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경찰서는 지난달 26일 렌즈를 착용하고 사기도박을 벌인 김모(42)씨 등 4명에 대해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지난달 24일 밤 11시50분께 서울시 금천구 독산동 김씨 사무실에서 제조업체 사장 변모(42)씨를 불러 카드 뒷면에 숫자 표시 렌즈카드(속칭 공장목) 52매를 이용, 판돈 8천720만원을 걸고 사기도박(속칭 바둑이)을 벌여 4천400만원을 편취하는 등 3차례에 걸쳐 모두 8천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렌즈를 끼고 수신호를 하며 직접 게임을 하는 '기사'와 바람잡이로 역할을 나눈 뒤 이같은 행각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아귀'와 '작두', '평경장', 그리고 '설계'와 '구라', '판떼기'…. 영화에 이어 모 방송사 드라마에서도 히트를 이어가고 있는 '타짜'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평소 노름에 일가견이 있다고 나름 자부하는 전문인(?)들도 생소하게 여기는 대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만큼 동양화(화투)와 서양화(카드)의 세계는 오묘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도박은 형법 제246조에 의거, 일시 오락 등을 제외하곤 엄연히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않고서 재물을 취득하는' 불법 행위다. 게다가 도박은 가정폭력, 간통 등과 함께 가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최대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히곤 한다. 그럼에도 도박에 빠져든 사람들이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도박이 제공하는 묘미 때문. 다수의 금전과 함께 화려한(?) 도박기술 그 자체에 매료된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신체 일부분까지는 아니더라도 '패가망신'을 겪어봐야 비로소 멀었던 눈을 뜬다고 한다. '타짜의 세계'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본다.

▲ 공장목 카드와 화투 렌즈착용 前

■ 공장목과 현장목, 탄

'타짜의 세계'를 알기 위해선 우선 용어설명이 필요하다. '타짜'는 노름판에서 남을 속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전문 도박사를 의미한다. 기사, 기술자, 선수 등으로도 불린다. 사기도박 조직(라인계)에 속한 타짜는 '구라꾼'이라고 부른다. 반면 '호구'는 돈이 많고 화투 등 노름을 좋아해 '타짜'들의 대상인 먹잇감을 뜻한다. '바지'는 일명 바람잡이로, 타짜 들러리로 일을 도우며 노름판을 주선한다. '호구'를 끌어들여 거액을 따는 것은 '공사', 이 전 과정을 '설계'라고 칭한다. '도구'란 말 그대로 화투판에서 사용되는 도구, 즉 '화투'를 의미한다. 화투는 '공장목'과 '현장목'으로 나뉜다. '공장목'은 화투공장에서 특별제작된 화투로, 타짜들은 '이삼가라(초급용)', '삼삼가라(중급용)', '혼다이야(고급용)'로 부르기도 한다. 모두가 화투 뒷면의 속임수 무늬를 말한다. '탄(彈)'은 화투·카드 순서를 미리 맞춰 놓는 것 또는 그렇게 해 놓은 묶음을, '약쇼'는 직접 약품으로 뒷면에 패를 본 떠 새긴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진짜 타짜들은 '공장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늬를 조작하지 않은 깨끗한 화투, 일명 '현장목'을 사용한다. 진짜 타짜들은 도박을 벌이면서 10분이 지나면 현장목에 손톱이나 담뱃재, 매니큐어, 사포 등으로 자기만 알 수 있는 자국을 낸다.


■ 미싱, 스데끼, 격일

타짜에겐 기본 3대 기술이 있다. 윗장을 돌리는 척하면서 아랫장을 빼는 일명 '미싱(밑장빼기)', 위에 있는 패를 섞으면서 제일 아래로 보내는 '스데끼(낱장치기)', 손가락을 이용해 패를 손바닥이나 손등 등에 숨겼다가 자유자재로 이동해 사용하는 '격일(바꿔치기, 달아두기)'이 그것이다. 타짜가 구사하는 기술은 무려 200가지나 되지만 이는 대부분 기본 기술 3가지를 조합해 응용한 것이다. 타짜들은 게임 종류와 상황에 따라 이를 선택해 쓴다.

하지만 타짜라고 모든 판에 기술을 쓰는 건 아니다. 적당히 지기도 하면서 따지도 잃지도 않고 있다가 돈이 많이 걸린 결정적인 순간(판떼기)에만 기술 1∼2가지를 사용한다. 그럴 때는 옆에서 도움을 받아 완벽을 기하며 의심을 피한다. 더구나 기술에 큰 차이는 없지만 카드가 화투보다 더 커서 '미싱'을 익히는 시간은 더 걸린다. 최소 3년이 걸리는 기술로, 이것 하나만 구사해도 타짜로서 손색이 없다고 한다.

■ 첨단 특수장비까지 동원

타짜의 세계에선 카메라나 콘택트렌즈 등도 가끔 이용된다. 카메라 방식은 패의 뒷면에 그냥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 특수 잉크를 바른 뒤 적외선이나 자외선 카메라를 통해 확인하며, 상대방 패를 들여다본 뒤 소형 이어폰을 낀 자기 편에게 알려 준다. 전술한 이삼과 삼삼의 경우 불빛에 45도 각도에서 반사시켜 봐야 잉크가 발라져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콘택트렌즈도 마찬가지 원리로, 다만 시력이 약화되는 부작용이 있어 요즘은 진보라로 색깔을 통일시켜 선명도를 더욱 높였다고 한다.

이처럼 게임 화투나 카드에 화공약품을 바른 뒤 카메라를 장치해 일꾼에게 알리는 일을 '줌일'이라고 한다. 자색 카메라는 형광등을 모두 바꿔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대부분 적카메라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장비를 쓰게 되면 참가자만큼 패를 봐줄 사람이 필요해 그만큼 자기 몫이 줄고, 손기술과는 달리 사기꾼이란 소리를 듣게 되는 단점도 감안해야 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계기로 그간 풍문으로만 떠돌던 사기도박판의 기상천외한 수법이 일반에 속속 알려졌다. 인터넷과 책을 통해 간단한 손기술을 익힌 어설픈 '타짜'들이 크게 늘었고, 관련 장비를 파는 판매상들도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피해는 고스란히 도박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호구'에게 돌아간다. 도박 전문가들은 사설도박장에서 순수하게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도박이든 짜고 치는 사람에게 절대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어설프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바로 도박판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