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이연희)

문을 열자 남자는 어둠 속에 웅크린 모습으로 앉아 있다. 구김 없이 잘 손질된 와이셔츠를 붙박이장에 넣으며 나는 그를 흘낏 쳐다본다. 다가서기만 하면, 그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듯하다. 조금도 움직임 없는 남자의 검은 실루엣은, 마치 알몸으로 어머니의 자궁 밖을 갓 탈출한 아이가 두려움에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다.

그는 조용한 남자다. 때때로 나는 그가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그는 내 남편의 애인이다. 어느 날 불쑥 내 삶에 끼어든 남편의 남자.

그와 남편과 나는 48평 아파트의 동거인이다.

그와 나는 마주칠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한 집에 함께 산다고 해서 늘 얼굴을 마주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와 나는 한 공간 아래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각각 욕실이 딸린 방에서 그들과 나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잔다. 하긴 그것이 별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늦은 밤 섹스를 끝낸 남편과 그가 샤워라도 해야 할 때, 거실을 걸어 나와 손님용 욕실로 향하는 모습을 나에게 들키는 것은 그들이나 나에게 서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남편의 방은 신혼 때 시어머니가 와서 쓰던 방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그 방에는 없던 욕실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블랙과 화이트로 꾸몄단다, 심플하고 좋지.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부터 저 방은 내가 쓰겠다.

시어머니는 근 일 년이 넘도록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자신의 집이 아닌 그 방에서 지냈다. 나는 남편과 섹스를 할 때면 벽에 귀를 바싹 붙이고 있는 시어머니를 상상했다. 처음에는 신경이 너무 쓰여 남편과 섹스를 하기 힘들었다. 남편과의 섹스가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는 남편 역시 나처럼 시어머니가 신경이 쓰여 그러는 줄로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만 말을 걸었다. 언제나 나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반 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시어머니가 오는 날이면 섹스 때 일부러 더 큰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편은 내 입을 막았다. 그런 다음 날이면 시어머니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이렇게 말했다. 교태스러운 년.

차츰 시어머니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내 발길이 끊겼다.

그가 온 뒤, 나는 조금 분주해졌다. 먼저, 사 년 동안 매일 오던 파출부를 그만두게 했다. 남편은 힘들테니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여자가 그를 이상하게 보더라고, 내 먼 친척동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더라고. 하긴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가 온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파출부는 그의 옷가지를 세탁실에 가져가며 입술을 삐죽이더니 샐쭉하게 돌아섰다. 여자는 내가 무심하게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 따위나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전면유리를 통해 그녀의 표정이나 몸짓 따위를 다 읽고 있었다. 내 앞에서야 늘 마음 좋은 아주머니처럼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지만 나는 그녀의 교활함을 잘 안다. 늘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늘 그녀를 미소로 대했으며 그 미소 뒤엔 들릴 듯 말 듯한 한숨 소리를 고의로 내비치곤 했다. 남편은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신이 알아서 하라,며 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그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파출부에게 넉넉한 돈을 쥐어주고 서운한 표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날, 파출부는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나는 왠지 모를 후련함과 해방감을 느꼈다. 아마도, 봉투 안의 돈을 재빨리 계산해 보았을 듯한 여자의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곱 낀 눈에서, 나는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을 본 듯도 하다. 어쩌면, 여자는 정말 이 집을 그만둔다는 것이 내심 섭섭했는지도 모른다. 평창동 대저택에서 눈도 못 감고 혼자 쓸쓸히 죽어간 시어머니에게 입 속의 혀처럼 눈과 귀가 되어 내 일상을 낱낱이 보고하던 여자. 아마 여자는 그를 내 섹스 파트너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에게 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는지도. 시어머니에게 내가 '오대 독자 아들을 홀린 여우같은 계집'으로 끝까지 남은 것처럼, 여자에게 내 남편은 '여우같은 계집에게 속은 불쌍한 도련님'일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나는 나를 저주스러워했던 시어머니의 돈으로 벤츠를 타고, 명품을 사들이고, 게다가 친정에 마당이 딸린 넓은 집까지 사줬으니, 시어머니에게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남편은 그날로 자신의 모든 짐을 옮겼다.

