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행이 바르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어디로 가야합니까."(인천 A고교 1학년 학부모 송모씨)
"교사가 도저히 지도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현장에 한번 와 보세요."(A고교 학생생활 담당 김모 교사)
학부모들은 "학교가 모호한 규정의 벌점제를 과도하게 적용해 벌점이 누적된 아이들을 학교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비교육적"이라고 학교를 원망한다. 교사들은 "체벌을 금지하고, 벌점마저 사용할 수 없으면 수업분위기를 해치는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며 학생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인천지역 일선 고등학교가 '벌점 과도'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계양구 작전동에 있는 A고교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의 벌점 규정이 과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립인 A고교는 학생생활규정에 따라 벌점 점수가 50점 이상인 학생들에게 무더기로 퇴학 예고 조치하고, 2주내에 전학할 것을 권유했다.
이 학교 1학년 B군은 두발검사에서 2회 적발되고, 교사 지시 불이행과 무단 조퇴 등의 이유로 벌점 65점을 받아 퇴학 예고조치됐다. 벌점 75점으로 퇴학 예고된 C군은 지난 달 인근 전문계 고교로 전학했다.
학교의 전학 요구에 따라 주민등록 주소지를 이전하고, 인근 학교로 전학하려고 준비했던 학생들 중 3명은 전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시 A고교로 돌아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학부모 오모(47·계양구 효성동)씨는 "인근의 S고교로 전학하려고 위장전입까지 했지만 S고교까지 A고교의 벌점규정이 소문으로 퍼졌다"며 "우리 아이가 여기저기서 발에 차이는 축구공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학년 정원이 1천282명으로 인문계고인 A고교는 3월 신학기부터 10월말까지 전체 재학생 중 33명이 전학을 했고, 15명이 자퇴, 1명은 퇴학 처분됐다. A고교의 전학생 수는 인근에 있는 학교 규모가 비슷한 J고교의 같은 기간 전학생 수 9명 보다 3.7배 가량 많다. A고교 관계자는 "인근 학교보다 전학생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벌점 누적에 따른 권고 전학은 아니다"고 밝혔다.
'벌점 과도' 논란은 A고교의 사정만은 아니다. 인천시교육청은 A고교를 포함, 인천지역 전체 109개 고교 중 일반계 고교 11개교와 전문계 고교 4개교 등 모두 15개 고교를 무작위로 선정해 벌점 규정을 비교했다.
부평구 B고교는 20개 항목의 벌점 규정 중 두발규정을 위반하면 벌점 2점을 부여하고, 흡연을 하면 벌점 10점을 받는 등 벌점 규정을 학생생활지도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A고교와는 달리 벌점이 많다는 이유로 퇴학처분을 하지는 않는다. B고교는 3월 신학기부터 11월말까지 15명이 자퇴하고, 21명이 전학했다. B고교는 모두 36명의 전·퇴학자 중 22.2% 가량인 8명은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사유를 밝혔다.
'학교 생활 부적응' 학생은 전문계 고교에서 더욱 심각하다. 남구 도화동에 있는 S여상은 3월부터 11월말까지 37명이 자퇴하고, 12명이 전학했다. 자퇴한 37명 중 1명이 가정사정인 것을 제외하고는 36명이 '학교생활 부적응'을 사유로 자퇴했다고 학교측은 설명했다.
시 교육청은 일선 고교에 벌점 규정 표준 모델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보급할 방침이다. 벌점 규정이 제각각 운영되면서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학부모들의 민원을 초래한다는 판단에서다. 시 교육청이 제시할 벌점 규정의 모델은 벌점 대상과 벌점 양정, 학생 징계·이의 제기 절차 등의 내용이 담긴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 제18조(학생징계)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로 체벌을 금지하면서도 '교육상 필요한 때'로 명시하면서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도 체벌을 형법상의 정당행위라는 관점에서 체벌의 목적과 정도·방법·부위 등으로 정당행위의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교과부는 이에 따라 교사의 감정에 치우친 체벌을 금지하고, 체벌기준에 따라 교사는 체벌 시 학생에게 사유를 인지시키고, 별도의 장소에서 반드시 제3자를 동반하여 하도록 하고 있다. 교사는 체벌 전에 학생의 건강상태를 의무적으로 점검하고, 이상이 있을 때는 연기해야 한다. 체벌 도구는 지름 1.5㎝내외, 길이 60㎝이하 나무, 직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체벌부위는 남학생은 둔부, 여학생은 대퇴부로 제한된다. 1회 체벌은 10대를 넘지 않아야 하고, 학생에게 상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모순으로 학교현장에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계양구 A고교 김모(37) 교사는 "교사들이 체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도 잘 알고 있고, 혹시라도 체벌을 하려고 하면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기 일쑤"라며 "교과부가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교사들은 벌점과 체벌 사이에서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시 교육청 관계자는 "법질서 확립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최근 교과부가 체벌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비된 기준은 내년도부터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