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역시 계속된 불황을 피할 수는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최대의 대목을 맞이한 극장가의 풍경도 예년에 비해서는 상당히 시들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름 관객들을 유혹할 최선의 작품들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이렇다할 대작이나 이슈가 될 정도의 화제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단 전통적인 명절에는 한국영화가 좀 더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이를 겨냥한 전략적 작품들이 늘 있어왔다. 올해는 과거 '두사부일체'팀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내놓은 '유감스러운 도시'(김동원 감독, 정준호·정웅인)가 구색 면에서 간신히 체면은 유지하고 있는데 그 완성도나 만족도는 상당히 유감스럽다. 일단 너무나 유명한 '무간도'를 연상케 하는 무책임한 설정도 그렇지만, 영화 전반의 억지스러운 전개와 코미디는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는데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가벼운 코미디가 제격인 명절 분위기를 겨냥했다해도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가 갖추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조차 미달된 작품이 온전히 유쾌할 리는 만무하다. 정히 한국영화에 대한 아쉬움과 욕구를 참을 수 없는 관객들이라면 앞서 개봉한 '쌍화점'(유하 감독, 조인성·주진모)이나 의외의 롱런을 하고 있는 '과속스캔들'(강형철 감독, 차태현 박보영)에 눈을 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싶다.
단순히 규모와 익숙한 극영화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의미도 있고 감동적인 한국영화들을 만날 수도 있다. 수시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의 현재를 보통사람들의 시선에서 기록한 '미안하다 독도야'(최현묵 감독)와 소와 할아버지의 40년 동안의 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한 '워낭소리'(이충렬 감독)는 작은 제작규모와 상영관 수에 비해 매우 알찬 다큐멘터리 작품들이다.
모처럼 극장 나들이를 계획했다면 아무래도 커다란 스크린에 어울리는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
최근 개봉과 발맞춰 내한한 감독 '브라이언 싱어'와 배우 '톰 크루즈'의 대규모 프로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전명 발키리'는 2차 대전 당시 히틀러 암살을 계획했던 독일군 내 레지스탕스 장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과거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 시리즈를 연출했던 싱어 감독의 개성 있는 연출과 좀 더 내면적 연기를 욕심낸 톰 크루즈의 열연이 기대를 모으고 있기도 한데, 전반적으로 무난한 정도 이상의 느낌은 아니다. 정작 독일인들 입장에서는 어찌 해석할지 모르는 이야기를 미국인들의 일방적인 시선에서 밀어붙인 데서 오는 괴리도 편하진 않고,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한계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제작사가 상당부분을 투자해 제작한 다국적 영화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오우삼 감독, 양조위 금성무)도 이번 설에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형작품 중 하나다. 너무나도 유명한 삼국지의 극히 일부분을 차용한 이 작품은 한동안 봇물처럼 제작되던 중화권 서사대작 붐의 끝물에 위치한 작품이기도 하다. 중국의 넘치는 인력자원에 컴퓨터그래픽까지 동원한 스펙터클한 전쟁 신과 나름 화려한 출연진들의 긴밀한 연기가 장장 2시간 반 동안 펼쳐진다. 하지만 전체적인 짜임새가 느슨하고, 결정적으로 전편에 바로 이어지는 연작이라는 점은 전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래도 친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니 만큼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들도 눈여겨 훑어 보아야할 중요 아이템일 것이다.
스키터는 이 꿈같은 상황을 승진의 기회로 이용해보고자 노력하지만 문제는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의 상상력만이 현실을 좌우한다는 점. 서부영화, SF, 서사극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유쾌한 소동을 가볍게 무리 없이 엮어가면서도, 성장과 더불어 상실해 가는 순수와 동심에 대한 씁쓸한 아쉬움과 여운을 적절히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지난 주 개봉한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필립 뮬 감독, 클레어 부아닉·미셸 세로, 2002)도 모처럼 가족들 모두가 흔쾌히 즐길만한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우연히 나비채집여행에 동행하게 된 노신사와 철부지 소녀가 티격태격 부딪히며 쌓아 가는 소박한 우정은 현명한 대사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더욱 빛을 발하며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든다.
과거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배우에서 작가주의 연출가의 반열에 올라선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체인질링'은 육감적 여전사의 이미지가 강한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변신이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1920년대 말,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무관심한 세상에 홀로 힘겹게 대항했던 한 어머니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이스트우드 감독의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빛을 발하는데, 뒤이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신작 '그랜 토리노'와 함께 비교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지난주 개봉한 '롤라'와 '티스'도 나름 독특한 개성으로 똘똘 뭉친 미국영화들로 한번쯤 주목할만하다.
본의 아니게 낯선 이집트에 혈혈단신으로 남게 됐지만 위대한 댄서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게되는 한 여성의 소동을 사랑스럽게 그려낸 영화 '롤라'(나빌 아우크 감독, 2007)는 이국적 풍광과 멋진 음악으로 관객들을 만족시킨다. 특히 주인공 롤라 역을 맡은 '로라 램지'의 신선한 미모와 혼신의 연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티스'(미첼 리히텐스타인 감독, 제스 웨이슬러·존 헨슬리, 2007)는 공포영화의 스릴과 블랙코미디의 페이소스가 절묘하게 혼합되어있는 작품.
이미 재미와 작품성에 있어 확실한 만족이 보증된 작품들의 재개봉도 눈에 띈다. 지난 2001년 개봉해 상당기간 롱런 했던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아네스 자우이 감독, 장 피에르 바크리·안느 알바로, 1999)은 제목부터 강렬하게 어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는 소외와 소통에 버거워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엇갈리는 연예사를 통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코미디물이다. 2007년 개봉해 20만 관객이라는 예술영화전용관 사상 유례 없는 흥행을 기록하며 독립영화계 전반에 큰 희망을 안기고, 더불어 '음악영화=흥행'이라는 트렌드까지 만들어냈던 '원스'(존 카니 감독, 글렌 한사드·마르케타 이글로바)도 다시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지난 주말 이뤄진 실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결성한 밴드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의 내한공연에 발맞춰 진행되고 있는 재개봉은 다양한 이벤트까지 동반하고 있어 팬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있는 중이다.
우리 주변에 영화와 그에 대한 정보는 나날이 넘쳐나지만 그 많은 가능성과 기회들이 되레 나의 인생에 결정적인 변화를 제공하거나 추억을 만드는 작품을 만날 확률을 더욱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 한 편이라도 되새겨볼 만큼 의미 있는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수많은 인파 속의 인연처럼, 또 세상에 모든 이치가 그러한 것처럼 나의 노력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한 축복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아무쪼록 올 한 해는 그런 작은 축복의 기운들이 끊임없이 넘쳐나는 한해가 되시길.
독자여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