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여학교에 어김없이 서있던, 한복을 곱게 입고 앉아있던 그녀의 동상, 현숙한 아내, 아들을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키운 어머니,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 대략 이 정도일 듯하다. 그래서 어린시절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남자아이들은 "이순신", 여자아이들은 "신사임당" 이렇게 단골로 꼽히곤 했다.
다시 말하면, 신사임당은 여성들이 닮아야하고, 닮을만한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2007년 초, 고액권 화폐에 들어갈 인물 중에 신사임당이 선정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녀의 이러한 '위상'은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호시절'은 거기까지였던 걸까. 바로 '그녀만은 안된다'는 여성계의 반대가 크게 일면서 신사임당은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결국에는 오는 5~6월쯤 유통될 5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인물에 신사임당이 결정됐지만, 그녀의 '현모양처'이미지는 적지않게 훼손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 현모양처가 여성의 대표?

한국은행측이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 준 인물"이라며 신사임당을 선정한 이유를 밝힌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성계의 반대는 더욱 거셌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계의 환영을 받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이다. 그러고보면 화폐인물 선정 논쟁은 과거 여성인물을 2000년대인 오늘날 어떻게 보는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 셈이었다.
여성계는 이렇게 주장했다. "5만원권 지폐에 등장할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상'이 신사임당이라니,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고.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측은 "한은측은 주체적인 여성이 아닌 가부장제 속의 '현모양처'를 바람직하고 닮을만한 여성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신사임당 대신 스스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 자기의 재능을 발전시켜 사회에 공헌한 여성상이 대신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신사임당은 가부장적 판타지 속에서 신화화시킨 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이연정(30·여)씨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그리워하는 여성모델일 뿐인 신사임당을 '여성들의 롤모델'이라며 화폐인물에 선정한 것은, 일과 육아라는 짐을 함께 지고 있는 현대 여성들에게 슈퍼우먼이 되라는 암묵적인 강요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 그녀가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신사임당은 왜 신화화 된 것일까. 그녀가 '위인'이 된 표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예술혼을 발휘, 훌륭하게 자아실현까지 해냈다는 점. 하지만 그녀가 율곡같은 아들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인기인'이 될 수 있었을까. 때로 사임당보다 오히려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신사임당의 맏딸 매창은, 사임당과 같은 월계관을 쓰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율곡 같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
이처럼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기억하는 방식은 종종 그 여자의 재능과 작품이 아니라 어떤 아들을 낳았느냐에 따른 경우가 있다. 신사임당이 5만원 화폐 인물로 결정되기 전, 논란이 극에 달했을때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어느 주부의 탄식을 봐도 이같은 문제를 느낄 수 있다.
"솔직히 신사임당의 아들이 율곡이 아니라 망나니였으면 아무리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인정을 받거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어요? 가뜩이나 아이들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이고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게 엄마의 평생 숙원사업인데 신사임당을 매일 보는 지폐에 담는다는 건 자식 사교육 잘 시켜 명문대 보내라는 소리 아닌가요?"
# 신사임당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

율곡을 비롯해 7남매를 잘 길러낸 것은 사실이지만, 남편인 이원수가 자기 아들보다 어린 주막집 여자 권씨를 첩으로 삼은 이후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간 '발칙한(?)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사임당은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당시 제도 속에서의 절망감을 느끼며 결국 48세에 사망했다고 한다. 신사임당이 집을 나와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이미 첩을 가진 남편에게 재가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몇명이나 될까.
이를 '사적인 저항'쯤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사임당을 가부장제가 그토록 찬양하는 현모양처의 그 '양처'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결국 신사임당이 남성에겐 숭앙의 대상, 여성에겐 역할 모델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일제식민지 시대와 오랜 군부독재 시대의 여성교육 때문이라는 것. 심지어 신사임당을 주인공으로 한 가부장적 현모양처 판타지 담론은, 일제 강점기 신민황국의 어머니로 신화화된 '반민족적 아이콘'으로 이용되기까지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제 강점기 친일공연 예술문제를 연구한 이재명씨의 연구결과가 그것. 일제 식민지 시절, 송영의 '신사임당'이라는 친일작품이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그려졌지만 잘 살펴보면 조선의 아들 딸을 지원병과 정신대로 보내는 '군국의 어머니'였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면서 대중 이미지로 굳어진 것이 현재의 신사임당이라는 것. 여성계는 이같이 왜곡된 과정을 거쳐 구축된 신사임당 이미지가 화폐 인물 선정에 영향이 끼친 점은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비전을 제시할 여성모델 찾아내야
신사임당도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었을 뿐이었는데, 그 감정을 싹 거세해버리고는 '박제된 판타지'로 만들어버린 이는 누구였을까. 신사임당은 인텔리였고, 많은 재능을 갖추었던 여자이며, 그녀가 태어난 집이나 그녀가 시집간 집안이나 그런 그녀의 재능을 부족하게나마 발휘할 기회를 주었던 나름의 행운아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맨얼굴의 신사임당'을 기억하기보다는 가부장제를 위해 존재하는 정숙하고 순종적으로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이자 현명한 어머니, 효성스런 며느리이자 딸로서만 그녀를 규정했다. 신사임당 스스로가 만들어내지도 않은 그 '현모양처' 이미지 때문에 같은 여성들로부터 반발을 사게 된 그녀, 신사임당도 피해자가 아닐까.
한편 '조선시대 이씨 남자' 일색인 화폐 인물이 신사임당의 화폐인물 선정을 계기로 다양해졌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여성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해결해내어야 할, 하나의 과제를 발견한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비전을 제시할 여성 모델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것. 여성계가 신사임당을 갈음할 인물로 '유관순'을 내세웠다는 사실은 이같은 과제의 중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독립운동하다가 어린나이에 옥사한 열사 중 남성을 찾으려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유관순은 남성 일색의 국가유공자 명단에서 눈에 띄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 부각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과연 유관순을 현대 여성상의 전형으로 꼽을 수 있을까. '유관순'을 대체 인물로 내세웠다는 것은 여성계 스스로가 '현대 여성상' 창조에 실패했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 해외화폐에서는 여성활약 대단해
한편 해외 지폐 속에서는 여성들을 자주 찾을 수 있다.
인물 일본의 저술가 나카노 교코의 2001년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1천여 종의 지폐 중 약 40종에서 여성 저명인물이 등장한다. 영국의 경우 화폐(파운드화) 4종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사용되고 있으며, 20여개국 이상의 영 연방 국가에서도 영국 여왕이 화폐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지폐 앞·뒷면에 인물의 성을 달리하며 균형을 꾀하는 방식을 택했다. 앞면에 남성의 인물 초상이 있으면 반드시 그 뒷면에는 여성 인물초상을 배치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20호주달러 지폐의 주인공은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 장학 사업을 벌인 메리 라이비다. 호주 외에도 독일·덴마크 등에서는 화폐 속 남녀 인물을 같은 비율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2004년 메이지 시대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가 여성인물로는 처음으로 5천엔권에 등장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여성이 화폐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들이 화폐인물에 선정될 인물을 골라내지도 못할만큼 활약이 빈약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남성들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보조자로서만 부각되고 기록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중요하다.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의 존재를 논하고 평가하는 데에서 벗어나, 여성 그 자체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닌 스스로 성취해낸 업적으로서 평가받는 그런 사회를 이룩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