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모임이 잦다. 그런데 모임 장소 중 유독 불편한 곳이 있다. 낯설다고나 할까… 빠르게 번진 '와인바' 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세련된 서비스가 익숙지 않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떼루와르, 샤토, 빈티지, 디캔딩, 소믈리에, 셀러, 보르도, 포트…??????? 도통 모르는 말 뿐인데 마치 와인을 좀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게 싫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실제 가장 큰 이유지만) 왜 그리 비싼지… 높은 가격도 편치는 않다.

심장에 좋다며 식탁에서 한잔씩 권하던 포도주가 붐이라 할 정도로 단시간에 '우아한(?) 와인문화'를 만들어 냈다. 고가의 와인뿐 아니라 와인용품, 만화, 드라마 등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이제 '트렌드(경향)를 마시는 고급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보니 와인자리에는 가슴이 없고 머리만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화가 없고 지식만 있는 것 같다. 생산지역, 생산연도, 품종, 토양, 양조장 등은 기본이고 주변 이야기도 섭렵해야 와인이 맛나다고 생각한다. 지식에 의해 얼마나 고급 와인인지를 알아야 맛이 결정되는 것이다. 터무니없게 산지의 몇 배를 넘는 와인의 고가정책도 고객의 허세를 겨냥한다.

프랑스, 칠레, 포르투갈 등 와인의 주산지에서 와인은 대중의 친구일 뿐이다. 유리잔이 없으면 주발에 먹어도 되고 심지어 병나발을 불어도 된다. 잘 차려진 안주가 필요한 게 아니다. 값 비싼 와인만이 대접받지 않는다. 그게 참이슬이든, 처음처럼이든, 안동소주든 상관없듯 와인이면 된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 입에 맞는 것이 좋은 것이다. 유식의 뽐냄이 아니라 유심(有心)한 배려가 필요하다.

어느 술자리든 머리에서 혀를 통제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친구와 술 한 잔이 있으면 보르도 산이든, 보졸레 산이든, 빈티지도, 스토리도 중요치 않다. 스템(와인잔의 다리부분)을 잡지 않았다고 무안을 줄 필요도 없다. 혀(舌)를 풀어놓는다고 핀잔할 것도 없다. 그저 술향기와 사람향기에 취하면 그뿐이다.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