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수 송헌문화재단 회장
"숭례문(崇禮門) 편액의 글씨는 신장(申檣) 선생이 쓰신 것이 확실합니다."

지난해 2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는 것을 전 국민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목격해야만 했다. 이와함께 소방관들의 힘으로 겨우 살려낸 숭례문 편액(널빤지에 쓴 글씨)이 당시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학계에서도 '崇禮門'이라는 세글자를 누가 썼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현재까지도 다양한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숭례문 편액을 쓴 사람으로 양녕대군, 안평대군, 정난종, 유진동 등의 인물이 거론되나 어느 누가 확실히 썼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올해 초 송헌문화재단의 신화수(69) 회장이 여기에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바로 그의 조상인 신장(申檣·1382~1433)선생이 숭례문 편액의 글씨를 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 회장은 송헌문화재단이 최근 발간한 '고령신씨 북백공파 가장집 3권'에서 "추사김정희가 67세에 쓴 홍우연에게 써서주다(書贈洪祐衍)라는 서찰의 내용 중 '지금 숭례문 편액은 곧 신장의 글씨인데 깊이 구(歐)의 골수에 들어갔고…(今崇禮門扁 卽申檣書 而深入歐髓)'라는 문구에서 보듯 숭례문 편액은 신장선생이 쓰신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신숙주의 아버지였던 신장은 대제학을 역임한 인물로, 초서와 행서에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서예와 고증학의 대가였던 김정희가 '완당선생집'에 실린 '홍우연에게 써서주다'라는 글을 통해 숭례문 현판을 쓴 사람으로 신장을 지목한 것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신 회장은 각종 언론기사와 학설들을 언급하며 "현재 숭례문 편액을 쓴 사람이 여러명 거론되지만 이번 송헌문화재단에서 발견한 추사 김정희의 글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근거가 아니겠느냐"며 "앞으로 재단이 끊임없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 신장선생이 편액을 썼다는 사실을 더욱 확고히 입증해 보이겠다"고 밝혔다.

■ 송헌문화재단?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에 위치한 송헌문화재단(이하 재단)은 신화수 회장 개인이 소장, 관리하던 유물을 모체로 지난해 5월 경기도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현재 향토유적 관리 보존 및 민속사료 조사연구, 문화재 발굴 및 조사연구, 고문서 보존관리 및 연구, 충효사상교육(선조위선선양), 청소년 수련 및 노인 복지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재단에서는 토지거래 계약서, 수표 등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고문서들을 발굴,정리해 '가장

집(家狀集)'이라는 책으로 만들어 전국 도서관과 학교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전통 제례문화 시

연 및 교육에 힘쓰고 있다. 재단 옆에는 주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체험학습을 할 수 있게 꾸며진 토화골(흙꽃마을), 도자기를 생산하는 향남도예 연구소, 남계농원, 고령 신씨일가의 유물을 전시하는 화성박물관 등이 함께 조성돼 있다. 토화골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채소 가꾸기, 민속전통놀이, 도자기 제작 등 다양한 체험학습으로 꾸며진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며 매년 가을에는 '토화골 축제'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