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벽
                        -박설희

끙 하고 누가 돌아눕는다
내 귀가 먼저 달려간다
물 흐르는, 쿵쾅거리는, 흥얼거리는 소리
벽에 달라붙은 귀

천장의 얼룩이 점점 커진다
날림 공사를 했는지 온통 손볼 데 투성이다
누수 되고 있다는 걸
못 박는 게 취미인 위층 남자는 모를 것이다
내 시선은 오래 그 얼룩을 더듬는다
물 만난 벽지에 남아 있는 흉터,
쭈글쭈글하고 약간 딱딱해진

벽에 생긴 틈이 그새 더 벌어져 있다
이 틈을 누구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요리나 샤워를 하면서
끊임없이 옆방 여자가 건너오는


부드러운 원룸,
걷는다 구른다 뛴다
다만 그뿐
문고리도 문도 보이지 않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얼룩 번져간다
틈이 점점 벌어진다

단단한 벽에 균열이 생기고, 견고한 나무에 못이 박히는 까닭은 그것들 내부에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틈'은 세상 모든 것들이 자기 아닌 것들을 향해 스스로를 개방하는 상태이며, 자신을 해체하고 자기 아닌 것을 긍정하는 가능성의 여백이다.

시인의 시선이 벽을 따라 흐른다. 벽과 벽 사이에, 벽과 문 사이에 생긴 '틈'은 이쪽의 소유물도, 저쪽의 소유물도 아니다. 정확하게 '틈'은 소유의 관념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에서 생겨난다. 그 틈 사이로 옆방 여자의 삶이, '문고리도 문도' 없이 건너온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소통되는 소리는 소음 이상이 아니지만, 시인은 그 소음에서 한 생의 건너옴을 읽고 있다. 그렇게 '틈'은 소유의 관념을 가로질러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생이란 결국 '벽'을 '문'으로 알고 걷어차는 일이거나, '벽'을 '문'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던가.

/박병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