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이변은 없었다.
29일 전국 14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재보선 결과, 기초단체장 선거구 2곳 중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각각 울산 울주군수·충남 연기군수 재선거에서 당선자를 만들어냈다. 광역의원의 경우 한나라당은 3곳의 선거구 중 울산, 경북 성주 선거구와 기초의원의 경우 9곳의 선거구 중 2곳에서 당선자를 내놓았고 민주당은 호남지역 기초의원 선거구 2곳 중 전북 임실군 다 선거구에 단독 입후보한 김한기 후보가 무투표로 당선돼 14개 선거구 중 단 1곳만 건졌다. 한나라당으로선 '평년작'은 한 셈이고 민주당으로선 제1야당의 '체면을 구긴' 셈이다.
▲ 한나라당 내부 '국정운영 주도권 장악할 수 있다' VS '안심하긴 이르다'=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터진 쌀소득보전 직불금 파문은 여당인 한나라당에게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선거 이전 당 내부에서도 "연기군수는 이미 물 건너갔고, 울주군수도 지지율이 몇 %포인트 차이가 나지 않아 불안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곤 했지만 재선거에서 평년작을 거두게 돼 국정주도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안심하는 분위기다.
이번 재선거 결과를 바라보는 당내 분위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국회 다수석을 확보하고 있는 여당으로서 추후 각종 개혁 법률이나 예산안, 한·미FTA비준동의안 등 각종 현안과 관련된 법안 처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와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분위기다.
쌀 직불금 파문 이후인 10월 20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각 정당별 지지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10월 6일 조사보다 1.7%포인트 상승한 38.9%, 민주당은 4.6%포인트 하락한 16.1%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불금 부당수령 등 정국 현안과 관련된 국민들의 비판이 한나라당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하지만 KSOI측은 "정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외관상으로는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내상은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KSOI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 쌀직불금 사태 이후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답변을 합하면 50%에 육박한 반면 참여정부의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답변은 25.9%에 불과해 정부 여당의 이미지 손상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부 여당이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책임전가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 내부에서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의 한 의원은 "경북 성주와 구미에서 치러진 광역의원 재보선의 경우 한나라당 텃밭이기 때문에 승리가 가능했고, 울산 울주의 경우도 박희태 대표와 정몽준·공성진 최고위원이 몇 차례 지원 유세를 펼쳐 승리가 가능했다"며 "이번 재보선 승리에 자만해 야당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국정을 끌어가려 한다면 국민들이 외면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경률 사무총장도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이 5곳에서 승리한 건 국민들께서 중앙과 지방이 한 몸이 돼서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권 여당에 더 힘을 몰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며 "추상같은 민심을 마음에 새기고 경제난국을 돌파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민주당, 재보선 참패 애써 외면=재보선 직후인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고위 정책회의 모두발언에서는 전날 치러진 재보선과 관련된 얘기를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애써, 일부러 재보선 얘기를 꺼내지 않는듯한 모습이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4일전에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다시 꺼내들어 비판했고,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이날 발표할 예정인 수도권규제완화대책을 비판했다.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정부의 '언론장악' 논란을 꺼내들었고,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광우병 촛불시위와 관련,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을 화두로 올렸다. 모두가 전날 치러진 재보선 결과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4개 선거구 중 기초의원을 뽑는 전북 임실군의원 1명, 그것도 민주당 후보 한 명만이 나와 무투표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정부 여당이 야기한 국정혼란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을 우리의 지지율 상승으로 전환시키는 부분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쌀 직불금 파문 이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에 대해 "국정감사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며 "이명박 정부 6개월을 평가한다고 의욕을 갖고 임했지만 준비가 부족했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채 비판으로만 일관해 대안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이번 재보선 참패로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이번 재보선이 당 지도부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