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민단체인 국제예산기구(IBP)에 따르면 '2006년 한국 예산정보 공개지수'는 100점 만점에 73점으로 조사대상 59개국 중 9위를 차지했다. 당시 낮은 등수는 아니었지만 한국은 '주요 정보
만 공개하는 나라'로 미국·영국 등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선진국과는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다.

예산서·결산서·중기지방재정계획 등 주요한 7개 문서는 작성하지만 정보는 불충분했고, 보고서 내용도 충실하지 않으며, 불완전하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운용하는 세입·세출·국채상황 등 예산 집행의 중간보고서 성격인 연중보고서(In-Year Report)를 제대로 발간하지 않은 점과 채무정책 현황(차입·차관정책)을 공개하지 않았던 점이 낮은 점수를 받게 만든 주요 지적사항중 하나였다.

우리가 예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들이 많다.

미국처럼 독립적으로 예산을 감시하는 정부기구내 시스템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 예산을 확실하게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산감시 전문 시민단체'도 필요하다. 한번에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지만 시작하는것 만으로도 '국민의 세금'의 미래는 밝다.

 
 
■'독립성'이 보장된 美정부기관의 예산감시 활동


유구한 민주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예산낭비, 선심성 퍼주기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예산 수립의 주체인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의원들의 예산감시 활동을 돕는 전문기관을 설치했다.

1973년에 세워진 미 의회예산처(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가 집행부 예산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분석전문기구라면 정부회계감사원 GAO(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는 행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기구다.

CBO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상원·하원 의원들에게 중립적인 예산 분석 정보를 제공한다면 GAO는 정부 공무원들의 사용영수증 체크부터 근무평가·재무평가·정부책임성까지 조사한다. 행정부가 목적에 따라 예산을 집행하는지 감사하는 일을 하고 있는 GAO는 우리나라의 감사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기구의 공통점은 '독립성'과 '무정파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CBO의 장(長)은 상원·하원의장이 합의하에 선출하며 임기는 4년이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임기는 끝까지 보장된다.

GAO 역시 기구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원장의 임기를 15년으로 장기간 유지한다. 15년동안 정권이 바뀌어도 원장이 자진 사임하지 않는한 교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두 기관 모두 독립적으로, 그리고 정파에 흔들리지 않고 예산 분석 및 감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수잔 베커(Susan Becker) 대외관계 부국장은 "GAO의 가장 큰 자랑이자 원칙은 비정당성이다"며 "이 덕분에 GAO 제안의 85%가 각 부처에서 반영되는 권위를 갖는다"고 밝혔다.

■전문성·독립성은 기본, 대안제시까지 하는 미국의 시민단체

미국의 예산시민단체가 정부를 향해 따끔한 지적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않아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시민싱크탱크로 명성 높은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에 관한 센터(CBPP·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나, 정부의 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CAGW)의 경우 정부의 보조금을 일절 받지않고 시민들의 기부금과 사회 재단들의 지원으로 꾸려가고 있다.

미셸 바지 (Michelle Bazie) 대외부국장은 "우리 센터의 경우 포드재단이나 빌게이츠재단 등 비영리 사회재단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예산 관련 전문 업무를 수행해 비정파성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특징은 지역 단체가 특정분야 예산에 전문가를 투입, 분석하고 문제 제기는 물론 대안 제시까지 한다는 점이다.

뉴욕시의 '어린이를 위한 시민위원회(CCCNY· Citizens Committee for Children of New York)'의 경우, 어린이 복지 예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워싱턴DC 재정정책기구(DCFPI·DC Fiscal Policy Institute)의 경우 저소득층 지원 예산의 문제점과 활용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 모두 관련 전문인력을 고용, 정밀하고 전문적인 예산분석보고서를 내놓고 지역 언론에 '예산 집행문제' 등을 공론화해 시당국의 시정을 촉구한다.

특히 이들은 문제 지적만이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해 지역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DCFPI의 케이티 커스테터(Katie Kerstetter)는 "DC 주민의 20%가 빈곤층으로 DCFPI는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위해 예산분석 전문가가 함께 한다"며 "지난 2005년에는 주거환경 관련 정책을 분석 발표했고, 올해는 유급병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상황

우리나라 전체의 예산은 270조원. 예산 규모가 커져가는 만큼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정부는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국가 재정운용에 대한 분석·평가 자료를 제공하는 국회예산정책처(NABO)를 지난 2005년에 신설했고, 기획재정부에서 예산낭비신고센터(1577-1242)를 운영, 2005년부터 국민들이 지켜본 예산낭비 사례를 접수하고 조사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 기관 모두가 행정부에 속해있어 눈치보지 않는 '소신 업무'를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시민단체의 예산 관련 활동도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경우 미국의 황금양털상(Golden Fleece Award)과 꿀꿀이상 (Porker of the Month) 같은 예산낭비 사례 발표를 차용해 2000년부터 '밑빠진 독상'을 선정, 그해 예산 낭비가 가장 심한 지자체나 사건에 대해 시상하고 있다.

그외 일부 지역시민단체가 지자체의 예산 낭비에 대해 감시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만성적인 운영 적자, 전문적 인력 부족 등으로 전문적 예산감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감시를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는 있지만, 정부에 대해 '어떻게 예산을 잘 쓸 수 있는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민간 싱크탱크가 부족한 상황이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성시경 박사는 "미국의 공공재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나 정부기관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행정부나 자금으로부터 자유롭고, 전문적인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한다"며 "우리나라도 이제 시민단체가 예산낭비 감시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싱크탱크로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할 시기가 왔다"고 제안했다.

 
 
▲ 경기복지시민연대 송원찬 정책실장.
■ 도내 예산감시 시민단체 경기복지시민연대


"경기도·수원시 예산집행 분석"

"예산 전문 인력이 부족하지만 지속적인 시민교육과 참여유도를 통해 활발한 감시와 대안제시를 해나갈 계획입니다."

경기도와 수원시의 예산을 분석하고 낭비를 감시하는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기복지시민연대의 송원찬 정책실장은 도내 예산감시 시민단체의 활동 방향을 소개했다.

경기복지시민연대는 '수원참여예산연대'의 활동단체 중 하나로 경기도와 수원시의 예산 전반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5년전부터 도 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의 비율과 예산 집행의 효율성, 올바른 예산 집행을 위해 분석 작업을 해왔고, 지난 2006년부터는 기초자치단체 중 수원시 예산 전반을 분석중이다.

송 실장은 "참여예산연대의 활동을 통해 공무원들의 부당한 초과근무수당, 의정비 인상, 문화의전당 경관육교 타당성 조사 등 예산 낭비로 지적받은 많은 문제들을 지역사회에 공론화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예산전문 시민단체가 넘어야할 산은 많다.

그는 "자치단체들이 처음에는 자료도 주지 않으려 했다"며 "지금은 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예산감시를 위한 벽이 높다"고 토로했다.

특히 전문인력 부족 문제는 시민단체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송 실장은 "예산 분야 전문 활동가가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많지 않아서 한사람만 빠져도 예산감시 활동이 힘들어지는 것이 지역의 현실"이라며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우리 지역의 공공재정이 좀더 투명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