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몇 번의 프랑스 출장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루브르 박물관을 잠시 짬을 내어 돌아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식의 소치였다. 40만점이 넘는 소장품(대부분 침략에 의한 약탈의 유품이지만)과 그 규모에 기가 질렸다. 그래도 '모나리자'는 봐야 한다는 생각에, 피라미드형 입구에서 부지런히 출발하여 역사의 걸작들을 스치듯 지나, 모나리자 앞에서 인파(?)를 헤치고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역순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대영박물관에서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도, 인도 국립 델리박물관에서도, 타이 왕립박물관에서도 나의 박물관 답사는 '갔다 왔음'을 자랑하는 현학의 허세가 존재하였음을 창피하지만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서 그 박물관들에서 보았던 어린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한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 노신사의 모습은 아직도 멋지게 기억되고 있다.

한 때 박물관 관람은 재패니스(코리안) 스타일과 유로피언 스타일이 있다는 농이 있었다. 일본식은 30분 만이면 박물관 전체 관람이 모두 끝난다는 것이고, 유럽식은 사흘이 걸린다는 것이다.

스타일의 차이지 정법이 따로 있으랴만 '가까이 있는 박물관'과 '즐겨 찾는 관람객'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박물관은 역사의 거울이라 한다. 박물관을 통해 지나온 과거를 비쳐보고 미래를 열어간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대형거울도 있고 작은 손거울도 있듯 대규모의 박물관 건립도 좋지만 작은 소규모 박물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많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지하철역 한 모퉁이에 차표 박물관, 시장통 한 모서리에 가정용품 박물관 등과 같은 생활사(벼룩)박물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1909년 11월 1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창경궁 양화당과 명정전, 회랑 등을 전시실로 꾸민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대중에 개방했다. 이에 올해는 우리나라에 근대적 박물관이 들어선 지 100년째 되는 해라 한다. 박물관 100년의 역사답게 '갔다 왔음'을 자랑하는 관람객의 허세가 더욱 부풀어지고 이를 충족시키는 박물관의 참신한 노력이 배가하길 바란다.

/문화커뮤니케이터·한국외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