남편은 일 관계로 해외출장이 잦다. 호텔 하나가 계획되고 만들어지는 동안의 처음과 끝까지, 카운슬러 역할과 더불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계약은 남편의 손을 거친다. 그 일로 남편은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며 한 달에 반쯤 집을 비운다. 지난 봄, 남편은 푸껫에 호텔을 짓고 싶어하는 의뢰인의 요청으로 그를 데리고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과 그가 파퐁의 게이거리에 나란히 앉아 맥주에 쏨땀을 곁들여 먹으며 거리 쇼를 하는 코끼리 코에 달러를 쥐어줬을 그 시간, 나는 아파트의 인테리어를 조금 바꿨다. 그들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만큼만.

작은 액자를 드러내기만 하면 그와 남편의 방이 들여다보인다. 벽에 작은 구멍을 내고 확대 렌즈를 달아주던 심부름센터 직원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운운해가면서 몰래카메라의 성능에 대해 입에 침을 튀겨가며 얘기했지만, 그건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넉넉한 돈을 받아 챙긴 심부름센터 직원은 자신의 열정적인 과학 예찬론에 내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떨떠름해했지만, 나는 정말 대만족이었다. 나는 고전적인 것이 좋다. 지극히 고전적인 것을 선호하는 남편의 취향이 내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어쨌든 그들의 방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세계 각국의 가면 덕분에 벽의 구멍을 숨기는 일은 수월했다. 내가 한 일은 방에 쌓인 가루들을 감쪽같이 없애는 것뿐이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시어머니는 늘 내게 대를 끊어놓아 집안을 망칠 년이라고 낮고 은밀하게 말하곤 했다. 천하에 둘도 없는 귀부인이었던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을 나는 이해한다. 내가 그녀였어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내가 아이를 가졌다해도 그녀는 그리 탐탁해하질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교태스럽거나 혹은 집안을 망칠 여자였을 뿐이다. 사실 남편이 나를 선택한 것을 나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그런 학벌에 별볼일 없는 집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외모로 관광호텔의 프런트에 앉아 서비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일본인 관광객에게 '스미마셍'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왔던 내게, 남편은 너무 큰 사람이었다. 말투나 손짓 하나에도 기품이 배어있는 남편에게는 내가 근접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이가 조금 많다는 것을 빼면 그는 내게 넘치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나란히 붙어 있던 세 개의 관광호텔을 하나로 만들어 특급호텔로 탈바꿈 시켰다. 그 과정에서 실업자가 된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은 남편이었다. 당신 눈에 담고 있는 갈증이 마음에 들어. 그것이 그의 프러포즈였다.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은 내 친정어머니 단 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늘 자신이 생각하기 편한 대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아버지의 바람기마저도 마음 약한 아버지의 착한 심성 때문이며, 중풍으로 쓰러진 후에야 집으로 실려 돌아온 아버지를 보면서도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는 양반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법을 단 한 가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가슴에 멍울이 생겨 브래지어를 해야 할 때도, 초경에서 오는 하복부의 기분 나쁜 팽만감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다 내 몫이었다. 하긴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도 어머니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당연히 저절로 익혀진다고 믿는 어머니의 인생철학은 '타고난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남편과 내가 결혼한 것 또한 그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우리에게 아이가 없는 것도 부부금실이 너무 좋아서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남편의 무정자증과 성적 취향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앞뒤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어머니의 환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지만 굳이 깨고 싶진 않다. 어머니는 남은 생 동안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간호하고 텃밭이나 일구며 사는 것이 낙인 사람이다. 사위와 눈도 똑바로 맞추지 못하고 늘 좌불안석인 어머니에게 그것은 좀 잔인한 일이다. 처음 남편을 보았던 날 어머니는 내게,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젊어 보이는구나, 그치만 너도 여자 나이로는 꽉 찼으니 그만하면 괜찮지, 했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인 내가 실업자가 되었으니 돈 있는 사람과 결혼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아주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남편은 마흔 하나였다.

