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쯤 옛길을 걸어보자. 옛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지금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어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기에 알맞다. 호젓한 길은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내어준다. 옛길을 걸으며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것도 좋겠다.


▲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 뱀이 똬리를 틀듯 물줄기가 크게 굽어져간다.


#칠족령

동강을 제대로 보려는 이들은 영월 거운리 잣봉과 백운산 정상 코스를 많이 탄다. 하지만 4시간 가량 걸리는 이 코스는 다소 험난하다. 힘을 별로 들이지않고 트레킹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코스가 있다. 문희마을과 제장마을을 잇는 칠족령을 따라가는 코스다.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군 신동읍에 걸쳐있는 백운산(882.5m) 능선을 따른다. 정상 지점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 굽이쳐 흐르는듯한 동강 줄기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백운산'(白雲山)은 늘 흰구름이 머무른다고해서 이름 붙었다.

미탄면 진탄나루터로 들어와 문희마을 뒤쪽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길의 처음은 완만한 숲길이다. 굴참나무와 신갈나무 낙엽이 바닥에 수북하다. 성터와 돌탑을 지나 20~30분 즈음 오르막길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서면 하늘벽이 깎아지른듯 서 있다. 하늘벽을 지난 동강은 하방소를 거친 뒤 다시 바새마을을 에워싸고 멀리 연포마을까지 굽이쳐 돌아나간다. 전망대에서 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은 맑다. 여기서부터는 한숨 돌린다.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10여분 정도 가면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90도 가까운 급경사 바위길이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간 등산객이 많은 까닭인지 바위가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로프를 잡지 않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다.

▲ 서리맞은 낙엽

칠족령이라는 지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제장마을에 이 진사가 살았다. 이 진사가 기르던 개가 어느 날 옻나무액을 담아둔 통을 엎고 사라졌는데 옻나무 진이 묻은 개발자국을 따라 쫓아 올라가보니 금강산에 버금가는 황홀경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문에 옻 칠(漆),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칠족령에서 내려서면 제장마을이다. 장이 설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등산로가 끝나는 곳에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지어놓은 너와집이 있다.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칠족령 숲길의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해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공존상'을 수여했다. 칠족령 정상에서 문희마을쪽 1.5㎞, 제장마을쪽 1.5㎞ 구간이다.

▲ 채광굴이 꺼지면서 생겨난 도롱이 연못.

#화절령

강원도 정선에 운탄길이라는 길이 있다. 말 그대로 '석탄을 운반하는 길'이다. 백운산 두위봉을 지나는 이 길들은 정선 신동의 예미까지 이어진다. 곳곳의 갱도를 잇고 달리느라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데 전체 길이가 80㎞를 넘는다. 한때 석탄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는 탄더미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이 길을 다녔겠지만 10여년 전부터 운탄길에서 석탄차들은 사라졌다. 정선과 태백·영월 일대의 탄광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부터다.

이제 그 길들이 트레킹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운탄길을 만들때 심었다던 낙엽송들은 어느덧 수령 40년을 훌쩍 넘긴 큰나무들이 되었다. 운탄길 끝자락에 화절령(花折嶺)이 있다. 운탄길의 수많은 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꽃꺾이재'로도 불린다. 정선과 영월의 아낙들이 봄날 진달래꽃을 꺾기 위해 많이 몰려들어 이름붙었다고 한다. 화절령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운탄길 트레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대관령 옛길.

화절령은 걷기 좋다. 경사가 급하지 않다. 운탄차가 다닐 수 있도록 능선을 따라 길을 냈기 때문이다. 산허리를 끼고 도는 길은 쭉쭉 뻗은 침엽수림 사이를 지난다. 바람 내음도 향긋하다. 가족과 함께 겨울 산의 풍경을 즐기며 여유있는 걸음으로 산책하듯 걸어도 1시간 30분~2시간 정도면 족히 닿을 수 있다. 해발 1천~1천300m 고지에 뚫린 길이라 주변 산세를 내려다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화절령에서 1.5㎞ 떨어진 삼거리 왼쪽 숲속에 웅덩이가 있다. 직경 100m 남짓. '도롱이 연못'이라고 불린다. 채광지가 함몰되면서 만들어진 습지다. 탄부들이 잘라낸 이끼 덮인 나무들이 못 위에 떠있다. 마치 태초의 원시림을 보는듯 하다. 막장의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아내들이 도롱뇽을 방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 까닭인지 조용한 못 앞에서는 신비로운 기운마저 느껴진다.

