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 발달과 인구증가, 환경파괴 및 오염에 따라 야생근연종 유전자원의 소멸이 급증하고 있다. 신품종의 재배면적 확대로 우리 조상의 얼이 스며있는 유용한 토종종자가 급격히 소실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원은 신품종 육성의 기본 재료로, 또 신물질 추출, 유전자 탐색 등 생명공학연구의 기초재료로, 그 가치는 숫자로 계산이 어려울 정도로 무한하고 중요하다. 국제적으로도 유전자원의 무한가치가 인정되면서 각국이 앞다퉈 유전자원의 확보와 보존을 위한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총성없는 종자전쟁이 이미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알의 슈퍼 종자가 세계시장을 점유, 창출하는 가치는 연 20조원으로 평가되는 등 앞으로는 유전자원을 얼마나 확보하고 활용하는 지가 국가의 부의 척도로 이어지는 시대가 됐다.
농촌진흥청 농업생명공학연구원내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이하 유전자원센터)는 유전자원의 탐색, 분류, 수집, 보존, 특성평가 및 관련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와함께 유전자원의 증식분양 및 관련기술 개발연구, 유전자원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자원 정보화와 유전자원 전반에 걸친 해외협력, 민간관리기관 지정을 통한 유전자원 국가관리체계 구축 등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다.
유전자원센터는 농진청이 종자 유전자원 등록 보존 관리를 시작하면서 88년 종자 저온저장고를 설립한 것이 모태가 됐다. 이후 유전자원이 국가의 종자산업발달과 신품종 육성의 기본재료를 제공하는 등 그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2006년, 종자 50만점을 100년간 보존할 수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9천507㎡의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무인자동화 종자보존시설을 건립, 종자은행으로 거듭났다. 증식을 통해 보관된 유전자원을 영구 보존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유전자원센터는 종자전쟁시대에 대비, 우리 토종 유전자원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유용자원을 수집, 세계적 규모로 성장했다. 우선 유전자원센터는 국내외 수집, 도입 등을 통해 확보한 유전자원은 확보 당시의 기초정보를 바탕으로 임시 저장번호가 부여된다. 이에따라 '보존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가', '종자량이 적당한가', '동일한 유전자원이 이미 보존되고 있지는 않은가' 등 신규 유전자원의 등록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갖추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게 된다. 이후 유전자원센터의 저장시설에 등록번호(IT)를 부여받아 정식 유전자원으로 등록된다.
유전자원이 최초 임시번호를 받아 정식 등록번호를 부여받기까지는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유전자원센터의 인력과 시험포장 가용여부에 따라 연평균 1천200점 정도의 유전자원이 새로운 자원으로 등록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식량작물, 특용작물, 원예작물 등 대략 1천800여종 약 15만4천여점의 소중한 유전자원을 국내외에서 수집, 보존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식량작물 30종, 2만3천점 등 총 187개 작물 3만1천점의 재래, 토종자원도 포함돼 있다. 이와함께 과수류 등의 영양번식작물 2만6천점, 미생물 1만9천점, 가축 유전자원과 곤충자원 등을 포함하면 24만8천여점의 농업유전자원이 유전자원센터와 관련 기관에 보존돼 있다.
보존 규모에서는 미국(48만점)이 세계 최대 유전자원 보유국이고, 이어 중국(38만점), 러시아(35만점), 인도(34만점), 일본(28만점) 순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6위 정도다. 주로 연구목적으로 운영되며 국공립연구기관, 대학, 출연연구소, 종자회사, 개인 육종가, 토종작물 재배농가 등이 주요 수요자이다. 유전자원을 활용해 지금까지 농진청 연구기관에서 육성된 신품종 수는 약 2천여품종에 이른다.
특히 토종자원은 국제 식물유전자원 조약에 의거, 전통 자원의 지식재산권 부여 추세에 따라 자원 주권 주장의 근거 실체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이러한 토종 자원의 종자 또는 식물체에는 토종 고유의 독특한 기능성, 고품질 특성 등을 보유하는 자원이 있어 육종 재료와 농가소득 창출원으로 가치가 높다.
현재 유전자원센터는 식물 및 미생물 유전자원의 활성화를 위한 37개 국가지정관리기관과 협력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불가리아, 미국,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의 원산지 유전자원을 수집, 보존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세계종자은행으로부터 우리 토종자원의 입고를 요청받아 아시아에서 최초로 노르웨이 스발바드의 영구 저장고에 우리 종자를 저장시키는 등 세계적인 종자보존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지난 8월에는 세계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작물다양성재단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주요 유전자원을 보존하는 '국제 유전자원 안전중복보존소'로 지정돼 우리나라가 국제 유전자원 허브뱅크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노르웨이 스발바드섬의 국제씨앗 저장고에 이어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노아의 방주'라 불리는 세계종자은행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로써 향후 우리나라의 종자주권 확보와 세계 5대 종자 강국 실현을 앞당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유전자원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때에 외국으로 유출되어 해외 연구기관에 보존돼 있던 우리나라 원산 유전자원 29개 작물 2천780점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역도입, 보존하고 있다. 이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개성배추 등 귀중한 자원이 포함되어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하나의 유전인자는 오랜 기간동안 진화의 결과로, 한번 소실되면 재생이 불가능하며 다시 찾을 수도 없다"며 "최근에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유전자원 수집 평가 및 활용에 막대한 노력과 경비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우수한 유전자원을 가장 많이 확보한 나라가 종자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원 무기화의 개념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