그가 들어오기로 하면서 남편과 나는 거래를 했다. 남편이 자신이 사는 방식에 내가 가담해주길 바라듯 나도 내가 사는 윤택한 삶을 위해 남편이 필요하다. 남편은 타인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 못되고 나는 돈의 위력을 알았다. 그가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선언할 만큼 비사회적이지 않은 것처럼, 나 또한 남들이 나를 행복한 여자로 대해주는 호의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밖에서 완벽한 부부로 행세하는 대가로 시어머니의 전 재산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남편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의 선물뿐만 아니라 내 선물까지 사온다. 남편의 선물은 늘 같다. 세계 각국의 종(鐘)이 내 슈트케이스 가득 들어 있다. 슈트케이스가 열리는 것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뿐이다. 그것은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럴 때면 세상엔 참 많은 종들이 있구나 싶다. 남편은 자신이 선물한 종을 어디에 두었는지 따위는 묻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손을 떠난 것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만큼 치졸하거나 편협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가끔 방에 들어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힘들지, 할 땐, 우린 정말 다정한 부부다.

욕조에 물을 받는다. 수압이 센 수도꼭지에서는 찬물이 조금 나오는 듯하더니 금세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온다. 욕실의 문을 닫고 나와 그들의 벽에 귀를 댄다. 천천히 액자를 떼어내고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남편이 그에게 다가간다. 그는 늘 웅크린 모습으로 남편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동작이 커 보이는 것은. 남편이 두 팔을 활짝 벌려 그를 안는다. 남편이 나를 저렇게 안아준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곧 벽을 액자로 가린다. 그들의 섹스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남편은 배후위를 선택할 것이다. 나와의 섹스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욕실 문을 열자 수증기가 내 얼굴에 훅하고 꽂힌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거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내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옷을 벗고 탕 속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곧 마음을 바꾼다. 욕조 안의 고무마개를 빼내자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하수구로 흘러간 물은 정수과정을 거쳐 언젠가 내 욕조 안을 다시 메울 것이다. 샤워기의 물을 튼다.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흐르자 나른하다. 서서 오줌을 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있던 나의 습관이다. 결혼 전 어머니는 가끔 내게 하수구에서 이상하게 지린내가 올라온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만약 어머니에게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내가 샤워하면서 오줌을 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어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의 습관은 되살아났다.

남편의 대학 동창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남편은 손수 등이 파인 검은 드레스를 골라주었다. 결혼 열두 해를 맞은 남편 친구 부부의 결혼 기념 모임이었다. 비슷한 부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그저그런 모임이었다. 풀밭 위에 잘 차려진 뷔페식 식단은 내 식욕을 그다지 자극하지 못했다. 남편은 접시에 음식을 덜어와 내 앞에 놓아주었다. 종잇장처럼 맛없는 음식을 한입 가져다 먹으며 나는 남편을 향해 눈웃음을 보냈다. 그들의 화제는 주로 경제와 정치 이야기로 시작해 골프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매번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결혼기념일에 굳이 사람들을 초대해 자신의 부와 행복을 과시하는 그들이 내게는 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더더군다나 누군가가 유학간 아이들 이야기라도 꺼낼 때 난처해하며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그 중의 또 다른 누군가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정해 놓은 금기 사항은 우리 부부 앞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서늘해지자 남편은 내 몸에 숄을 둘러 주었다. 당신도 정 선생님처럼 좀 해 봐요,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미세스 정처럼 저렇게 젊고 아름다워지면 내 한번 생각해 볼게, 하는 대답에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교묘하게 비틀어 놓은 적의와 조롱의 말투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남편의 동조자로서 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든다.

