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해도 불효?

"공부 잘하는 것도 불효야!" 한 선배가 소주잔을 넘기며 말했다. 선배에게 공부 잘하는 딸은 늘 자랑거리였다. 이 딸이 올해 수능을 보았고, 명문대 의대를 지망하고 있다. 그러나 중견 회사의 간부인 선배에게도 대학 등록금 중 제일 비싸다는 의대 등록금은 버겁다. 그렇다고 내후년 대학에 진학하는 동생은 안 가르치나…. 요즘 슬쩍 딸에게 사범대나 교육대 진학을 권유한다며, "안되면 한 채 있는 아파트라도 파는 수 밖에… 그런데 아파트는 팔리지 않고…"라 말하며 쓴 소주만 들이켰다.

경제 위기로 인한 기업의 명예퇴직, 구조조정과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 부동산 가치 하락 등 불안한 시기에 40·50대 가장들은 우울하다. 대학들이 뒤늦게 내년 등록금 동결을 약속하지만 이미 매년 물가 상승률보다 더 치솟은 등록금은 1천만원 시대를 열었다. 의학계·예능계 등 일부 학과는 1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게다가 등록금에 교재비·용돈, 웬만하면 다 간다는 해외연수, 취직공부를 위한 학원 수강 등 대학 학비는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제1주범이다.

대학생 자녀들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경제적 고통을 덜고자 편의점·커피숍·건설현장·공공기관보조 등 아르바이트에 나서도 등록금을 충당하기에는 턱없다.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하면 밝은(?) 미래가 열리는가? 오히려 청년 실업의 암울한 현실만이 가로막혀 있다. 40·50대 가장들은 다시 이들을 돌보아야 한다.

오래전에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있었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 팔고, 땅 팔아 대학 학비를 대었다는 말이다. 현재도 그 때와 별반 다름 없다. 아니 더욱 심하다는 느낌이다. 그땐 소 팔고 땅 팔아도 사각모자 쓴 대학생 자녀는 희망이고 자랑이었다. 졸업하면 가세를 일으킬 것이란 희망과 비록 남의 밭뙈기 부쳐 먹지만 당당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이젠 '가진 것 없는 부모로서 해 줄 수 없다'는 자괴와 '제 한 입 먹고 살아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적어도 돈이 없어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겠다. 쳐진 어깨로 추운 겨울을 나는 부모들에게 대학 등록금때문에 한숨 짓지 않도록 대학 당국과 정부의 대책이 있었으면 한다.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