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타킨테'가 기억난다.

아프리카 감비아의 주푸레 마을에서 백인 노예상에게 붙잡혀 미국 땅에 도착한 그 흑인 노예. 벌거벗겨져 쇠사슬로 묶여진채 백인 노예상의 혹독한 매질과 굶주림으로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이방인. 짐승보다 못한 처지였지만 그가 놓지않은 것은 바로 고향 아프리카의 기억이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어버리면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는 신념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 그 아프리카의 기억은 후대로 이어졌다. 결국 그의 7대손인 '알렉스 헤일리'는 1976년 '뿌리(Roots)'라는 작품으로 자신들의 뿌리인 '쿤타킨테'를 잊지 않고 되살려 놓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픈 200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50여년 전에는 백인과 흑인은 버스 자리가 달랐다. 앞자리 백인 자리가 비었어도 다리 아픈 흑인 아주머니는 앉을 수가 없었다.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도 군 장교시절 흑인용 화장실을 따로 이용해야 했다. 아직도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수많은 인종이 섞여있는 브라질은 무지개 인종이라 한다. 자연스럽게 화학적으로 스며있다는 것이다. 반면 얼마 전까지 미국의 순혈주의는 유별났다. 피부색에 따른 구분이 확연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확연한 피부색의 구분을 이용하여 국가 역량을 모으는 멋진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종의 종합전시장이라 할 수 있는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에서 미국의 위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니 자신들의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 위해 인종을 넘어 융합을 이루는 역사적인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어 냈다.

아프리카 감비아의 주푸레 마을로 돌아가고자 했던 쿤타킨테는 그 후예들이 이 땅에서 허물어 버린 편견과 차별에 미소 지을 것이다. 적어도 피부색 때문에 미국에서 더이상 이루지 못할 꿈은 없어졌다. 열린사회의 마지막 문이 열렸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이 연일 화제다. 그 파장은 세계인의 뇌리에 만만치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민 1세대 강석희씨가 주민직선으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시 시장에 당선됐다. 이제 한국계 미국 대통령도 꿈꿔 볼만하지 않은가….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