남편과 나는 사람들에게 친구같은 부부로 통한다. 간혹 이상적인 부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서로의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웃는다. 부부가 꼭 닮았다며, 어쩌면 그렇게 변함없이 다정하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이상적인 부부란 어떤 것인지 되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그런 쓸데없는 말로 남편과 나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물음을 내뱉는 순간, 사람들이 나와 남편 사이를 가늠하고 저울질 할 것을 안다. 이상적인 부부라고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남편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김질하며 둘 사이의 균형이 언제 깨지나를 내기하거나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 것쯤은 세 살 배기 어린아이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의 그늘 밑에 내가 존재하는 한 존중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이런 날은 조금 피곤하다. 방까지 따라 들어온 남편이, 많이 피곤하지 쉬어, 하고는 내 숄을 받아 서랍장에 넣는다. 남편이 방을 나가려다 말고 문득 돌아서며 오늘은 이 방에서 잘까, 한다. 내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하자 남편이 미끄러지듯 나가버린다. 남편은 이런 날 하루만이라도 남편 노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화장을 지우는 사이 남편의 방에서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벽의 액자를 떼어내고 숨을 낮춘다. 남편이 입술을 달싹이며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남편의 화난 듯한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잠시 후, 욕실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얼굴에 물기가 흐른다. 대체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당신 게임에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 같아,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내가 아직도 당신 앞에 있다는 사실이야.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마른 침을 조심스레 삼킨다. 남편이 그에게 다가가 맨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준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는 질투심에 하마터면 나는 소리를 지르고 남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갈 뻔했다. 심호흡을 해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액자로 구멍을 가려버린다.

샤워를 마치고 혼자 침대에 눕는다. 혼자 눕기엔 너무 넓은 침대다. 차라리 내가 방을 옮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을 일으켜 화장대 앞에 선다. 실크 잠옷의 끈을 어깨로 밀어내자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내 가슴은 작지만 아직 봉곳하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남편은 섹스를 하다가 내 가슴에 손이 닿기라도 하면 흠칫하며 행위를 멈추었다. 그런 날 남편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침대에서 살그머니 빠져나가 욕실에서 한참을 있다 나왔다. 욕실에서는 샤워기 물이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남편의 습관이려니 했다.

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결혼하고 이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병원에 먼저 가자고 했던 것도 남편이었다. 병원에서 얻어진 결론은 그가 무정자증이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는 것뿐이라고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의사의 한 마디에 얼마나 허탈해하고 참담해했던가.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위로 받는 것은 나였고 주는 것은 남편이었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늘 불안하고 절실했던 일이다. 난 남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른 병원을 알아보자고 했던 날, 남편의 입에서 나온 '게이'라는 두 음절의 말은 내게 참으로 낯설고 생소했다. 너무 낯설어서 징그럽다든가 역겹다는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일까. 난 왠지 모르게 담담했다.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 소식을 뉴스로 대할 때처럼 꼭 그랬다. 단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교통신호를 위반하고 단속에 걸렸을 때처럼 그럼 이제 어쩌지,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내게 그랬다. 당신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아이를 낳아도 난 괜찮아. 하지만 나는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남편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린 서로에게 필요하다.

남편이 게이라는 것을 밝힌 후 내게도 변화가 왔다. 무시하려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던, 늘 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었던 시어머니 앞에서 당당한 며느리가 됐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방에 들어와 우두커니 앉아 화장대 서랍을 정리한다. 자줏빛 벨벳이 깔린 서랍 안은 파우더가 떨어져 지저분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짐짓 그가 나갔구나, 하고 혼잣말을 되뇌어본다. 크리넥스 티슈를 한 장 뽑아, 닦는다. 힘을 주어 닦아내려 할수록 파우더 분가루가 더욱 지저분하게 번진다. 티슈에 침을 묻히다, 이건 정말 남편과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탁실 안에 있는 분무기를 가지러 갈 때였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그가 뛰어 들어온다.

나는 그와 부딪히지 않게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공교롭게도 그 또한 오른쪽으로 비켜선다. 나는 다시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도 나와 부딪히지 않게 왼쪽으로 비켜선다.