▲ 화절령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운탄길 트레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관령 옛길

대관령에는 옛길이 2개 있다. 흔히들 과거 고속도로였던 길을 옛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원조' 옛길이 있다. 옛 대관령 휴게소 뒤편의 선자령 정상에서 강릉 방향으로 1㎞쯤 더 내려가면 진짜 옛길이 나온다. 옛날 횡계와 강릉 파발역의 중간지점인 반정(半程)에서 대관령박물관이 자리한 강릉시 어흘리까지 5㎞ 구간이다. 트레킹은 반정에서 강릉시 어흘리까지 내려가는 방법과 어흘리에서 올라오는 방법이 있다. 반정에서 박물관까지 편도로 내려가기만 하면 1시간 40분, 박물관에서 반정까지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면 약 4시간 정도면 족하기 때문에 왕복 트레킹을 시도해도 무리가 없다.

길은 넓다. 서너 명이 어깨동무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이 길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길은 스폰지를 깔아놓은듯 푹신하다. 가슴 속 깊이 밀려드는 숲내음도 싱그럽다. 옛 사람들은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이 길을 고단하게 발품을 팔아 가면서 넘었다. 길 중간에는 옛사람들이 목을 축이던 주막터가 있다. 주막터를 중심으로 윗길은 구불구불한 비탈길, 아랫길은 비교적 올곧게 뻗은 평지이다. 눈이 많이 쌓이면 완만한 내리막에서 주저앉아 오궁(오리궁둥이)썰매를 즐길 수 있다.

대관령 부근에는 트레킹 명소가 또 있다. 대관령 북쪽 황병산~오대산으로 이어지는 선자령고갯길이다. 구 대관령휴게소에서 북쪽의 대관사를 거쳐 해발 1천157m의 선자령에 올랐다가 내려온다. 왕복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눈꽃이 화려해 심설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산악인들은 선자령~대관령~능경봉을 함께 묶어 겨울철 심설 산행을 즐기는 '눈꽃 트레킹 벨트'로 삼고 있다.

▲ 화절령은 길이 평탄하고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 칠족령=중앙고속도로 제천 IC로 나와 영월 방면 38번 국도를 탄다. 영월을 지나 신동읍 방향으로 가면 된다. 동강 고성안내소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제장마을에 정희농박(033-378-3838) 등 민박집이 있다. 신동읍 예미리 정원광장(033-378-5100)에서 청국장·곤드레밥 등을 맛볼 수 있다.

■ 화절령=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을 거쳐 정선 하이원리조트(강원랜드)까지 간다. 왕복 4차선으로 포장돼 있다. 하이원리조트 매립지 주차장 뒤편에 등산로가 있다. 화절령~산죽나무길~산철쭉길~마천봉~골프장을 잇는 길은 4시간 코스다. 코스에 따라 2시간, 3시간 코스도 있다. 하이원리조트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588-7789

■ 대관령=영동고속도로 횡계IC로 나와 우회전, 1㎞ 정도 가다보면 '대관령 옛길'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 가면 대관령 휴게소다. 횡계 일대에 황태로 유명한 집이 많다. 황태회관(033-335-5795)에서 황태해장국·황태찜·황태구이 등을 낸다. 납작식당(033-335-5477)의 오삼불고기도 별미. 오징어와 삼겹살을 고추장양념에 버무려 철판에 구워먹는다.

글·사진/최갑수 여행작가 ssuch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