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운동 공로기림을 받았던 날, 찬달 박대희 선생님은 몸을 낮추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받을 상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으로 또 몇 해를 힘껏 일하셨습니다. 찬달 선생님이 하신 일들의 빛은 작아보였지만 숨찬 줄 모르고 새긴 발자국들이 세종로에, 종로에, 나라 곳곳에 빈틈없이 채워져 어디 한 군데 빈 곳이 없었습니다. 그 발자국들은 수많은 찬달의 숨결입니다. 발자국이 채 마르기 전에 새로운 발자국이 그 위를 새겼으니 찬달 선생님의 빠른 걸음은 어린 사람들 못지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땀 흘림이 바쁜 길에서도 어린 사람들의 손길을 어여삐 여겨 응원도 하시고, 푸른 생각들을 나누셨습니다. 2005년, 부끄러운 나의 일을 다독이시며 함께 가자고 손을 잡아주셨고, 2006년, 낮은 한 자리에 앉으셔서 여린 한글날을 보듬으셨습니다. 2007년, 늘 모자란 일
▲ 이기만 (평론가)
을 받쳐주시며 말씀 한 자락과 불끈 쥔 외솔님의 힘 한 동이를 아낌없이 디딤돌로 깔아주셨습니다. 그렇게 봄이 가고, 타는 여름의 목마름 한 가운데를 오가시며 당신의 땀을 잊고 어린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밥상을 사이에 둔 날에도, 한글을 수북이 쌓은 날에도 나의 어린 마음을 튼튼하게 꾸리시느라 힘을 다 쓰셨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오늘 찬달 선생님의 떠난 자리를 그리며 서성이다가 뛰어가고 뛰다가 다시 서성이는 까닭을 모를 리 없는데, 한글날이 우뚝 서지 않았기에 현대 한글 100돌, 세종의 한글 562돌을 지나도록 헤매는 어린 사람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으로 되살아나길 빌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 6일 박대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움직이는 말글문화의 벼리들이 뜻한 자리에 모여 명복을 빌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의 성실한 땀을 기리며 여러 사람과 함께 채소 시 하나를 바쳤습니다. 무례한 일인 줄 알면서도 선생님이 보여주신 모든 일들이 마치 꽉 찬 달과 같아서 참한글이름-순한글이름-도 하나 지어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박대희 선생님은 가시는 날까지 밭을 갈고 튼실한 씨앗을 뿌린 그 모습으로 제게 찬달입니다. 그 자리에서 벌써 찬달 선생님이 뿌리신 씨앗은 채소로 자랐습니다. 일본말 야채가 넘치는 세상에 한글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그 채소 하나를 뽑아 먹을 때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찬달 선생님의 뜻을 결코 잊을 수 없음을 다시 알았습니다. 찬달 선생님이 계셨기에 나는 한글날 큰잔치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계시기에 또 힘차게 걷겠습니다. 어린 걸음으로 일어서 당신의 끝자락에 채소 시 하나를 바칩니다.
채소가 맞습니다.
야채가 아니고 채소가 맞습니다. /야채는 일본말이고 /채소는 우리말입니다./ 야채가 아니고 채소가 맞습니다. /어린이들과 한글달랑이를 만들었습니다. /거기 채소가 맞습니다를 썼습니다. /예쁜 무늬도 찍었습니다. /채소김밥을 야채김밥 대신에 /채소튀김을 야채튀김 대신에 /채소무침을 야채샐러드 대신에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소를 읽고 갔습니다. /야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갔습니다. /당장 /채소가 야채를 대신하여 나올 것이라고 바라지 않습니다. /서서히 번져서 바른 말을 찾고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채소가 우리의 얼굴로 우뚝 설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모두 입을 모아 외칠 것입니다. /채소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