눈을 마주친 후에야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제자리에 서고, 그는 내 왼쪽으로 돌아 방으로 들어간다. 서있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그래, 나에게 오른쪽은 그에게는 왼쪽이구나.

그의 신발 한 짝이 마룻바닥에 반쯤 걸쳐져 올라와 있고, 현관 바닥에는 난데없이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방문 소리가 들린다. 반쯤 걸쳐진 신발은 나를 향해 콧날을 세우고 있다. 그가 내 오른쪽으로 비켜간다. 그는 몸을 돌려 반쯤 걸쳐 있는 신발을 현관 바닥으로 내린다. 그리고 그 신발에 발을 꿴다.

목례.

등을 돌려 그가 나간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려다 여기에 서있었나. 그가 나를 비켜 지나갔던 오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신발장. 가장 아래쪽에 놓인 여름 신발을 위쪽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다.

여름 구두를 위로 올린다. 세상에, 이 구두를 이제껏 여기 두다니.

돌아서 마루에 발을 딛는 순간 현관에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나는 내 맨발을 더러운 자국 위에 대본다. 이런, 형편없이 작다.

걸레를 가지러 간다. 미처 창문을 닫아 놓지 않은 동안 비가 왔는지, 베란다 바닥이 젖어 있다.

현관에 있는, 이제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모든 자국들을 지우기 시작한다. 현관은, 다시 현관이 된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출장을 갈 때 늘 그랬듯 나에게 행선지를 밝힌다. 그다지 보고해야 할 일도 아닌데 어김없이 요목조목 자신이 묵을 호텔과 전화번호까지 남기는 성의를 보인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늘 얼굴에 홍조를 띤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감동하기에는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많이 무심해져 있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가 아닌 남편 혼자 가는 출장이다.

오늘 당신 스케줄은 어떻게 되지. 남편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묻는다. 손톱 손질 하러 네일숍에 다녀올까 해요.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나자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만 같다. 그와 나란히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외출 준비를 한다. 그와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에'라는 생각을 해봤을 때, 그가 만약 여자였고 만약 지금이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워왔던 과거의 어느 시간대라면, 나와 그는 본처와 후실쯤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지워내기라도 하듯 재빨리 집을 나온다.

나는 가끔 내가 일했던 관광호텔 자리에 가 본다. 결혼을 하면서 일부러 피해 다니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호텔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내가 일했던 자리를 더듬어 보곤 한다. 그렇지만 도무지 내가 있던 곳이 가늠이 안 된다. 그 자리에 들어선 특급호텔은 어쩐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다. 교통경찰이 지휘봉을 들고 다가와 얼른 차를 빼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미안하다는 수신호를 보내고 백화점으로 향한다. 명품 매장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직원이 많다. 결혼 전 남편과 함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너무 주눅이 들어서 괜히 얼굴이 상기되고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왠지 사람들이 네가 올 곳이 못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상냥하게 웃는 직원이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이 가장 편하고 좋다. 깨끗하고 안락한 것에 대한 적응은 빠르고 쉬웠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친다. 머플러를 사고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나오는 매장 앞에서였다.

"얘, 정말 몰라보겠다. 네 소식은 들었어."

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증말 반갑다. 나 여기 백화점에서 하는 교양 강좌 들어. 너도 나와라."

난 그냥 가벼운 미소만 짓는다. 그녀가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는다.

"넌 참 눈에 안 띄는 애였는데, 신랑은 엄청 잘 만난 것 같더라. 여자 팔자는 그저 남편 능력에 달려 있다니까. 우리 요 옆 호텔 커피숍에라도 갈까."

난 그녀에게 선약이 있다,고 하곤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며 머플러야, 했다. 그녀가 얼른 쇼핑백을 받았다.

"어머, 네가 필요해서 산 걸텐데, 내가 이래도 되나. 허긴 넌 이런 거 많지. 암튼 고마워. 여튼 언제 우리 한 번 꼭 만나자. 응?"

