 여러 전문병원을 개원했다. 또 의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98년 가천의과학대학교를 설립했다.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유엔 여성대회 정부 대표, 서울대의대 동창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센국제협력후원회 회장과 길병원 이사장, 경원대학교 총장, 경인일보 회장으로서 일선을 지휘하고 있다. 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