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잎이 온통 노랗게 물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행나무 잎을 보고 있자니 올해 가을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온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가버리는 것만 같다. 가을을 좀더 느껴보려는 분들은 충남 아산으로 가보시길.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은 은행나무길이 있고 아름드리 소나무로 가득한 숲길이 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온천도 기다린다.
아산 시내에서 현충사 가는 길. 곡교 천변을 따라 2~3㎞ 남짓 조성된 이 길에는 높이 10m를 훌쩍 넘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2열 종대로 우거져 있다. 나무와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아득한 은행나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지금 길은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차로 달리면 5분이면 지나칠 길이지만 길이 주는 행복감은 아득할 정도로 크다. 차를 몰고 길을 가다보면 은행나무 잎이 차창으로 비처럼 쏟아진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풍경일까. 이 길은 2000년과 2001년에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년 연속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길은 현충사 앞까지 이어진다. 현충사 역시 가을 분위기가 절정이다. 이순신 초상이 모셔진 본당까지 가는 길은 공원처럼 잘 가꿔져 있다.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있다. 은행나무 길은 아마도 이번 주가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미 낙엽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으니 서두르시길.
오래된 절집 들머리엔 대개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있다. 해남 대흥사가 그렇고 변산의 내소사, 오대산의 월정사가 그렇다. 숲길을 걸어오르는 동안 세속의 때를 조금이나마 씻어내라는 뜻일 터. 봉곡사 역시 마찬가지다.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수산 자락에 자리잡은 봉곡사는 들머리에서 절 입구까지 가는 솔숲길이 좋다.
숲길은 오른쪽에 조그마한 골짜기를 거느리고 오른다. 길은 완만하다. 그다지 급하지도 않고 너무 평탄하지도 않다. 길이는 700m 남짓. 구불구불 휘어진 소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아쉬운 점은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있다는 것. 흙길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봉곡사가 있다. 산비탈에 돌축대를 쌓고 지은 아담한 절이다. 별다른 요사채는 없다. 대웅전과 향각전·삼신각이 전부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대웅전 처마를 채색한 단청은 색이 바랬다. 돌계단을 걸어 절 왼쪽 언덕에 있는 삼성각에 오르면 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절의 품새가 정갈하다. 봉곡사는 신라시대 진성여왕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는데, 고려땐 석암사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말기 고승 만공 스님이 도를 깨우친 절이기도 하다. 절 입구 왼쪽 언덕에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만공 스님의 친필이 새겨진 탑이 서 있다.
봉곡사에서 온양온천 방향으로 5분쯤 가다 보면 피나클랜드다. 입구로 가는 메타세콰이아 진입로가 붉게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정원과 레스토랑, 연못과 잔디밭 등이 어우러져 늦가을 소풍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로 오르면 일본의 설치작가 신구 스스무가 만든 바람개비 모양의 설치물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좀더 오르면 산꼭대기에 '진경산수'라는 정원이 펼쳐진다. 왼편으로 서해대교, 정면으로 아산만 방조제가 보인다.
저녁 무렵, 공세리 성당으로 가보자.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가운데 하나다. 붉은 벽돌과 먹빛 벽돌의 대조가 이채롭다. 성당은 수령 300년 이상의 고목 7그루에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다. 단풍도 곱고 눈 덮인 겨울 풍광도 예쁘다.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가수 god도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안치환도 성당의 은행나무 아래서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성당은 프랑스 출신의 드비즈 신부가 1922년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었다. 성당터는 조선시대 충청·전라·경상도 일대에서 거둔 조세를 쌓아두었던 공세창고가 있던 자리다. 성당 옆 팽나무 가지 아래에는 성모상이 있고 성당을 감싼 숲 그늘의 오솔길 가장자리에 십자가의 길 조상(재판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죽기까지의 예수 수난을 기억하고 참배하기 위해 그 과정을 14개로 나누어 조각상으로 만든 것)이 만들어져 있다. 성당 주변을 조용히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여행의 피로는 온천으로 푼다. 아산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 도고온천에는 호텔 콘도 등 10여개 시설이 있다. 파라다이스 도고호텔은 올해 7월 1일 워터파크 시설까지 갖춘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를 개장했다. 바데풀과 노천 온천탕을 갖춘 온천탕은 물론 야외 워터파크까지 갖추고 있다. 온천수는 지하 300m에서 끌어올린 35∼37도의 유황온천수다. 온천수에 유황이 ㎏당 1g 이상만 들어있어도 유황온천으로 불리는데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는 그 함유량이 260.9g이라고 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행나무 잎이 가득한 길, 마음마저 느긋해지는 소나무 숲과 종소리가 낮게 퍼지는 성당이 있는 곳 아산. 늦가을을 만끽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 잠잘 곳=온양온천·아산온천·도고온천 등 온천지역에 호텔과 여관들이 몰려 있다. 외암리 민속마을(041-544-8290)에서 팜스테이를, 영인산 자연휴양림(041-540-2479) 통나무집에서 도 숙박할 수 있다.
■ 먹을 곳=염치읍 방현리 방수마을(041-544-3501)은 직접 담근 된장·간장과 각종 장아찌 등 토속 밑반찬을 내는 한정식집. 장아찌류와 묵은지·젓갈 등이 맛깔스럽다. 외암민속마을 입구에 도토리묵과 잔치국수 등을 파는 식당들이 있다.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글·사진/최갑수 여행작가 ssuch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