대학을 졸업하고 호텔에 다니는 동안 난 사람들과 약속을 정하고 만난 적이 없다. 밤근무가 많아 사람들과 시간이 맞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다지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깔끔한 정복을 입은 아파트 경비의 인사에 가벼운 목례를 한 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순간, 계기판에서 바뀌는 숫자를 올려다보다 문득 그가 집에 있을까 없을까를 점쳐 본다. 육개월이 넘도록 함께 살아왔지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그의 겉모습이 전부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몸은 단단하다. 마른 체격 때문에 조금 왜소해 보이는 듯하지만,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러닝머신을 하는 그의 몸은 무척 탄력 있어 보인다. 내가 그의 몸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한 달쯤 되었을까.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 신상품으로 나온 페라가모 구두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다 막 택시를 타는 그를 보았다. 급히 차를 돌려 그의 뒤를 밟았다. 그는 새로 생긴 휘트니스 센터 안으로 사라졌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잠시 후 러닝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그가 이층 통유리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밖을 바라보며 러닝머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척 생기 있고 빛나 보였다. 그 후 나는 가끔 그의 모습을 고의로 훔쳐보곤 했다. 어느 때는 남편과 함께 나란히 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이좋은 삼촌과 조카쯤으로 보였다.

그의 생활은 그다지 규칙적이지 않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난 후 집에 함께 있는 때면 식사를 할 때 외에는 방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식사를 차려 놓고 노크를 할 뿐이다. 그가 조용히 식사를 마치는 동안 나는 혼자 방안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본다. 그가 식기세척기 안에 그릇을 넣고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귀로 살필 뿐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모른다. 그렇다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가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느 때는 그의 귀가가 늦어지기도 한다. 그런 때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옆얼굴은 멀리 어딘가를 다녀온 사람의 피곤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지나치게 운동을 해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저 남편의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언젠가 남편과 헤어질 것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미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처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열렸습니다, 하는 여자의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벗으려는데 그가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다 내게 웃음을 짓는다.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 남편이 없는 집에 그와 단둘이 있다는 것이 오늘은 조금 어색하고 신경이 쓰인다. 며칠 전의 작은 소동 때문일까. 남편과 그는 그날 이후로 잘 지내는 것 같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이면 남편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남편과의 형식적인 전화가 끝나자 남편 방의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에게 온 전화일 것이다. 그는 그동안 집밖을 나간 적이 없다. 액자를 떼고 그를 훔쳐보기도 했지만 그는 책을 읽거나 서류 같은 것을 뒤적일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남편이 즐겨 읽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막 펼쳐들 때였다. 주위에 켜놓은 촛불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인도 여인의 사진이 일렁거렸다. 방에서 나온 그가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전원을 켠다. 그가 남편이 없는 이 집의 거실에 나와 텔레비전을 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하마터면 무릎에 올려놓았던 잡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어쩌면 그가 나와 있다는 사실보다 늘 정적뿐인 거실에서 작지만 소곤거리듯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가 아주 낯선 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마음속에 작은 동요가 일어난 것 같다.

나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그가 없는 듯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단지 유령일 뿐이다. 눈에 검은 물안경 같은 것을 쓴 아이들이 팬티만 입은 채로, 커튼을 쳐놓은 어두운 실내에서 강한 자외선을 쐬고 있다. 침묵을 깬 것은 그였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요. 거실에서 텔레비전 앞에 바싹 다가앉아 있던 그가 크리넥스 티슈를 뽑듯 심상하게 묻는다. 몇 마디 말이 잠시 그와 나 사이의 짧은 거리로 가볍게 너풀거린다. 잠깐이지만, 그와 내가 지금껏 몇 마디나 나눠봤나 헤아려본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시큰둥한 내 대답에 그가 재빨리 말한다. 여긴 집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가 내가 넘기는 책장을 슬쩍 넘겨다본다. 음 나도 그 기사 봤어요, 햇빛에 든 비타민은 아이들의 뼈를 튼튼하게 한다고 하던 걸요. 그가 무엇이 우스운지 소년처럼 덧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당신한테도 햇빛 비타민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오늘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어요. 어쩌면 그는 그리 조용한 남자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늘 솔직하고 농담을 잘하는 유쾌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식탁에 항상 세 사람의 밥을 차려놓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는 않았었다. 제사상 한 귀퉁이에 저승사자 밥을 놓듯, 남편과 내가 먹는 밥상에 그저 수저나 하나 더 놓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밥을 먹자니 정말 농담 같은 얘기다. 가을 햇살이 물고기 비늘처럼 유난히 번뜩인다.

