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원시림을 간직한 백년계곡과 겨울의 눈꽃산행지로 각광받는 백덕산은 수도권에서 비교적 접근성이 좋아 많은 산악회의 단골 산행지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매년 이곳을 찾을 때마다 문재에서 백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온통 눈천지여서 산행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겨울산행'하면 떠올리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재~백덕산 구간의 경우 조망권이 좋은 곳은 서너곳 남짓 되나 법흥사 방향의 단애를 우회하는 길을 버리고 암릉 길을 따르면 더할 나위 없는 경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백덕산은 여러 갈래의 길로 다양한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과거 사재산(四財山)으로 불릴 만큼 인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자애로운 산이다. 발 앞에 놓인 길 그대로 따르되 서두르거나 앞서가려 애쓰지 말고 겨울의 풍경을 만끽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오르도록 하자.

1. 아침햇살에 부서지는 설화가 한가득인 능선길

해발 830m에 위치한 문재터널을 지나 평창방향으로 자리한 작은 공터는 등산객들의 산행 준비로 어수선했다. 아이젠을 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라종일(51) 산악회장의 지시에 따라 회원들이 준비운동을 하며 백덕산 산행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산악회원들과 도란도란 말을 섞으며, 양보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어느새 다다른 능선 길에는 늘어선 나뭇가지마다 설화가 한가득이라 "우와!! 너무 예뻐요"를 남발하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2. 능선에서 굽어보는 백년 계곡의 깊은 골짜기

라종일 산악회장이 안병석(42) 산악대장에게 회원들을 계획대로 이끌도록 지시하는 가운데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헬기장(해발 1천5m)에 당도했지만 아직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 헬기장에서 바라보던 백덕산 방향의 봉우리에 사자산 정상이란 안내판이 서있다. 하지만 국내 5대 적멸보궁중 하나인 법흥사를 품고 있는 사자산은 이곳에서 1시간30분 정도를 더 가야 만날 수 있는 1천160m의 봉우리다. 사자산이란 안내판이 있던 1125봉을 지나면서 능선은 뚜렷하게 육산에서 골산으로 변모하며 오른편의 단애에서 백년계곡을 굽어볼 수 있는 멋진 경관으로 가는이들의 걸음을 붙잡는다.

3. 소담스런 정상석

왼편의 운교1리 비네소골과 반대편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설 수 있는 1천150m의 작은당재 사거리를 지나자 이제껏 지나던 산길과는 다른 양상이다. 오르막이 줄곧 이어지고 그 끝에 1천275m의 봉우리가 있고 삼거리 역할과 쉼터 제공을 해주기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 편히 쉬어간다. 설악산 공룡능선상의 1275봉과 같은 높이로 오름세나 주변 경관에 있어서 설악산만 못하지만 산이 내어주는 푸근함만은 백덕산이 나은 듯하다. 대다수 등산객들이 백덕산 정상을 다녀와 이곳 삼거리에서 비네소골과 먹골 방향으로 하산하기에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며 다소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넉넉히 품어주는 산세와 달리 비좁은 백덕산 고스락에서 순서를 기다려 앙증맞도록 소담스런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돌아선다.

다시 1275봉 삼거리를 지나 먹골로 가는 동쪽 능선의 헬기장에 도착하니 회원들이 모여들며 산악회만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정상식'이라는 것인데 산행시 항상 정상에서 치르는 의식같은 것이라 한다. '정상식'을 마친 회원들이 안병석 산악대장을 따라 눈 쌓인 비네소골의 깊은 품으로 내려서기 위해 통신탑 옆길을 따라 줄줄이 걷는다. 그 모습이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일사분란하여 한두해 함께 한 이들이 아님을 보여준다.

4. 보전과 발전 그리고 백덕산 송전탑

산모롱이 돌아 1시간10여분만에 두엄냄새 가득한 밭둑을 지난다. 동네를 지나다 마실나온 동네분들을 만나게 되어 그분들이 권하는 자리에 잠시 합석해 본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평창올림픽과 백덕산 보전으로 이어지며 어느새 송전탑 건립반대운동까지 전개되어 갔다. 내용인즉 백덕산 능선으로 송전탑이 지나가고 그 아래로 리조트가 건설된다는 것이다. 송전탑이 건립될 경우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좋지않아 해악(害惡)을 끼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저희가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백덕산도 보전하고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지장을 주지 않게 백덕산 건너편 사유지로 변경해달라는 것"이라며 '백덕산 사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는 황재진(58)씨가 설명해준다. 기분 좋게 산행을 마치며 내려선 길에 듣게 된 뜻밖의 얘기에 일어날 줄 모르다 시간에 쫓겨 버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둑해진 백덕산 자락의 운교리를 떠나는 버스가 문재 터널로 들어서니 오히려 주변보다 밝다. 밤이 어두운 것은 자연의 이치요, 터널이 밝은 것은 사람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고 순리대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너무나 많은 인사(人事)로 애꿎은 산만 시끄러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 편이 아려온다.

※ 산행 안내
■ 등산로

문재~당재~작은당재~1275봉~백덕산~1275봉~먹골방향 헬기장~비네소골 운교1리(6시간)

문재~당재~작은당재~1275봉~백덕산~1275봉~먹골재~먹골(6시간40분)

관음사~작은당재~1275봉~백덕산~신선바위봉~고인돌~백년계곡(6시간)

■ 교통

영동고속도로~새말IC~42번국도 안흥방향~안흥~문재(산행들머리)~운교리(산행날머리)

※ 수원 종 산악회
경기도 등산학교의 전신인 알파인 산간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24년차의 역사를 자랑하는 산악회다. 전문등반으로 시작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산행을 하기위해 일반산악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산악회 운영에서도 모범을 보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맺어야 한다"고 종산악회라 명명하게 되었으며 별다른 찬조 없이 순수하게 회비로만 운영하고 있어 그만큼 잡음이 덜하다는 설명이다. 심재덕 전(前) 수원시장 시절부터 효행길 순례코스를 개발하여 그것이 지금의 정조대왕 능행차 코스가 되었다며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집행부가 전문산악인들로 구성되어 산악안전에 긴급히 대처할 능력을 갖춘 것도 장점이다. 회장 라종일 017-226-7239 총무 이지연 010-4525-7703

/송수복객원기자 gosu8848@hanmail.net