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다. 도시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뒹군다. 바람이 분다. 그러고보니 문득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가을편지다. 김민기의 노래로 들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최백호의 목소리로 들어도 억새밭 걷는 느낌으로 좋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이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상풍에 긔후 평안하오신 문안 아옵고져 바라오며 뵈완디 오래오니 섭~ 그립사와 하옵다니 어제 봉셔 보압고 든~ 반갑사와 하오며 한아바님 겨오셔도 평안하오시다 하온니 깃브와 하압나이다. 元孫"(가을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을 알기를 바라오며 뵌지 오래되어 섭섭하고도 그리워하였사온데 어제 봉한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워하였사오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시오니 기쁘옵나이다. 원손)
나이 스물 네 살 적, 명성황후도 오빠 민승호에게 예쁜 색 편지지에 "(오빠의) 편지에서 밤사이 탈이 없다하니 다행이다. 주상과 동궁(훗날 순종)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니 좋지만, 나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답답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바라보며 뵌지 오래되어 섭섭하고도 그리워하였사온데...'
'나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답답하다.'
편지는 그런 것이다.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아픈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가을이다. 그리운 마음, 아픈 마음을 전할 곳은 있는가.
전자우편과 손전화의 문자로 기다림없이 마음을 주고받는 시절이지만, 이 가을, 나는 예쁘게 깎은 연필을 쥐고 싶다. 만년필을 쥐고 사각거리는 소리 나게 편지를 쓰고 싶다. 거기에 멋들어진 시 한 편 낭독해 보라고 선물해야지. 소리내어 읽다 노래 부를 수 있도록.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김은영(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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