그가 차린 저녁 식사 앞에 앉으며 나는 그리 마음이 편치 못하다. 꽤 깔끔하게 만든 오므라이스는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여긴 별로 집 냄새가 안나요. 그가 식기세척기에 접시를 넣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한다. 모델하우스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그가 나를 돌아본다. 당신의 모습을 봤어요. 대체 어떤 모습을 봤다는 것인지 언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 매일 밤 당신 방을 봤죠, 섹스를 끝내고 나면 우린 늘 당신 방안을 들여다봤어요, 당신은 늘 당신의 가슴을 만지더군요. 마치 남편의 방을 훔쳐보는 것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드럽게 만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터뜨릴 듯이 손가락에 힘을 주더군요. 그가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르곤 내 앞에 앉는다. 이상하지요, 당신의 모습을 봐야만 우린 잠들 수 있었어요, 당신 역시 그렇다는 걸 알아요. 난 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다. 지금 대체 그가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을 뿐이었다. 전 내일 여기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당신이 내 아이를 낳길 원하지만 그건 그저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요. 지금 나한테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요, 내가 남편에게서 떠나길 원하나요. 그가 잠시 사이를 두더니 난 내일 여기 없을 거예요, 한다.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는 정말 집에 없었다. 남편은 그가 떠난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담담해 보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겨울이 되었다는 것을 빼고는 우리는 여전히 다정하고 완벽한 이상적인 부부였다.

텔레비전을 켜자 아름다운 숲의 모습이 나타난다. 따사로운 햇살에 호수가 반짝거린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그곳엔 따사로운 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자란 자작나무가 있습니다. 핀란드 자작나무의 선물'이라는 멘트와 함께 호수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잡힌다. 서양여자가 얘야 껌 씹고 자는 거 잊지 마라, 자일리톨 껌 씹고 자야지, 하면서 약병처럼 생긴 플라스틱 통에서 알약 같은 껌을 꺼내 잠옷을 입은 아이 둘에게 하나씩 먹이는 광고의 후속편인 것 같았다. 그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보았던 광고였다. 그때 참 이상한 광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기 전에 껌을 씹으라니. 문득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그에게 묻기라도 하듯 되뇌어 본다.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 어쩌면 그는 핀란드에 갔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남편의 새 파트너가 오는 날이다. 남편과 새 파트너를 위해 대형할인점에서 장을 봤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한 여자가 놀이터를 향해 아이를 부르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여자 아이 하나가 그네를 타고 있다. 아이는 어느새 그네에서 풀쩍 뛰어내려 제 엄마에게 뛰어 간다. 아무런 미련 없이.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 놀이터 모래 바닥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나는 시소 앞에 비닐봉투를 내려놓는다. 이제 그네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네 앞에 쪼그려 앉는다. 뒷걸음질치며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들을 손으로 지우기 시작한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어느새 내 등은 시소에 닿는다. 내가 뒷걸음질쳐온 거리만큼 양손이 닿은 거리는 어떤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몸을 돌려 그네까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한다. 문득 고개를 드니 시소 옆에 발자국이 하나 남아 있다. 내가 몸을 돌릴 때 생긴 미처 지우지 못한 내 발자국이다.

구멍이다.

그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남편의 방에서 나를 엿보는 구멍을 찾아냈다. 어쩌면 그것은 시어머니가 남기고 간 흔적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부러 없애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아직 아이를 낳는 일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정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늘이 잔뜩 무겁게 내려앉아있다. 어쩌면 눈이 올지도 모른다. 온다면, 첫눈이 될 것이다.


