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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운리 전경. "백로가 날고 경안천과 너른 들녘이 있어 농사 짓기 좋은마을" 예전에 용인 유운리가 그랬다. 유운리 위쪽에 국내최대 테마파크 에버랜드가 들어서면서 변화의 급류를 타고 기업형 양돈단지가 생겼고 하천오염의 부산물에 환경은 망가졌다. 대형비닐하우스와 축산분뇨처리장등이 가동중인 유운리는 지금 용인이씨등 몇안되는 토박이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조형기 편집위원 hyungphoto@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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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깨끗한 이미지로 인해 선현들의 그림과 시구에 자주 등장하는 새가 있다. 백로다. 백로는 왜가리, 해오라기처럼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새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 흰 빛깔 때문에 눈에 비유되어 '설로(雪鷺)', '설객(雪客)', '설의아(雪衣兒)'로도 불리고, 풍채가 빼어나다 하여 '풍표공자(風標公子)', 실처럼 날리는 깃으로 인해 '사금(絲禽)'으로도 불린다.
그 이미지 때문에 백로가 찾아들면 길하다고 여긴다. '백로가 찾아오면 부자마을이 된다', '백로가 찾아오는 곳은 길지다'라는 속설이 그런 예인데, 부자마을이라고 알려진 곳에 가면 그러한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용인시 포곡읍 유운리의 자연마을인 송골(松谷)에서도 그러했다. 송골은 소운(巢雲)으로도 불리며, 두 이름 모두 소나무 숲에서 백로 무리가 노니는 모습이 마치 흰 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용인 에버랜드 정문을 지나서 고갯길을 내려가다 보면 상당히 너른 들판을 간직한 유운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고인돌, 돌칼, 선돌 등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 주민 서재근(72)씨가 "모 심기 좋은 들이었지"라고 회상한 배니들과 새벌들 등이 경안천을 끼고 마을 앞으로 넓게 퍼져 있고, 뒤로는 향수산과 시루봉이 있어 물 걱정 없이 농사짓던 부자마을이었다는 말을 수긍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 하얀 날갯짓 사라진 곳에는 돼지 분뇨만 가득했었고
유운리에서 백로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백로가 노닐던 소나무 숲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대신 유운리는 "여기 개천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어요" "(냄새가) 엄청났어요"라고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할 만큼 심한 오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양돈장에서 나온 분뇨가 정화되지 않은 채 방류되었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백로의 날갯짓은 사라지고 시커먼 오폐수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곳에서 돼지 분뇨로 인한 오염의 역사는 에버랜드의 전신인 자연농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자연농원에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기업형 양돈의 효시로 언급되는 양돈장이 있었다. 그 양돈장은 품종 교배, 종돈 능력검정 등을 실시하는 등 양돈산업에 미친 공로가 매우 컸으나 돼지들의 분뇨를 정화하지 않은 채 방류함으로써 경안천을 크게 오염시키기도 했다. 더욱이 그곳에서 돼지를 무상 분양 받은 주민들이 너도 나도 양돈사업에 뛰어들면서 마을 내에 양돈단지가 형성되고, 그곳에서 버려진 돼지 분뇨로 인해 경안천의 오염은 더욱 심해졌다.
최근에는 경안천과 그 지류의 생태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유운리에 용인하수처리장이 들어서고 양돈장들이 폐쇄 내지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이 일대의 환경도 차츰 나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 자연농원 건설로 인해 사라진 마을들
유운리 바로 위쪽에 자리한 에버랜드는 우리나라 최대의 테마파크다. 그 면적이 1천420만여㎡에 달한다고 한다. 에버랜드는 얼핏 보면 인가 하나 없던 산 속에 건설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본래 이곳에도 오순도순 이웃과 함께 농사지으며 생활하던 사람들의 동리가 있었다.
지금은 전대3리에 포함된 가실리도 그 중 하나다. 가실리는 본래 가실, 이성동, 동막골 등의 마을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에버랜드 부지에 포함되어 사라지고, 지금은 에버랜드 내 오지마을로 알려진 동막골에 한 가구만이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라진 마을 가운데 이성동은 한자로 '두 이(二)'와 '별 성(星)'으로 표기되었는데, 그 땅에 별 하나가 더 늘어난 모양이 되었으니 둘 사이에 어느 정도 인연이 있었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에버랜드 부지에는 가실리 뿐만 아니라 전대리와 신원리의 일부도 포함되었고, 유운리도 마찬가지다. 유운리는 크게 보면, 소운, 즉 송골로 대표되는 1리와 유실로 대표되는 2리로 나뉜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상소운 내지 웃송골로 불리던 마을도 있었다. 송골의 위쪽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 이 마을은 자연농원 건설로 인해 사라졌다. 현재 에버랜드 자동차경주장에 있던 마을이다. 그 외에 사기막도 사라진 마을이 되었다.
물론 에버랜드 건설로 사라진 마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향을 떠난 주민을 대신하여 자연농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유입되었고, 그들을 위한 사택이 건축돼 사우촌이라는 마을 아닌 마을도 생겨났었다.
#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생거진천 사거용인'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사거용인'은 흔히 용인이 묘를 쓰기에 좋은 땅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본디 이 말의 유래 중에는 어느 형제의 지극한 효심이 담긴 이야기가 전한다.
유운리는 용인 이씨 문중이 오랫동안 세거해온 곳이다. 지금이야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유운리와 그 인근 신원리 일대에 적지 않게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에버랜드 부지 곳곳에 자리 잡았던 조상들의 묘를 돌보며 살아왔다. 지금은 그 묘의 대부분이 이장되었지만, 아직도 전망 좋은 곳에 묘가 하나 남아 있다. 용인 이씨 문중에서 청백리공이라고 부르는 이백지(李伯持)의 묘다. 이범상(73)씨 등에 따르면 자연농원이 들어설 당시 종중 산 매각 문제로 인해 적지 않은 분란이 있었고, 결국 몇 사람에 의해 매각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묘가 이장되었지만, 매각을 주도한 이들도 이백지의 묘만은 매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에버랜드 내 오지마을로 알려진 동막골에 거주하며 가실리의 맥을 잇고 있는 심노원씨 부부의 이야기는 수차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그 부부가 많은 불편과 외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상의 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삶과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유래에 담긴 뜻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