■ 소설부문 당선소감 / 이연희
"믿어지지않는 당선 전화… 사람냄새나는 글 쓰고파"

당선 연락을 받은 날, 일 때문에 부산 광안리 바다 곁에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펼쳐진 광안대교가 막 조명을 밝힌 직후였다. 전화를 끊고도 실감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창문을 열었다. 창밖에 몰려와 있던 바다 바람이 시위하듯 몰려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염도 내지 못했다. 내게는 인연이 없는 일인가보다고 체념하듯 잊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내게 생겼다. 당선이라니!

나는 늘 포기가 빠르다. 그런데 포기를 그리 잘 하면서도 그놈의 미련이라는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12월이면 늘 마음이 헛헛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조금 있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그러는데 누나 뭐가 됐다며? 그제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뭐가 됐구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글 쓴답시고 분위기 잡는 애들이 가장 밥맛없었다. 그런 내가 문예창작과를 간 일 자체가 억지 춘향으로 맺은 인연이었다. 졸업만 하자고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학교였다. 그런데 소설 쓰는 일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 제법 기뻤다.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여름 인도에 다녀왔다. 나는 지저분한 것도 싫어하고 복잡한 것과도 친하지 못하다. 한 마디로 나는 까칠한 사람이다. 열 시간이 넘도록 쿨렁쿨렁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다시는 이런 곳에 오나 봐라 하기도 했고 마지막 날은 인도의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그런데 지금 왜 하필 그곳이 생각날까. 함께 간 글 쓰는 후배들은 밤새 글 쓰는 일에 대하여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이왕이면 패키지여행보다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하는 여행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들의 열정에 나는 잠시 주눅 들었다. 인도는 내게 길 위에서 길을 만난 곳이다. 수많은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있는 곳.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그러하듯 그곳엔 끝없는 길이 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저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면서도 겁 많은 내가 뛰어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소설과 귀한 인연을 맺게 해주신 박철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 인사를 드린다.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것 같다.

- 약력
1972년 서울 생
서일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서일문학상, 태전문학상, 조선문학 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 소설부문 심사평 / 성석제·박범신
"과감하고 담대한 글 전개… 풍속의 세부가 살아있어"

한 해를 결산하는 동시에 새해의 출발점에 놓이는 신춘문예, 그 중에서도 소설 부문 투고작은 우리 사회의 풍속을 고스란히 반영하게 마련이다. 가족 해체, 경제위기 속에 소외된 사람들, 노인들의 병고와 생활고에 대한 연민 등 다양한 제재의 투고작 가운데 당선작 후보로 논의된 작품은 다섯편이었다.

'푸른 이마'는 발달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여성의 생활이 그려진 작품으로 안정된 문장이 강점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고투와 몸부림이 읽는 사람의 공감을 자아내지 못 하고 개인적인 범주에 머물고 만다는 게 문제였다. '고추 농사'는 오늘날의 고민 많은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소설인데 비슷한 기성 작품들과 구별될 만한 개성이 읽히지 않았다. '코끼리 약국에서 만나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가 생생하고 좀체 쓰지 않는 우리말을 찾아내고 쓰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전개가 불안하고 말하려는 골자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반품'은 약점이 별로 없는 작품이다. 비정규직의 힘든 생활과 반품으로 돌아오는 상품을 대비해 가며 삶의 거친 주름과 살결을 조명해내고 있는 점이 호감을 준다. 관찰자의 시각이 날카롭고 의미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세계의 한 부분을 생생하게 재생해내고 있을 뿐,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인 '핀란드에서는 정말 자일리톨 껌을 씹을까'는 과감하고 담대하다. 묘사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경쾌하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부부와 남편의 남자 애인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풍경을 불편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써진 듯한, 자기 완결성이 높은 작품을 읽고 나서 '그래서?'라고 그 다음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거기에 대한 대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오늘의 풍속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질 또 다른 작품으로 독자에게 응답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